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지금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갈망, 그 채워지지 않는 빈 자리에 대해서 계속해서 채우려는 마음을 말한다는 욕망이라는 단어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중년이라는 나이 안에 있는 두 남녀의 처절한 갈망 어린 몸짓과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과연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지, 인간의 욕망이란 이성을 넘어 감성의 세계에서 아니 일반적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이라는 선을 넘어서게 만드는 무엇인가, 라는 생각에 가만히 멈춰있게 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찬란했던 불나방과 같은 시간은 오롯이 행복으로 남을까.

 전화는 거기서 끊켰다.
 
나는 책상 한쪽에 놓여 있는 대형 지구의를 끌어당겼다. 러시아를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이르쿠츠크엔 가본 적이 없었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동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바이칼 호 근처였다. 초승달 보양의 바이칼 호에 대해 내가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수심이 세계에서 제일 깊은 호수라는 것뿐이었다. 지구의에서 찾아본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 남쪽 끝과 거의 맞닿아 있었다. –본문

삶은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우리 앞에 던져준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의 소식이 전화를 통해서 전해지기도 하고 이 전에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한 누군가를 만나 세상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빠져들어 모든 시간을 잠식해 버릴 정도로 무섭게 흡입해버리기도 한다. 이미 인생의 반을 달려온 김진영을 보며 나는 그 정도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달관은 아니더라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아니 무언가 태연하게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세상은 그 누구보다도 찬란하게, 그 곳이 죽음을 향해 가는 마지막 여정이라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나방처럼 오늘만을 사는 이와 같이 그 안에 살고 있는 그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그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으며 그 길이 마치 이 세상의 마지막 소풍을 가는 길처럼 가볍지만 묵직하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그는 회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중책을 맡고 있다. 모든 것이 평온하다 못해 너무도 익숙한 일상 앞에 그의 눈에 들어온, 그보다도 이미 나이가 많은 천예린을 보며 김진영은 그가 가진 모든 것들을 던져버리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천예린과 묵직하기만 할 것 같은 김진영의 만남은 처연할 정도로 치열하게 서로를 탐닉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넘어 그녀를 쫓기 위해 매 순간 현실이 아닌 다른 곳에 취해있는 그를 바라보면 이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라는 상념에 빠져보기도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이런 형태의 사랑도 있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도 전에 다채로운 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천예린을 보노라면 눈 앞에 있지만 잡히지 않는 그 모습이 더욱 그를 미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내겐 두 아이와 평생 나만 의지해 살아온 아내가 있습니다. 한 여자에 홀려 그들을 버리고 떠나왔지요. 머리핀을 무의식적으로 갈 때 의식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나를 죽이고 싶어했다는 것을. 지금도 천예린보다 더 빨리 더 고통스럽게, 더 완벽하게 나 자신의 명줄을 끊고 싶어하는 내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본문

 그들이 들어서는 안 될 그 선을 넘어섰을 때 아마 그들은 알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 어쩌면 몰랐을 줄도 모른다. 그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을 테니 말이다. 지금을 넘어 그들에게 드리울 미래가 어찌되었건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서로를 향해 피어나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세상이 그들에게 드리운 모든 짐을 던져 버린 채 그 둘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피어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들에 대해서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옳고 그름을 넘어 그들만이 통용되는 이 세계에서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현실이 드리우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내달리는 그들의 열망에 대해 찬사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미친 짓이라며 그들을 책망을 해야 할까. 아직은 쉽지 않은 이 이야기가 훗날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게 될지, 시간이 많이 흐른 후 다시 금 읽어보고 싶다 

 

 

아르's 추천목록


데미지 / 조세핀 하트저

 

 

 

독서 기간 : 2015.06.11~06.14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