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15.3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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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직장인들에게 3월이란 별다를 것 없는 새로운 달의 시작이겠지만, 어엿한 봄의 계절이자 학생에게는 긴 방학을 끝내고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는 계절이기에, 3월은 이미 시작된 새해의 3번째 달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으로 전해진다. 얼어붙었던 마음도 녹아 들게 해 새록새록하게 만드는 3월을 기다리며 샘터의 이야기로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며 페이지를 넘겨 본다.

난 죽음이란 게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오랫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오랫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쁠까? 누군 이렇게 말하면 붇지. 죽으면 그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고 어떻게 확신하냐? 그럼 난 되물어봐. 그럼 당신은 못 만날 것이라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고.” –본문

 오랜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그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볍기 마련이다. 그것이 개학이든, 개강이든, 죽음을 통해서 또 다른 세계에서의 마주함이든. 자칫 긴 겨울의 여정 속에 축 늘어져버렸을 우리에게 이 샘터는 파릇파릇한 기운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그 발걸음처럼,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달에 만난 사람은 울산대 최정호 교수님이였다. 60여년 동안 모아온 200여통의 편지를 책으로 남기려 하는 그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그때는 미처 몰랐던 한 통 한 통의 정성스런 마음이 담긴 편지를 어느 새 잊어버린 내가 한탄스러울 뿐이다. 한 장의 서신은 그저 편지가 아닌 학자에게 있어서는 학문을 넓히는 견문이 되었으며, 상소는 조선 시대에 있어서 나라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신약서에도 대부분 서신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하니.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미 편지는 그 힘을 조용히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지 만드는 법이 일본에 건너가 화지가 됐어요. 수백 년 된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천지창조의 찌든 때를 어떻게 벗겨내는 줄 아세요? 물에 적신 한지입니다. 한지가 묵은 때를 빨아들이는 겁니다. 일본이 이걸 활용해 벽화를 청소하니까 너도나도 화지를 필요로 하고 일본 화지 공장만 들어서는 겁니다. 답답한 마음 아시겠죠?” 사라져 가는 우리의 편지 문화와 소멸해 가는 한지에 대해 가슴 깊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본문

 그럼에도 손으로 한 자 한 자 눌러쓰던 편지는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다. 빠르고 편리한SNS의 대중화로 인해서 더 빠르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상대에게 확인 받고 싶어하는 요즘의 세태를 반영하면 편지는 구태여 필요치 않는 것으로 전락해 버리기 십상인데, 그런 와중에60여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편지들이 발간된다는 것은 현재의 세태에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클럽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아닌, 전주의 시끌벅적한 시장의 밤을 거닐며 입맛을 다시게 하는 음식들을 하나 둘 쥐고 있는 이야기들을 넘어 한때는 컴퓨터도 다를 줄 몰랐던 한 아이가 점차 성장을 해 나가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는 또 싱긋 웃음이 나게 한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올 3월의 그 날의 기다리며 훈훈한 샘터의 이야기가 더욱 깊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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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샘터 2월호 /  샘터 편집부저


  

 

독서 기간 : 2015.01.2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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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한혜경 지음 / 샘터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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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100세시대가 열렸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100세라는 단어를 입에 되뇌어 보아도 좀처럼 와 닿지 않는다. 인간이 꿈에 그리던 100세 시대의 문이 열렸다는 이야기에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는 것은 오랜 동안 이 세상에서 천수를 누리는 만큼 경제적인 문제도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는 불가분의의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래 사는 것의 전제조건이자 누구나의 바람은 건강하게 사는 것일 텐데 100세 시대의 문이 열리는 순간을 쉬이 기뻐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는 수 많은 이들이 안고 있던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극복해 나가면 좋은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부모와 자녀간에 돈을 둘러싼 갈등이 심해지더니 급기야 효도계약서를 써야 하는 우울한 시대가 오고 말았다. 정년은 빠른데 일은 늦게까지 해야 하는, 그래서 OECD 국가 중 가장 늦게까지 일하는 이상한 나라이다 보니 은퇴자들의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분노 범죄도 증가하는 추세다.
 
