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열린책들 세계문학 229
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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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14세기 유럽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인 페스트에 대해서 들어 보기는 했지만 실제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 것이었는지 그저 당시에 남겨진 문헌들을 통해서만 가늠해볼 뿐이었다. 그 당시의 고통이 얼마만큼이었는지, 얼마나 두려운 것이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지만 끔찍했을 것이라 미뤄 짐작만 하고 있던 나에게 있어 대한민국에 퍼져나가는 메르스의 여파는 유럽의 당시 퍼져 나갔단 흑사병에 대한 두려움이 현재 우리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상념의 깊이는 당시의 유럽인들이 훨씬 깊었을 테지만 말이다 

이름만으로도 왠지 모를 꺼름칙한 페스트와 현재 우리에게 들이닥친 메르스는 어찌 보면 그 안에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동일하지 않을까. 1940년대와 2015년대에 퍼지고 있는 페스트와 메르스라는 질병이 드리운 그 막막한 세상에 대해서 카뮈의 담백한 문체로 이 어둠의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페스트에 감염된 도시 안으로 바깥세상이 들여보내는 격려와 응원을 라디오에서 듣거나 혹은 신문에서 읽을 때마다 의사 리유의 생각은 적어도 그랬다. 비행기나 육로를 통해서 보내진 구호품들은 물론이고 동정이나 찬양 일색의 논평들이 이제는 외따로 버려진 도시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럴 때마다 영웅적 무훈담이나 수상식 연설과도 같은 어투에 의사 리유는 참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런 마음 씀씀이가 거짓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인간이 자신과 전 인류를 연결하는 그 무엇을 표현하고자 할 때 쓰는 상투적인 언어의 범위 안에서만 표현될 수 있을 뿐이었다. -본문

 그야말로 평온했던 항구 도시인 오랑에 쥐들의 사체가 점점 쌓여가고 그것으로 이 오랑의 한가로움은 두려움과 공포로 변모되게 된다. 처음에는 쥐가 죽는다, 라는 사실에 별다른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일은 그저 큰일이 아니니 그저 안심하라고 시 당국은 말하며 태평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의사인 리유의 진료실이 있는 건물의 수위가 사망하게 되면서 페스트를 사람들의 앞에서 그 진 면목을 드러내며 죽음이라는 공포는 인간에게 전해주고 있다.

 단 한 사람이었던 환자가 어느 새 수십, 수백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처음에는 별 다른 문제가 아닐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도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견을 보며 이것이 심상치 않은 병마의 전조이며 이렇게 되다가는 우리 모두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게 되며 사람들은 점차 그 내면의 공포를 밖으로 끄집어 내어 드러내게 된다.

 사태의 심각성이 가중되게 되면서 오랑시는 도시를 폐쇄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리하여 오랑시라는 이 곳에 강제 강금 되어 버린 이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그 안의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만날 수 있다.

파늘루 신부에게 있어서 이 페스트라는 질병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인간에게 드리운 단죄와 같은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 다른 이들에게는 페스트가 창궐 함에 따라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수 많은 이들은 일단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만 빠져있게 되고 그렇기에 그 동안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규범의 틀, 도덕이나 법 등에 대해서는 바라보지도 않게 되었으며 이 틈을 이용해 코타르는 자신의 과거가 페스트에 묻히는 현재가 그저 만족스러울 뿐이다. 종교와 인간의 감정을 넘어 이성적으로 이 현상을 바라보는 이가 의사인 리유인데 그는 그 스스로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저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잠시 방심한 사이에 다른 사람 낯짝에 대고 숨을 내뱉어서 그자에게 병균이 들러붙도록 만들지 않으려면 늘 자기 자신을 제대로 단속해야 한다는 겁니다. (중략) 존경 받을 만한 사람 즉 어느 누구에게도 거의 병균을 옮기지 않는 사람이란 되도록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이죠. 그래요,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건 정말 지긋지긋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려는 것은 한층 더 골치 아픈 일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피곤한 모습을 기꺼이 드러내 보이는데, 그 이유야 오늘날 모두들 조금씩은 페스트 환자니까요.

 페스트에 대하는 수 많은 이들의 군상을 넘어 시 당국이 보여주는 대안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메르스가 퍼져나갔을 때 정부가 보여주는 행태와 비슷한 모습이라 입안에 씁쓸함이 맴돌게 된다. 그리고 그 안일함 속에 퍼져나가는 불신과 두려움이 광기로 변모해 나가는 모습과 또 그와 반대로 이 세상과는 무관하듯 그들만의 유희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과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바라보게 된다. 이 막막함이 가득한 사회 속에서도 그럼에도 카뮈는 이 삶의 이유를 전해주고 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인 듯 말이다.

