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딸 - 가깝고도 먼 사이, 아버지와 딸의 관계심리학
이우경 지음 / 휴(休)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어느 날인가 지하철 앞 좌석에 앉아 계신 중년의 한 남성을 보면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집에서는 아버지, 라는 호칭 대신에 여전히 아빠, 라고 부르지만 애교도 없이 뻣뻣하게 구는 나의 모습이 떠오르며 앞에 앉은 그 남성이 마치 나의 아버지인 냥 아련한 마음이 일었다. 그토록 강인하면서도 때론 두렵기까지 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사라지고 세월의 무게가 더해진, 이제는 너무도 작아 버린 아버지를 보며 위풍당당했던 그의 모습은 어디로 씻겨 사라져버린 것인가, 라는 생각에 애잔함이 밀려든다. 

 어릴 적 나는 아빠를 꼭 닮았구나 라는 말을 싫어했었다. 뽀얀 피부에 부드러운 살결을 타고난 외탁을 한 동생과는 달리 친가의 모습을 더 많이 닮아 빼빼 마른 체형에 거무튀튀한 피부는 왠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어릴 적에는 아빠의 외모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면 나이가 든 지금은 아빠의 성향을 꽤나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의 나를 바라보며 어느 새 아버지에 물들어 버린 나의 모습들을 하나씩 찾아보게 된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딸이라는 것을 숨길 수 없는 것을 보며 과연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단 생각이 스쳐지나 간다.

분노나 원망감, 깊은 아픔으로 아버지를 기억하는 딸은 아버지에 대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이 남아 있고 마음 깊숙이 복합적인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다. 게슈탈트 심리학 용어로 표현하면 아버지와 딸 사이에 미해결 과제가 남아 있는 탓이다.
 
분석 심리학자들은 아버지에게 각별한 영향을 받은 딸을 특별히 아버지의 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딸들은 형제자매 중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딸이기도 했고, 아버지와 닮지 않으려고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를 닮아가는 딸이기도 하다. –본문

 엄마와 딸, 아버지와 아들의 조합이 익숙한 탓에 사춘기를 넘어 성인이 되고 나서는 되려 아버지와의 관계가 서먹하게 느껴졌다. 여자이기에 그리고 엄마와 더 친숙하게 지냈던 탓에 나는 내 안에 엄마의 모습들이 담겼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이 안의 책을 펼쳐보는 순간, 알고 보면 세상의 딸들에게는 아버지의 모습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투영되고 있다는 것을 넌지시 전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딸과 아버지는 그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 영향을 주는 묵직한 유대관계라는 한 배 안에 함께 하고 있는 존재란 것이다.

 마지막 증상은 ‘RAD’라고 한다. 아버지가 없는 여성은 분노라는 큰 냄비를 갖고 있다는 것이 노먼 라이트의 생각이다. 이런 여성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먹는 것, 성적인 관계, 알코올, 성공에 집착하는 것으로 환기시키기도 한다. 분노는 우울의 또 다른 얼굴이듯이 분노하던 여성은 해결되지 않는 슬픔을 안고 살게 된다. 
 
아버지가 없는 딸의 문제를 노먼 라이트는 마음 속의 구멍이라고 표현했다. 아버지가 채워져야 할 자리에 빈 공간이 있어 늘 허기감과 상실감을 갖고 산다는 것이다. –본문

 늘 그저 묵직하게 그 자리에 지키고 있는 것이 가장이자 아버지의 모습이기에 자식들에게, 특히 딸에게 있어서 그다지 많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나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그의 빈 자리 혹은 그가 있는 자리의 그림자는 크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딸에게 그의 영향을 조금씩 전해주고 있었고 그것은 결국 딸들의 인생에 있어서 사라지지 않는 자국과 같은 것으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이 안의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는 마를린 먼로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수 많은 딸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아버지의 존재가 그녀들에게 침잠해 있는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아버지의 딸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이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그들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들의 삶을 딸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지나온 나의 삶에도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 있었구나, 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아버지를 탓하며 그를 원망할 필요는 없다. 아버지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내려온 나의 삶 안에도 오롯이 나의 것이 있기에. 그것을 끊어내는 것이 아닌 서로의 공간 안에서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만으로도 나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아르's 추천목록


여자의 남자운은 아버지에 의해 결정된다 / 이와츠키 켄지저

 

 

 

독서 기간 : 2015.06.16~06.18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