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균형 - 이해의 충돌을 조율하는 균형적 합의 ㅣ 최승필 법 시리즈
최승필 지음 / 헤이북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법에 대해 생각하자니 불현듯 고 노회찬 전 의원이 떠오른다.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할 법이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는 날카로운 풍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법 현실에 대한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법을 단순히 사회의 질서 유지와 안녕을 위한 장치 정도로 정의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법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나 집단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살아숨쉬는 생물과도 같은 성격을 가진다.

 

신간 『법의 균형』은 요즘 법의 경향 혹은 관심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고 이야기한다. 세상이 더 풍요로워지고 먹을거리나 가질 것들이 많아지면서 사회 곳곳에서 더 많은 이익을 취하기 위해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반면에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투쟁을 벌이기도 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볼 수 있다. 다양한 법들이 국회에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미 입안 과정에서 이해집단의 요구에 따라 난도질되거나 폐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말 필요하고 시급히 시행되어야 할 사안들이 정치인들이나 권력자들의 필요 상황에 따라 경중의 가치가 바뀌니 정말 한탄할 노릇이다.







법의 본래 기능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법 제정과 집행은 그렇지 못하다. 많은 경우 특정 그룹이나 유력한 개인의 사적 이익, 정치적 목적으로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미 좋은 법이 만들어져 있는데도 활용하지 못하고 이슈에 따라 비슷한 내용의 법을 다시 만들겠다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거기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을 잘 조정하기 위한 법의 기능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지금 사회가 단순한 이익 갈등을 넘어 세대 간 대립, 성별 간 대립, 지역 간 대립 등 각종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법의 기능이라 한다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적 문제가 이념적 문제로, 그리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맹목적인 대결 구도로 변질되는 한국 사회는 곧 터질 폭탄을 품고 있는 것만 같다.

 

법은 과거로부터 축적된 인류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 세대까지 배려해야 하는 성질의 것으로 확장되었다. 여기에는 금융경제의 무책임한 가치 확장과 자원의 고갈과 환경 위기라는 실존적 문제까지 겪고 있는 지구촌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대의민주주의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시민 사회의 역할, 시민 개개인의 각성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우리는 좀 더 법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기득권이 공공의 가치를 사유화하는 악행을 더 이상 바라보고만 있거나 모르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익은 취하면서 책임의 부담은 지지 않으려는 불법적인 집단이나 개인을 박멸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바른 방향성을 설정해야만 한다. 우리의 무지함으로 인해 정말 개혁되어야 할 갑이 철옹성 같은 법의 보호를 받고 이익을 취하고 있는데, 그 아래서 얼마 되지도 않는 파이를 가지고 수많은 을들이 제살 깎아먹기에 빠져 있는 것은 비극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교육에서 찾는다. 어린 시절부터 일상에서 적용되는 법 내용들, 예를 들어 계약 관계가 어떻게 이뤄지는 등을 가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교육 활동에 넣어야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이 윤리와 이익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현실적으로 가장 안정된 상태로 법 환경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공정, 균형, 정의, 합리성 등의 가치가 필요함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상생의 핵심은 이익의 균형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법이 어떤 고상한 대의를 폼고 있다거나,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라거나, 똑똑한 사람들만 다루는 것이라거나 하는 환상을 버리자.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법 지식부터 배우고 활용할 수 있도록 아이들부터 제대로 교육시키자. 그리고 무엇보다 법이 특정 이익 집단이나 개인의 사적 이익 취득 수단이 되지 않도록 모두의 법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윤석열의 운명 - 오풍연 전 서울신문 법조대기자가 지켜본
오풍연 지음 / 오풍연닷컴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조국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차기 대권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하고 있다. 그것도 본인 의지가 아니라 논란의 중심에서 굳건히 본인 스타일대로 버티던 인물이 말 그대로 타의에 의해 가장 강력한 대권 후보가 된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이야기다. 이렇게 비상식적인 상황이 왜 일어나야만 했을까? 촛불 혁명으로 세워진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촛불이 요구했던, 기대했던, 희망했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거의 자멸하다시피 실책을 거듭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원하지 않았던 고집까지 부려가며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 최종 평가는 후대의 몫이겠지만 이미 진보 정권으로서의 진정성은 내로남불로 무너진지 오래고, 더 크게는 자기들이 설정했던 기준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언행불일치는 너무나 큰 실망만 안겨주고 있다.