 한 편의 소설로 시작하여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는, 덮어버리고 싶지만 덮이지 않는 우리를 마주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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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독서 기간 : 2015.06.16~06.20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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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 마운틴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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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태초에 인간이 이 땅 위에 서 있게 되는 순간부터 그들을 살아남기 위해 사냥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굶주림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한 행위로 그들에게 도재는 그 어떠한 죄책감이 없는 생을 연맹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을 테니 말이다시간이 흘러 현재의 우리에게 있어서 사냥은 생의 연장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레저를 위한 것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사냥에 대한 배경을 담고 있는 <고튼 마운틴>은 단순히 사냥의 의미를 넘어 그 안에서 인간의 내면이 변모해 가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열 한 살의 소년이 그의 할아버지아버지아버지의 친구를 따라서 사슴 사냥에 따라 나서게 된다이들에게 있어서 이 사냥은 익숙한 것으로 매해 지나온 것이지만 소년에게는 의미가 남다르다열 한 살이 된 그에게도 총이 주어졌으니 말이다.

 이전의 사냥은 관람객의 자세로 참가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참가자로 총을 손에 쥔 그는 그의 손에 닿는 차가운 느낌을 실제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만끽하고 있다그 설렘이 그를 흔들고 있는 사이 이 모든 평화를 가로지르는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지게 된다그들의 사슴 사냥터에 등장한 불청객을 향해 의식의 흐름도 없이 발사되어 버린 총성그것은 이 고튼 마운틴에 있는 이들을 평범한 일상에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사건이 되어 버린다.

 짐승은 모두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들었지만당연히 거짓말이다사슴은 제 영역을 위해 싸웠다울부짖고 뿔을 흔들고 목을 젖히며 나를 떨쳐내려 했다사슴을 살고 싶어했다죽은 남자에게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사실이다그때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살해행위가 어떤 의미인지도 잊게 만들었다하지만 사슴의 목을 잡은 두 손엔 사삼의 맥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공포와 처절한 상실감도 느낄 수 있었다어떻게 해도 공정해 질 수 없는 것바로 우리 자신의 비극적인 죽음이다. -본문

 가슴이 관통되어 이제는 주검이 되어 버린 한 남자의 시신을 두고서 소년의 아버지와 그의 친구는 이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다반면 소년은 자신의 첫 사냥이 인간이기에 이 모든 것이 축제 분위기가 아닌 그야말로 암울함에 빠져 있는 것에 대해 왠지 모를 서운함이 묻어나고 있는데 죽인다라는 행위에는 동일하나 그 대상이 인간과 동물일 때의 차이에 따라 다른 결과가 드리우는 것을 아직 소년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을 처연한 듯 바라보는 소년의 할아버지는 이 모든 것을 넘어서 있는 존재처럼 비춰진다.

 아이러니한 것은 소년의 총성 한 발에 발생된 끔찍한 살인 사건보다도 그 뒤에 사슴 사냥에 성공한 소년이 들려주는 모습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진다그의 총알로 인해 인간과 사슴의 목숨이 사라졌지만 이름조차 모르는 인간이 시체로 드리운 것과 생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신음하는 사슴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칼을 휘둘렀기 때문이었을까사슴의 울부짖음처럼 인간 역시도 고통에 피눈물을 흘렸을지 언대 그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는 핑계로 나는 왜 사슴의 죽음에 대해 더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일까죽음의 무게에 대해서 무엇이 더 무겁다라고 판단할 수 없지만 인간을 죽인 소년의 행태를 보며 죄의식을 느껴야 함에도 불구하고 천연덕스럽게아니 너무도 순수하기에 자신이 저지를 일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인지아니면 성악설의 논리대로 세상에 대한 인간의 윤리를 덜 배운 턱에 이 모든 것이 별 문제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나는 소년의 눈과 생각을 좇아 사슴의 죽음의 광견이 더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톰 아저씨는 이제 일어나 어슬렁거렸다태엽 장난감 병정처럼 두 손으로 라이플을 잡은 채아저씨는 늘 그런 식이었다그 무엇도 지키지 못할 뿐 아니라늘 뭔가를 기다리면서도 대비는 완전히 빵점이었다내가 처음 방아쇠를 당긴 순간부터 지금까지아저씨는 겁에 질려 있었다아마 이 모든 일들이 현실이 아니라고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그 점에서 톰 아저씨는 완전히 보통 사람이었다매일매주매달매년살아가는 내내 분노하지만 언제나 무기력한 존재들. –본문

 소년의 총알로 인해 그들이 서 있는 모든 것이 변해버리게 된다낙원처럼 느껴졌던 그들이 밟고 있는 땅이 이제는 모든 것을 감춰야 하는 비밀의 장소가 되어 버린다평생 풀려 날 수 없는 족쇄를 찬 것처럼그럼에도 태연히 사냥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은 너무 빨리 어른의 세계에 진입해 버린 소년에게 어른답게 이 모든 것을 책임지라 조용하고 있다.