또한 어르신들의 사랑과 성 그리고 놀이에 대한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지만, 어떻게 사랑하며 잘 놀아야 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갈등과 혼란도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노인의 성범죄도 마찬가지다.  본문

 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그만큼 삶의 질 또한 향상되면 좋으련만, 우리의 바람처럼 삶의 질과 수명과의 상관관계는 양의 관계로 함께 이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독사에 대한 뉴스도 심심치 않게 들려와 씁쓸하던 차에 이제는 고독생의 삶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가히 이 100세 시대를 누리기 위해서는 만발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스치게 된다. 아직 그날이 도래하기에는 한참 남았고, 현재의 나와는 상관 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관심조차 없던 나에게 저자는 이 모든 문제를 외면할 것만이 아니라 들여다보고서는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만이 현재의 우리 사회 속의 문제를 바꾸고 앞으로 우리 앞에 도래할 미래도 바뀔 수 있다 말하고 있다.

남자 어르신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당신들이 갖추고 있는 미덕, 즉 성실함과 근면함,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존경한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삶의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유연함 사회성이다. 그러니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지나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시라. 당신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 닥쳤을 때마다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의견을 묻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청하시라. –본문

 이전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가기에, 노후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준비가 쉽지 않게 되는데 특히나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 어느 나라보다 빨라진 현재의 우리의 모습 안에서 노인이 노인을 보살피고 간병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노인 간병에 있어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보살피는 경우, 당신이 힘이 들면서도 남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이야기를 주변에 쉬이 털어놓지를 못한 채 혼자서만 모든 것을 짊어지려 하다 보니 결국에는 자살로 마감하는 안타까운 뉴스도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노인들을 위한 사회 복지사나 보건복지부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음에도 실제 그러한 것이 있는 줄 조차 모르고 점차 침식해가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어려움을 주변에게 호소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인의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일본 아키타 현의 노인 자살 원인이 가족, 특히 자녀와의 갈등에 있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가 나와있다. 가족과 동거하는 노인의 자살률이 그렇지 않은 노인의 자살률보다 더 높았으며, 홀몸노인보다 가족 동거 노인의 우울정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뜻밖의 결과가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자녀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자식들은 입으로는 부모에 대한 희생과 배려를 강조하지만 적대감을 행동으로 표시한다는 것이다. –본문

 그렇다면 노인의 고독생, 고독사, 노인이 노인을 간호하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가족들, 그러니까 자식과 함께 사는 것이 하나의 대책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위의 데이터가 말해주듯이 오히려 자식과 같이 살아가는 노인의 우울지수가 홀로 사는 노인보다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상처들을 고스란히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 앞에서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자녀에게 기대어 살지 않도록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독려하고 있다.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이 수수께끼 앞에서 저자는 영국의 사례를 들어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영국 안의 노인들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영국의 노인들에게 제공되고 있는 복지 정책을 주목하게 되는데 장애를 가진 이들도 너무도 활기찬 모습으로 거리를 누비를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복지정책은 의존이 아닌 자립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그 해답으로 보인다.

 한 명의 노인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들 한다. 아직 우리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100세 시대의 도래는 오래 동안 노년을 보내야 하는 우리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의 문제들을 바라보려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앞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안의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우리의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 현재의 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은 앞으로 도래할 우리의 문제마저도 외면하는 것일 테니 지금이라도 이 안의 문제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며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함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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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노후는 당신의 부모와 다르다 / 강창희저


 

 

독서 기간 : 2015.02.27~02.2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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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포효하다 - 빛나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
유순하 지음 / 문이당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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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 라는 부재가 있기는 하나 이 책 안에서 말랑말랑한 위안이나 위로 따위는 없다. 오히려 통렬하게 세상을 바라보고서 현재의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이기에, 보는 내내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과연 옳은 모습인지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된다. 그리고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드러나는 현재의 사회 속에 있는 나를 보노라면 이 사회의 진물 나는 진창을 던져버리고만 싶어진다.