윤석열 씨가 유력 대권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안철수 신드롬을 돌아보게 된다. 이밖에도 비교하는 케이스가 많다. 고건 전 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있다. 정치의 외곽에 있다가 갑자기 대권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사람들이다. 이 책의 평가에 의하면 안철수나 반기문 같은 사람과는 달리, 윤석열은 검찰 범죄정보3담당관으로서 여의도 정치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이 있는 것과, 논란 이후 보인 언행으로 보아 정치 감각을 어느 정도 보여주기까지 하고 있어 실제로 대선 후보로 나선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 안철수 신드롬 때 우리가 기대했던 것이 무엇이었나? 그것은 바로 기존 정치와는 다른 새로운 비전과 리더십으로 대한민국을 새로운 정치 문화로 바꿔주리란 희망이었다. 안철수는 하나의 대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든든한 후원자로 뒷받침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판단으로 결국 기존 정치권에 물들고 말았고, 이후에는 그저그런 정치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히려 정치인 이전의 안철수로 남아 있었다면 훨씬 더 나라에 이익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후에 보인 행보들은 그가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염원을 담아내기에 적절한 역량은 갖춘 인물이 아니었다는 확인만 반복해서 해주고 있다.

 

나는 윤석열 신드롬도 같은 맥락으로 본다. 윤석열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상식과 정의와 공정이라는 키워드로 이슈를 선점하고, 기존 정치 권력과 대립하는 가운데 더 많은 국민들의 성원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그가 이번에야말로 기존 정치와는 다른 새로운 무엇을 보여줄 인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안철수 때와 다름없다. 그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제3지대 신당이라는 새로운 독자 세력으로 대선을 치르지 않는다면 그건 또 한 번 안철수의 재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만약 정말 정치할 생각이 있다면 그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만약 그가 국민의 힘과 같은 기존 보수 세력에 합류하여 대선을 치르려 한다면 그는 반드시 패배할 것이다. 대선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이 된다 해도 이리저리 휘둘려서 아무 것도 못할 것이 뻔하다. 그가 비록 실패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독자 세력을 갖추어 대선에 나서야 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그러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정치권에 붙는 선택을 한다면 그는 안철수와 같은 레벨의 정치인이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이력은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판단을 어렵게 한다. 그는 보수적인 집단에서 성실하게 자기 역할을 해내며 여기까지 온 인물이다. 이런 점만 보면 국민의 힘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것은 기존 정치에 새로운 변화를 주지 않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반면 기존 정치권과는 보수든 진보든 가리지 않고 자리 스타일대로 해온 모습도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안철수가 갔어야 했던 제3의 길로서 새로운 정치 질서를 보여줄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그의 행보는 한국 정치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윤석열의 운명』은 윤석열 씨가 어떻게 유력한 대선 후보로 올라설 수 있었는지 그 황당한 과정을, 저자의 지난 칼럼들을 역시간순으로 배열하여 그 흐름을 거슬러 추적하는 구성을 띄고 있다. 이것은 이 책의 독특한 편집이다. 모든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후 한 달 정도 지날 때 벌어졌다. 사실 별 대수롭지도 않은 사안 때문에 왜 그토록 오랜 시간 국민들이 피로를 겪어야 했는지 너무 기가 막힌다. 조국이 뭐고 정경심이 뭐길래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워야 하고, 또 추미애와 윤석열의 줄다리기가 도대체 나라에 무슨 이익이 있길래 그토록 오래 시간을 끌어 사람들을 피곤하게 해야 했는지 도대체 이해불가다.