 책임이라는 무게가 소년에게 드리우는 순간 그는 철저히 혼자 이 땅 위에 서야만 한다처음의 시작은 사냥이라는 하나의 경험의 문을 통과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면 눈을 뜨고 바라본 세상을 더 이상 소년이 아닌살인자이자 사냥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마지막까지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도 이 책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득하기만 하다옳고 그름을 넘어선 이 안의 세계에 담겨 있는 그들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은 모습들에 대해서 누군가를 붙잡고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그들에게 <고트 마운틴>은 어떤 색채로 전해지게 될지책을 읽고 난 후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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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의 전설 / 데이비드 밴저

 

 

 

독서 기간 : 2015.06.1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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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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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책상 정리를 하거나 창고를 정리하다 보면 잊고 있었던 물건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이전에는 꼭 품고 있었던 것이거나 중요한 것이라 잘 보관해야지, 하며 넣어둔 것들이 오랜 시간이 흘러서는 있는 지로 모른 채 먼지와 함께 세월 속에 묵혀지는 것인데 그런 것들을 마주하게 되면 어느 새 이전의 시간 속으로 훌쩍 뛰어 넘어 아련한 시간들이 떠오르게 된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하나의 물건이겠지만 나에게는 추억이 더해져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그 물건들을 버리기엔 왠지 아깝고 그렇다고 계속 가지고 있기에는 다시 사용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쌓아두기에는 난감한, 그런 것들 모아두는 <보관가게>를 앞에 두고서는 과연 이 안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을지 설렘이 밀려든다.

전당포와 결정적인 차이점은 돈을 받고 보관해준다는 점이에요. 보관하는 행위 자체를 순수하게 일로 삼은 거지요.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했어요. 보관품을 읽어가 볼 수 없고 손님의 얼굴 역시 보지 못하니까요. 손님 입장에서는 사생활이 보장되니까 안심하고 물건을 맡길 수 있지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트러블이 없었습니다. 조마조마했던 적은 있어도 사달이 난 적은 없어요. –본문

 하루 100. 현재 환율로 보자면 1000원 안 되는 비용으로 무엇이든 보관할 수 있는 가게의 주인은 앞에 보이지 않는 기리시마이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빛을 볼 수 없게 된 그를 두고 그의 어머니는 떠나버렸고 그렇게 그는 홀로 남아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 새 보관가게의 주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무엇이든 이유도 묻지 않고 하루 100엔으로 물건을 보관해주기에 각자 사연을 안고 이 가게로 들어오게 된다. 무엇보다도 기리시마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그 자신의 목소리를 빌어서가 아닌 가게의 포렴과 그의 손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믿는 고양이에 의해서 전해지고 있는데 그의 따스한 성품은 포렴과 고양이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마저도 편안하게 물들이고 있기에 그를 찾아오는 가게의 사람들의 사연 역시 따스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가게의 이름도 제대로 없는 이 곳을 알고 오는 이들을 보노라면 이전부터 알고 있었거나, 누군가를 대신해서 가게를 방문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거나, 호기심에 들어왔다가 그 가게를 알게 된 이들도 있고 그야말로 다양한 이들이 이 가게를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매 장마다 흘러가는 이야기는 그 하나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실타래를 따라서 모두 연결되어 있는데 그들의 사연을 연결해서 찾아보는 재미도 이 소설의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아버지가 사주신 물빛 자전거를 매일 맡기러 오던 소년은 가키누마 나미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 합의서를 이 가게에 맡겼던 것처럼 그녀의 이혼 서류를 가지고 왔을 때, 이제는 이 보관가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그녀 스스로의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고 기리시마가 이 가게를 운영하도록 해준 사건의 주인공인 동생이 등장하게 되며 아이자와와의 이야기도 매듭을 짓게 된다.

어라, 큰일이다.
주인의 심장이 두근두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비누 아가씨에겐 들리지 않겠지만, 고양이인 나는 못 속이지
.
 
두근두근, 두근두근
.
 
이건….. 분명 사랑이다
.
 