  요컨대 토론이 없는 침묵 강의는 죽은 교육이고, 그 궁극적 여파는 망국인데, 이런 교육은 얻어야 할 만큼 얻지도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 얻은 것조차 실제 상황에서 써먹을 만한 게 되지 못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대학생들에게 극단의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 되어 온 이건희 삼성 회장의 뭉툭한 탄식이 있다. “대학은 무책임하다. 불량 제품을 내보낼 뿐만 아니라 애프터서비스마저 없다.” -본문

 저자는 이 사회의 폐단에 대해서 교육은 그 무엇보다도 일 순위의 문제로 꼽고 있다. 이른바 침묵 교육은 이미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주입식 교육 현장을 꼬집어 말하는 것으로 조용히 수업을 듣기만 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방법 따위는 모르는 교육은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정답이 하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해져 있는 답으로만 대답할 것을 강요 받는 대학의 교육은 초, , 고등학교를 넘은 상아탑의 장이라 일컫지만 실제의 모습은 이전과 동일한, 오히려 진화하지 못한 채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저자는 탄식을 내뿜고 있다.

 현실과 이상이 다르지만 자신이 품은 이상을 최대한으로 실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대학이기에 그는 이 안에서 이전의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틀을 벗어나 죽이는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현재의 틀을 철저하게 부셔야 한다 주장하고 있다.

 그의 일침은 여행을 떠나는 젊은 이들에게 다시 이어지게 되는데, 떠난다는 그 순간의 쾌락에 취해서 그들이 향하는 곳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발을 떼고 있는 그들을 보며 그는 그것이 과연 올바른 여행인지에 대해 다시금 묻고 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그저 새로운 곳에 있다는 설렘만을 안고서 떠나는 여행은 반쪽짜리 여행이라는 것이다.

안데스 여러 나라 예를 들어 보면, 몽골리안의 이주나 스페인 침략 역사에 대해 미리 알고 있지 않다면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인디오나 메스티소(혼혈), 잉카의 유적들 그리고 각 도시마다 즐비한 스페인식 건물들을 이해할 수 없다. 조금 앞에서 이야기 한 파리 하수도 역시 그 역사적 연원을 모른다면 입장료까지 내고 들어간 거기에서 지독한 하수도 냄새밖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본문

 그렇기에 저자가 추천하는 여행은 모두가 갈망하는 유럽에 먼저 발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아시아를 돌아보며 현재는 우리보다 뒤에 자리하고 있는 그들의 나라의 현재를 바라보고, 그들을 양분으로 하여 현재의 열강의 대열에 오른 유럽을 바라보노라면 이전보다 풍성하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 조언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의 안타까운 사고를 돌이켜보며 그가 들려주는 일침은 때론 과연 이렇게까지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통렬하기 그지없다. 이 안에 들어있는 모든 그의 조언과 합치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알게 된 것으로 충분히 만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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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시선 / 조정래저 


 

 

독서 기간 : 2015.02.2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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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동화, 모르는 이야기 -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동화 50
김남규 지음, 민아원 그림 / 슬로래빗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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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둘리 속 고길동의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순간, 어른이 된 것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어느새 서른이란 나이를 훌쩍 넘어버린 나에게 있어서 동화는 어린 시절에만 존재했던 판타지와 같은 세계처럼 느껴진다. 갖은 고난 끝에 도래하는 것은 늘 해피 엔딩이던 이야기가 이 세상의 모습인 것처럼, 어릴 때는 세상은 그렇게 따스한 곳이라 생각했지만 어른이 되어 두 눈에 비친 세상을 보노라면 모든 것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그것이 혼탁해져 버린 나의 두 눈이 문제인지, 진정 세상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동화는 이제 나의 것이 아니라며 점점 멀리하고 있던 와중에 동화를 보는 새로운 눈이라는 문구에 동해 이 <아는 동화 모르는 이야기>를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는 내내 왜 나는 늘 동화를 세상이 만들어진 틀로만 봐왔던 것일까, 라는 생각이 스치게 된다. 동화라는 이름 안에서 풍기는 정해져 있는 틀의 교훈과 이 안에서는 이러한 점을 느껴야 해, 라는 것이 정해져 있던 것처럼, 나의 유년 시절의 동화는 틀에 박힌 동화로만 남아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만약 그 거위였다면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꼈을 거야. 억울하게 죽어서가 아니야. 아무 쓸데 없는 황금이나 낳는 거위, 사실은 생명을 낳지 못하는 거위라서 슬펐을 거야.”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아. 황금 거위를 바라는 이 세상에서, 부디 넌 생명을 낳는 거위가 되길 바랄게.” -본문