 

그래서 황당한 과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윤석열 씨가 만일 기존 정치권과 손을 잡는다면 그 이후로는 누가 되도 아무 의미 없다. 지난 세월 속에서 보아온 것처럼 어차피 반복될 게 뻔하기 때문에. 그러니 한 줄기 기대를 걸어본다면, 윤석열 씨가 정말 이 책에서 기대한 대로 남다른 모습을 계속 보여줄 수 있다면, 정말 새로운 정치적 비전을 실천해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는 성실한 법조인이었지 정치에 뜻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발목을 잡을지 장점이 될지는 모르겠다. 아무리 그가 좀 색다른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한들, 법조인 출신 선배 정치인들을 답습하지 않으리란 보장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 네이버 「리앤프리 책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 마종기 산문집
마종기 지음 / &(앤드)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이 인간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스스로 일깨우고, 자기 감성의 자유로움을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자유의 귀함과 필연성을 위해서 나는 자주 내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정리해보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만 하겠지요.

- p.18~19

 

시를 쓰는 사람은, 문학을 하는 사람은 성실해야 한다. 성실함은 살아남아야 하는 모든 동물에게 요구되는 능력이겠지만, 인간의 성실함은 자기 성찰이라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특별하다. 이를 통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인생의 소중함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마종기 시인은 바로 이런 점에서 매우 모범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진술은 내가 생각하는 문학하는 사람의 바람직한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 고등학교 상급생 시절 대학 선택을 문과로 하려다가 갑자기 의과로 바꾼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그 당시 문인들의 생활태도였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이는 문인이 무슨 큰 훈장인 양, 부도덕하고 어이없을 정도로 절제되지 못한 생활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어떤 이는 자기애가 너무 심해서 주위 문인들을 시기하고 욕하고 천재인 척하면서 정말 별종같이 사는 이가 많았지요. 그래서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문과를 택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 p.40~41

 

나는 대개 흩어진 것보다는 정리된 것을 좋아하고 질서를 좋아하고 쉽게 계산되는 사물의 정확하고 정당한 이해를 더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에, ……

- 29

 

문학에 대한 어떤 입장이 처음으로 나왔던 때를 돌아보는 내용이다. 그리고 의사로서, 시인으로서 한창 활동하고 있을 때의 태도도 나온다. 저자는 매우 건강하고 건전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문학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관리가 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일정한 노동 시간과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단지 노동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무슨 특별한 영역에 있는 것처럼 여기거나 다루어질 때, 타락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가끔 예술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말재주나 말장난을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거나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한때 빛나는 재능을 믿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거나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을 자랑거리나 개성 같이 여기는 괴이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런 자들에게서 나오는 생산물이나 겨우 한때의 유행에 지나지 않는 인스턴트 식품과도 같은 것인데, 이것은 함량 미달의 예술 창작-공급자도 문제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수준이 한참 후퇴했다는 절망적인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 시는 사랑의 한 표현 방법이고 체온의 나눔이고 생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 시의 목표가 사랑이 아니라면 그런 시는 내게 필요 없는 것이겠지요. 왜냐면 보기보다 잔인하고 외롭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시는 삭막한 세상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36


예술의 존재 이유는 사랑의 표현이요, 실천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 배려, 위로다. 전쟁과도 같은 삶에서 예술은 하나의 숨통이 되어야 한다. 시를 무슨 언어유희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한심한 사람들은 읽어보면서 반성해봐야 할 대목인 것 같다.

 

 

자신을 소유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시를 읽는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 38

 

마종기 시인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피난살이 중에도 학교 공부만큼 예술과 교양에 관한 소양을 갖추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셨기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가정 환경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시는 구체적인 삶과 죽음, 다시 말해 허황된 말재주와 말장난이 아니라 말 그대로 피부에 와닿는 삶과 죽음에 대한 경험과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의사로서 훈련받고 있던 과정은 그의 문학의 방향, 좋은 시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과 결합하여 자기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자기가 우선시되고 중심이 되는 서양 철학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찾는 레비나스의 철학을 소개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저자의 직업 분야인 의학은 철학이나 인문학에 속한 학문이었다고 한다. 의학이 다루는 상대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7세기 산업혁명 이후 의학도 과학에 속하게 되고 감성의 인간은 의사 앞에서 자취를 감춘다. 저자는 이런 잘못된 관계를 바로 잡으려면 의사에게 인문학과 예술을 가르쳐 인간의 복잡한 감성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 후반부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와의 인연이 소개되어 눈길을 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씨가 젊은 날 저자의 아버지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감사를 전하기 위해 만나러 온 장면이었다.

