태초에 인간이 이 땅 위에 서 있게 되는 순간부터 그들을 살아남기 위해 ‘사냥’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굶주림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한 행위로 그들에게 도재는 그 어떠한 죄책감이 없는 생을 연맹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을 테니 말이다. 시간이 흘러 현재의 우리에게 있어서 사냥은 생의 연장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레저를 위한 것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사냥에 대한 배경을 담고 있는 <고튼 마운틴>은 단순히 사냥의 의미를 넘어 그 안에서 인간의 내면이 변모해 가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열 한 살의 소년이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 아버지의 친구를 따라서 사슴 사냥에 따라 나서게 된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 사냥은 익숙한 것으로 매해 지나온 것이지만 소년에게는 의미가 남다르다. 열 한 살이 된 그에게도 총이 주어졌으니 말이다.
이전의 사냥은 관람객의 자세로 참가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참가자로 총을 손에 쥔 그는 그의 손에 닿는 차가운 느낌을 실제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만끽하고 있다. 그 설렘이 그를 흔들고 있는 사이 이 모든 평화를 가로지르는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지게 된다. 그들의 사슴 사냥터에 등장한 불청객을 향해 의식의 흐름도 없이 발사되어 버린 총성. 그것은 이 고튼 마운틴에 있는 이들을 평범한 일상에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사건이 되어 버린다.
짐승은 모두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들었지만, 당연히 거짓말이다. 사슴은 제 영역을 위해 싸웠다. 울부짖고 뿔을 흔들고 목을 젖히며 나를 떨쳐내려 했다. 사슴을 살고 싶어했다. 죽은 남자에게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때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살해행위가 어떤 의미인지도 잊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슴의 목을 잡은 두 손엔 사삼의 맥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공포와 처절한 상실감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해도 공정해 질 수 없는 것. 바로 우리 자신의 비극적인 죽음이다. -본문
가슴이 관통되어 이제는 주검이 되어 버린 한 남자의 시신을 두고서 소년의 아버지와 그의 친구는 이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다. 반면 소년은 자신의 첫 사냥이 인간이기에 이 모든 것이 축제 분위기가 아닌 그야말로 암울함에 빠져 있는 것에 대해 왠지 모를 서운함이 묻어나고 있는데 죽인다, 라는 행위에는 동일하나 그 대상이 인간과 동물일 때의 차이에 따라 다른 결과가 드리우는 것을 아직 소년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처연한 듯 바라보는 소년의 할아버지는 이 모든 것을 넘어서 있는 존재처럼 비춰진다.
아이러니한 것은 소년의 총성 한 발에 발생된 끔찍한 살인 사건보다도 그 뒤에 사슴 사냥에 성공한 소년이 들려주는 모습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진다. 그의 총알로 인해 인간과 사슴의 목숨이 사라졌지만 이름조차 모르는 인간이 시체로 드리운 것과 생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신음하는 사슴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칼을 휘둘렀기 때문이었을까. 사슴의 울부짖음처럼 인간 역시도 고통에 피눈물을 흘렸을지 언대 그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는 핑계로 나는 왜 사슴의 죽음에 대해 더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일까. 죽음의 무게에 대해서 무엇이 더 무겁다라고 판단할 수 없지만 인간을 죽인 소년의 행태를 보며 죄의식을 느껴야 함에도 불구하고 천연덕스럽게, 아니 너무도 순수하기에 자신이 저지를 일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성악설의 논리대로 세상에 대한 인간의 윤리를 덜 배운 턱에 이 모든 것이 별 문제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소년의 눈과 생각을 좇아 사슴의 죽음의 광견이 더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톰 아저씨는 이제 일어나 어슬렁거렸다. 태엽 장난감 병정처럼 두 손으로 라이플을 잡은 채. 아저씨는 늘 그런 식이었다. 그 무엇도 지키지 못할 뿐 아니라, 늘 뭔가를 기다리면서도 대비는 완전히 빵점이었다. 내가 처음 방아쇠를 당긴 순간부터 지금까지, 아저씨는 겁에 질려 있었다. 아마 이 모든 일들이 현실이 아니라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 점에서 톰 아저씨는 완전히 보통 사람이었다. 매일, 매주, 매달, 매년, 살아가는 내내 분노하지만 언제나 무기력한 존재들. –본문
소년의 총알로 인해 그들이 서 있는 모든 것이 변해버리게 된다. 낙원처럼 느껴졌던 그들이 밟고 있는 땅이 이제는 모든 것을 감춰야 하는 비밀의 장소가 되어 버린다. 평생 풀려 날 수 없는 족쇄를 찬 것처럼, 그럼에도 태연히 사냥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은 너무 빨리 어른의 세계에 진입해 버린 소년에게 어른답게 이 모든 것을 책임지라 조용하고 있다.
책임이라는 무게가 소년에게 드리우는 순간 그는 철저히 혼자 이 땅 위에 서야만 한다. 처음의 시작은 사냥이라는 하나의 경험의 문을 통과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면 눈을 뜨고 바라본 세상을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살인자이자 사냥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마지막까지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도 이 책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득하기만 하다. 옳고 그름을 넘어선 이 안의 세계에 담겨 있는 그들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은 모습들에 대해서 누군가를 붙잡고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그들에게 <고트 마운틴>은 어떤 색채로 전해지게 될지, 책을 읽고 난 후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