 <황금알을 낳는 거위>란 동화를 읽으며 탐욕스런 인간의 욕망의 모습과 그 욕망의 무게 때문에 죽음을 면치 못했던 거위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하루 한 알의 황금 거위 알로 만족했더라면 그 주인은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더 크게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제 손으로 자신의 부를 걷어차버린 그를 보면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보며 과유불급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저자는 거위의 관점에서, 그러니까 매일 황금알을 낳는 자신의 모습을 불행이라 여겼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언제나 인간의 눈으로만 바라보았던 이 동화 속에 거위는 늘 가련한 피해자의 모습으로만 받아들이며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조차 없던 나에게 다른 거위들과 같이 거위 알을 낳지 못한다는 사실은 거위에게 있어서는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생각해본 것이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필요도 없는 황금알을 매일 낳는 모습이 그에게는 또 하나의 괴로움일 수도 있었을 텐데 동화를 읽으면서도 황금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엄지공주가 자기 인생을 위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다니면서 그녀의 인생이 흘러가는 동안 그녀가 한 일은 고작 우는 것뿐이었어. –본문

 어릴 적 <엄지공주>란 이야기를 보면서 손가락만큼 작은 그녀의 이야기가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작고 가녀린 그녀의 앞에 등장하는 풍뎅이나 두꺼비는 갑작스레 등장한 불청객처럼 느껴졌고 결국 꽃나라 왕자를 만나 결혼하는 그녀를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나의 기억 속 엄지공주의 전부이다.

 그런 나에게 있어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숱한 고난 속에서 엄지공주가 한 것은 그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말이다. 자신의 앞에 닥친 모습을 보면서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 치며 자신이 있었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 따윈 없이 그저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그저 안쓰럽게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나 역시도 삶을 그런 자세로 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익히 알고 있던 동화라고 믿고 있던 나에게 저자가 들려준 것은 이전의 동화가 아닌 전혀 색다른 느낌의 것으로 그저 보여지는 것만을 전부라 믿고 그렇게 믿어야만 하는 줄 알고서는 다른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이 비춰보게 된다. 내가 알고 있던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라는 생각을 절실하게 전해주는 실로 놀라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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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 신동흔저


 

 

독서 기간 : 2015.02.1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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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5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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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 소설을 거의 읽어본 적이 없기에 추리 소설은 이러한 맥락이다, 라는 것은 있다면, 어떠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 안에 넘실거리는 수 많은 헛된 정보 속에서도 범인이 남기고 간 중요한 단서들만을 매의 눈으로 꿰뚫어보는 수사관이 등장하고 그 누구도 풀지 못할 미스터리했던 문제를 단숨에 풀어 넘기며 해결해 나가는 것이 추리 소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풀어나가며 미궁 속의 난제를 풀어나갈 때의 카타르시스를 전해주는 것이 추리 소설의 본질이 아닐까, 라며 생각하던 나에게 이 <약속>이란 책은 추리 소설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의 내면은 전혀 다른 느낌의 것이었다. 뻔한 것 같았지만 알고 보면 뻔하지 않은 흐름 때문에 살짝 당혹스럽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뻔함을 넘어 새로움을 전해주고 있기에 이렇게 풀어나갈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전진 경찰국장을 연임했던 H박사가 추리 소설을 집필하는 작가에게 한 사건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약속>은 시작된다. 한때는 H박사의 신임 받던 부하였던 마태가 운영하는 주유소에 들르면서 이전에 그가 수사했던 사건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빨간 치마를 입고 있던 소녀가 끔찍하게 살해당했던 사건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게 된다. 피해자를 발견하고 신고를 했던 폰은 이미 성범죄 전과 기록이 있었고 그 기록들은 결국 그를 범인으로 몰게 된다. 범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이후 폰은 강압적인 수사 끝에 결국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을 자백하고서는 자살로 스스로 생을 마치게 된다.