 

저자의 글을 읽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이 참 투명하고 순수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의학과 문학의 길을 정식으로 걷는 독특한 이력은 독자로 하여금 동경을 갖게 한다.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은 코로나 시대에 자신의 글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겸손한 마음이 잘 전해지는 따뜻한 책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코로나 크래시 - 팬데믹은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웠는가
그레이스 블레이클리 지음, 장석준 옮김 / 책세상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론대로만 된다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천국과 같다. 하지만 인간을 나태하게 하고 생산성이 점점 떨어지며 결국 참혹한 독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역사가 증명했다. 더 이상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찾지 못한 이유로,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는 자본주의가 최적의 도구임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자본제 사회의 현실은 그 부작용으로 인해 또 하나의 비극으로 치닫을 수밖에 없음을 마찬가지로 확인하고 있다. 자본주이 역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처럼 이론대로만 된다면 천국과 같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미덕은 열심히 땀흘려 일한 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인데, 현실에서 우리는 그런 평등과 공정, 정의로 채색된 자본주의의 모습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인간의 본성을 간파하지 못한 것처럼, 자본주의 역시 인간의 탐욕이라는 속성이 초래하는 부작용을 간파하지 못했거나, 외면하고 있는 까닭이다.





 

 

『코로나 크래시』는 2008년 금융위기로 야기된 자본주의 경제의 불안정성에 대한 잘못된 대응 방법 때문에 안정화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상태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닥친 코로나19의 충격으로 더욱 큰 위기가 닥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실물 경제와 적절한 보조를 맞추지 못한 비대해진 금융화 기반의 경제 시스템이다. 자본주의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생산과 소비의 순환이 일어나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빚이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빚 내서 물건 사고 소득이 생기면 갚고 빚 내서 물건 사고 소득이 생기면 갚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문제는 여기서 기업이 돈을 벌면 이것을 노동자들에게 충분히 분배해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그리고 더 큰 이익을 위해 생산량을 더 늘리는 것이다. 이때 충분히 소비할 만한 돈이 없는 노동자들은 돈을 빌려서 기존의 생활 방식을 유지해나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그마저도 힘들어지면 결국 기업이 물건을 다 팔지 못해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너무 커진 기업을 그대로 죽일 수 없어 국가가 공공재정을 투입해 이들을 살려내는 코미디가 발생한다. 괘씸한 것은 그들이 잘한 것도 아니면서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오너들은 막대한 연봉을 챙긴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국가는, 정확히는 정치인들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자금을 더 공급받기 위해 기업의 개 노릇을 주저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 방식이 토지와 집이라는 고정 자산에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자본주의 원리와 같이 부동산도 값이 올라야 수익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거래가 계속 일어나려면 가격이 계속 올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비상식적이다. 무한정 가격이 오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고공행진하는 가격의 집을 사려면 빚을 내야 하는데, 용케 빚을 낸다 해도 그 과정에서 생긴 금융위기로 인해 직장을 잃고 돈이 나올 구멍이 사라져 순식간에 하우스푸어가 되고 길거리에 나앉게 된 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자본주의의 폐악은,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북반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대기업 자본이 자국 내에서 더 이상 수익을 내기 힘들어지자 남반구의 가난한 나라들에게 문명화와 산업화라는 미끼를 던져 투자를 받아들이게끔 한 후, 실제로는 그 나라에서 생긴 수익은 모두 자기들 나라로 빼돌리고, 가난한 나라들이 거의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빛덩이에 올라앉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놓고는 기존의 신자유주의 질서에 순응하라는 조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와줄 수 없다는 개망나니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는 새로운 자본주의적 제국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정확한 표현이다. 과거 열강들이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수탈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 지금은 기업과 국가가 결탁하여 조금 더 세련되어 보이는 방법을 통해 취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경제적 식민지 개척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더욱 더 큰 문제는 지나친 화석 연료 사용으로 지구 온난화를 넘어 이상기후, 기후이변으로 인해 전 지구적으로 인류의 생존에 위협을 일으킬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지경이 되고도 자본주의의 악마적인 수탈자들은 계속해서 어떻게 하면 자기들의 배를 채울 수 있을까 궁리만 하고 있다.