싫어라. 주인이 처음으로 여성을 의식한 순간에 입회하고 말았어. 냄새와 목소리만으로 사랑에 빠지다니. 고양이랑 뭐가 달라. 내겐 엄마의 첫사랑인 셈이니 겸연쩍기도 하고 낯간지럽기도 하고, 기분이 복잡하다. 게다가 걱정이다. 주인이 상처받지 않으면 좋겠는데. –본문

무엇보다도 쥐 할아버지의 오르골과 함께 비누 아가씨의 등장은 기리시마의 평범한 일상에 온기를 더해주는 에피소드인데 마지막 기리시마가 횡단보도에 서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나 역시도 그 장면 속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눈가에 눈물이 서리게 된다. 고양이의 바람대로 주인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해져 마지막 페이지의 이야기가 꿈이 아닌 실제의 것 이길 바라며 책을 덮으며 다양한 이야기들의 실타래를 조용히 묶어 본다.

 기리시마의 보관가게가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따스해지는 느낌이다. 그는 누구의 추억이라도 고스란히 간직해 줄 것만 같다. 그 모든 기억을 버리는 것이 아닌 조용히 보관해주는 이 곳에 나는 어떠한 기억을 가지고 가야 할 지 이 고민이 한 동안은 즐거운 고민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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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게 하기 좋은 날 / 무레 요코저

 

 

 

독서 기간 : 2015.06.17~06.1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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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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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지금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갈망, 그 채워지지 않는 빈 자리에 대해서 계속해서 채우려는 마음을 말한다는 욕망이라는 단어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중년이라는 나이 안에 있는 두 남녀의 처절한 갈망 어린 몸짓과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과연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지, 인간의 욕망이란 이성을 넘어 감성의 세계에서 아니 일반적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이라는 선을 넘어서게 만드는 무엇인가, 라는 생각에 가만히 멈춰있게 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찬란했던 불나방과 같은 시간은 오롯이 행복으로 남을까.

 전화는 거기서 끊켰다.
 
나는 책상 한쪽에 놓여 있는 대형 지구의를 끌어당겼다. 러시아를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이르쿠츠크엔 가본 적이 없었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동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바이칼 호 근처였다. 초승달 보양의 바이칼 호에 대해 내가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수심이 세계에서 제일 깊은 호수라는 것뿐이었다. 지구의에서 찾아본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 남쪽 끝과 거의 맞닿아 있었다. –본문

삶은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우리 앞에 던져준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의 소식이 전화를 통해서 전해지기도 하고 이 전에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한 누군가를 만나 세상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빠져들어 모든 시간을 잠식해 버릴 정도로 무섭게 흡입해버리기도 한다. 이미 인생의 반을 달려온 김진영을 보며 나는 그 정도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달관은 아니더라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아니 무언가 태연하게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세상은 그 누구보다도 찬란하게, 그 곳이 죽음을 향해 가는 마지막 여정이라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나방처럼 오늘만을 사는 이와 같이 그 안에 살고 있는 그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그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으며 그 길이 마치 이 세상의 마지막 소풍을 가는 길처럼 가볍지만 묵직하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그는 회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중책을 맡고 있다. 모든 것이 평온하다 못해 너무도 익숙한 일상 앞에 그의 눈에 들어온, 그보다도 이미 나이가 많은 천예린을 보며 김진영은 그가 가진 모든 것들을 던져버리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천예린과 묵직하기만 할 것 같은 김진영의 만남은 처연할 정도로 치열하게 서로를 탐닉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넘어 그녀를 쫓기 위해 매 순간 현실이 아닌 다른 곳에 취해있는 그를 바라보면 이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라는 상념에 빠져보기도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이런 형태의 사랑도 있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도 전에 다채로운 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천예린을 보노라면 눈 앞에 있지만 잡히지 않는 그 모습이 더욱 그를 미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내겐 두 아이와 평생 나만 의지해 살아온 아내가 있습니다. 한 여자에 홀려 그들을 버리고 떠나왔지요. 머리핀을 무의식적으로 갈 때 의식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나를 죽이고 싶어했다는 것을. 지금도 천예린보다 더 빨리 더 고통스럽게, 더 완벽하게 나 자신의 명줄을 끊고 싶어하는 내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본문

 그들이 들어서는 안 될 그 선을 넘어섰을 때 아마 그들은 알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 어쩌면 몰랐을 줄도 모른다. 그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을 테니 말이다. 지금을 넘어 그들에게 드리울 미래가 어찌되었건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서로를 향해 피어나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세상이 그들에게 드리운 모든 짐을 던져 버린 채 그 둘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피어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들에 대해서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옳고 그름을 넘어 그들만이 통용되는 이 세계에서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현실이 드리우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내달리는 그들의 열망에 대해 찬사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미친 짓이라며 그들을 책망을 해야 할까. 아직은 쉽지 않은 이 이야기가 훗날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게 될지, 시간이 많이 흐른 후 다시 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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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지 / 조세핀 하트저