 우리 사나이 대 사나이로 얘기해봅시다. 공연히 시치미를 뗄 필요가 없소. 당신이 살인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소. 또한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경악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스스로의 범행에 대해 당신 자신도 놀라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소. 어쩌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된 거요.당신은 느닷없이 짐승처럼 돌변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막무가내로 소녀를 덮치고 그 애를 죽이게 된 거요. 자신을 능가하는지 알지 못할 힘 때문에,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당신은 혼비백산하도록 놀란 것 이오, 폰 군텐 씨. 당신이 자수하려고 메겐도르프로 함달음에 달려갔지오. 하지만 막상 그리고 보니 용기가 없어졌어요. 자백할 용기가. 이 용기를 되살려내시오, 폰 군텐. 우리가 당신을 도와주겠소. –본문

 마태는 피해 소녀의 부모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라도 범인을 잡겠다는 약속을 기반으로 해서 이미 종결된 사건을 다시금 끄집어 내어 수사를 하게 되는데 피해자와 비슷한 모습의 소녀를 미끼로 하여 범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진범은 그의 노력을 피해 전혀 다른 곳에서 흔적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추리 소설이었다면 마태에 의해서 이 문제가 풀리고 그로 인해 그는 오랜 노력 끝에 얻게 된 결말 안에서 뒤늦게 나마 안락한 삶을 지내는 그런 모습이 그려졌어야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을 그렇게 뻔한 추리 소설의 틀을 벗어나 다른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이윽고 그들은 객실 앞에 섰다. 검사는 아직도 냅킨을 둘러맨 모습이었다. 판사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 엄숙한 대열은 문지방에 선 채 얼어붙고 말았다. 창틀엔 트랍스가 부동자세로 매달려 있었다. 짙은 장미 향기가 풍기는 가운데 부연 은빛 하늘을 배경으로 드러난 한 어두운 실루엣. 그 모습이 어찌나 절대적이었는지, 검사는 점점 밝게 모습을 드러내는 아침 햇살을 외눈 안경에 반사시키며, 한참 동안이나 숨을 몰아쉰 연후에야 잃어버린 친구에 대한 슬픔과 허망함을 가누지 못하고 진정 비통함에 가득 찬 절규를 내질렀다.
 
알프레도, 내 선량한 알프레도! 대체 자넨 무슨 생각을 했던 건가! 자넨 우리의 멋진 남성 야회를 망쳐놓고 있단 말일세!”. –본문

 뒤이어 이어지는 <사고>라는 이야기는 직물판매업에 종사하는 트랍스가 갑작스런 사고에 여관에 하루 머무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직 판사과 검사, 변호사 출신인 어르신들이 시간을 때울 겸 하고 있는 재판 놀이에 함께 하게 된 그는 그저 재미 삼아 피의자의 신분으로 재판에 가담하게 된다. 그렇게 재판에 빠져들면 들수록 지난 날의 자신의 과오에 대해 드러나는 모습과 마주하게 되는데 평범한 한 남자의 일상이자 별다를 것 없을 것 같은 중년의 한 남자에게서 보여지는 모습은, 남들과 같은 평범한 그의 삶이 사실은 내 스스로에게 너무도 관대한 잣대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약속>이란 이야기가 기존의 틀을 깨어낸 것이라면 <사고>는 그 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모습의 내가 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속에서 만나게 되는 반전이 결국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보다 보면은 그 모습에서 간담이 서늘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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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시민 / 김서진저


 

 

독서 기간 : 2015.02.17~02.20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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