저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유일한 대안으로 남반구의 빚을 전면적으로 탕감해주고, 전 지구적 그린 뉴딜의 체제로 들어가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즉 더 이상 정상적인 기능이 힘든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대대적인 수술이 들어가야 하고, 산업의 중심도 더 이상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비정상적으로 부를 독점하고 있는 대기업이나 대주주들로부터 그들이 쥐고 있는 부의 비율이 정당하지 않은 것임을 천명하고 회수해야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당장은 새로 생기는 수익들부터 형평성에 맞게 분배되는 것부터 시작해야 될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기업이나 대자본들이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국가의 도움을 받아 생존을 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내용을 보며, 이것 이상의 코미디가 있을 수 없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에게 복지 정책을 펴는 것에 대해 찍소리 한 마디도 해서는 안 되고 순응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 논리대로라면 그들도 거지 같이 국가에 빌붙어 살아남은 비루한 존재들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복지 정책을 반대하고 시장 자유를 운운하는 것일까? 애초에 시장에서 사라져 길바닥에 나앉아 비참한 거지꼴로 내쳐져야 될 것들이 말이다. 모두가 풍요롭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비전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실용적이고 효과적인 지구 살림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최적의, 최선의 방법임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네이버 「리앤프리 책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 격변하는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저자의 문제의식은 왜 세계가 과거의 영광으로 회귀하려는 욕망을 보이는가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영광이 완벽한 것도 아니다. 어떤 체제나 이념도 항상 희생자를 바닥에 깔고 있었기 마련이고, 오히려 통계적으로는 지금 시대가 더 나아졌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미지의 세계와 실재 세계의 혼돈에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즉 우리는 실질적으로는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현실적으로 누리기보다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풍요를 가능하게 한 자본주의에 내재된 끊임없는 욕망과 소비의 재생산이라는 속성이 만들어낸 가상현실에서의 새로운 풍요 추구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실체와 가상을 구분하지 못한 주체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통찰이다.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광기는 어떤 나라에서는 민주주의와 효율적으로 결합하여 그나마 살 만한 세상이 되었는가 하면, 국가자본주의로 변신을 꾀한 중국 같은 시스템에서는 오히려 공산당 체제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다. 이렇게 온전하지 못한 세계사의 격변 속에서 트럼프와 같은 일견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지도자가 극히 현실적인 선택을 바탕으로 한 정치와 외교는, 각 나라로 하여금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브렉시트는 그 일환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책에서 볼 수 있듯이 단일 유럽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각자의 실속을 챙기기 위해 동분서주하거나, 개방성보다 폐쇄적인 흐름으로 가고 있는 유럽연합의 현주소를 보면, 지금의 정치체제나 경제체제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인터넷 기반의 세계 경제 재편을 대체로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가상 현실 기반의 모든 산업이나 문화가 사람들의 인식을 왜곡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신실재론’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이 ‘신실재론’은 지금의 민주주의나 신자유주의 자본제 사회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종 갈등이나 종교 갈등의 경우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매우 비이성적인 판단 기준에 의해 지금까지 악화일로를 걸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와 관련해서는, 민주주의는 자기 의견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들이 결국은 타협점을 찾아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체제, 즉 생각과 의견의 차이로 인한 싸움이 일어날 가능성을 최소화한다는 극히 현실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수단과 같다는 것이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주장은, 현재 자본주의를 뒤집을 만한 체제의 가능성을 극히 낮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하나의 관찰 도구는 될 수 있으나 그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결국 자본주의 자체의 내적 성질을 수정하는 정도가 최선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저자는 ‘윤리자본주의’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수학의 쓸모로 인해 여러 기업이 수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 지구 환경이나 빈곤 문제, 지속가능한 경제의 관점에서 윤리가 매우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것이고, 이것이 기업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기에 윤리학자들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독특한 주장을 펼친다. 그래서 기업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윤리 부서의 의견에 따라 정책이나 전략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가 지금껏 보여온 폐해를 보완하고 보다 나은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신실재론이 추구하는 바는 더 나은 인간성으로 발전하는 것이 가능해진 세계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을 이성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더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생존의 원천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기술의 한계와 오해를 지적하는 저자의 관점은 매우 흥미로우며, 지금껏 일편향적인 찬반여론에 새로운 생산적인 토론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네이버 「북뉴스」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