 

 

 

독서 기간 : 2015.06.11~06.14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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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딸 - 가깝고도 먼 사이, 아버지와 딸의 관계심리학
이우경 지음 / 휴(休)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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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어느 날인가 지하철 앞 좌석에 앉아 계신 중년의 한 남성을 보면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집에서는 아버지, 라는 호칭 대신에 여전히 아빠, 라고 부르지만 애교도 없이 뻣뻣하게 구는 나의 모습이 떠오르며 앞에 앉은 그 남성이 마치 나의 아버지인 냥 아련한 마음이 일었다. 그토록 강인하면서도 때론 두렵기까지 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사라지고 세월의 무게가 더해진, 이제는 너무도 작아 버린 아버지를 보며 위풍당당했던 그의 모습은 어디로 씻겨 사라져버린 것인가, 라는 생각에 애잔함이 밀려든다. 

 어릴 적 나는 아빠를 꼭 닮았구나 라는 말을 싫어했었다. 뽀얀 피부에 부드러운 살결을 타고난 외탁을 한 동생과는 달리 친가의 모습을 더 많이 닮아 빼빼 마른 체형에 거무튀튀한 피부는 왠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어릴 적에는 아빠의 외모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면 나이가 든 지금은 아빠의 성향을 꽤나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의 나를 바라보며 어느 새 아버지에 물들어 버린 나의 모습들을 하나씩 찾아보게 된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딸이라는 것을 숨길 수 없는 것을 보며 과연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단 생각이 스쳐지나 간다.

분노나 원망감, 깊은 아픔으로 아버지를 기억하는 딸은 아버지에 대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이 남아 있고 마음 깊숙이 복합적인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다. 게슈탈트 심리학 용어로 표현하면 아버지와 딸 사이에 미해결 과제가 남아 있는 탓이다.
 
분석 심리학자들은 아버지에게 각별한 영향을 받은 딸을 특별히 아버지의 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딸들은 형제자매 중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딸이기도 했고, 아버지와 닮지 않으려고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를 닮아가는 딸이기도 하다. –본문

 엄마와 딸, 아버지와 아들의 조합이 익숙한 탓에 사춘기를 넘어 성인이 되고 나서는 되려 아버지와의 관계가 서먹하게 느껴졌다. 여자이기에 그리고 엄마와 더 친숙하게 지냈던 탓에 나는 내 안에 엄마의 모습들이 담겼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이 안의 책을 펼쳐보는 순간, 알고 보면 세상의 딸들에게는 아버지의 모습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투영되고 있다는 것을 넌지시 전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딸과 아버지는 그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 영향을 주는 묵직한 유대관계라는 한 배 안에 함께 하고 있는 존재란 것이다.

 마지막 증상은 ‘RAD’라고 한다. 아버지가 없는 여성은 분노라는 큰 냄비를 갖고 있다는 것이 노먼 라이트의 생각이다. 이런 여성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먹는 것, 성적인 관계, 알코올, 성공에 집착하는 것으로 환기시키기도 한다. 분노는 우울의 또 다른 얼굴이듯이 분노하던 여성은 해결되지 않는 슬픔을 안고 살게 된다. 
 
아버지가 없는 딸의 문제를 노먼 라이트는 마음 속의 구멍이라고 표현했다. 아버지가 채워져야 할 자리에 빈 공간이 있어 늘 허기감과 상실감을 갖고 산다는 것이다. –본문

 늘 그저 묵직하게 그 자리에 지키고 있는 것이 가장이자 아버지의 모습이기에 자식들에게, 특히 딸에게 있어서 그다지 많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나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그의 빈 자리 혹은 그가 있는 자리의 그림자는 크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딸에게 그의 영향을 조금씩 전해주고 있었고 그것은 결국 딸들의 인생에 있어서 사라지지 않는 자국과 같은 것으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이 안의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는 마를린 먼로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수 많은 딸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아버지의 존재가 그녀들에게 침잠해 있는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아버지의 딸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이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그들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들의 삶을 딸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지나온 나의 삶에도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 있었구나, 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아버지를 탓하며 그를 원망할 필요는 없다. 아버지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내려온 나의 삶 안에도 오롯이 나의 것이 있기에. 그것을 끊어내는 것이 아닌 서로의 공간 안에서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만으로도 나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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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남자운은 아버지에 의해 결정된다 / 이와츠키 켄지저

 

 

 

독서 기간 : 2015.06.16~06.1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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