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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 마종기 산문집
마종기 지음 / &(앤드) / 2021년 4월
평점 :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이 인간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스스로 일깨우고, 자기 감성의 자유로움을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자유의 귀함과 필연성을 위해서 나는 자주 내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정리해보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만 하겠지요.
- p.18~19
시를 쓰는 사람은, 문학을 하는 사람은 성실해야 한다. 성실함은 살아남아야 하는 모든 동물에게 요구되는 능력이겠지만, 인간의 성실함은 자기 성찰이라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특별하다. 이를 통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인생의 소중함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마종기 시인은 바로 이런 점에서 매우 모범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진술은 내가 생각하는 문학하는 사람의 바람직한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 고등학교 상급생 시절 대학 선택을 문과로 하려다가 갑자기 의과로 바꾼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그 당시 문인들의 생활태도였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이는 문인이 무슨 큰 훈장인 양, 부도덕하고 어이없을 정도로 절제되지 못한 생활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어떤 이는 자기애가 너무 심해서 주위 문인들을 시기하고 욕하고 천재인 척하면서 정말 별종같이 사는 이가 많았지요. 그래서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문과를 택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 p.40~41
나는 대개 흩어진 것보다는 정리된 것을 좋아하고 질서를 좋아하고 쉽게 계산되는 사물의 정확하고 정당한 이해를 더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에, ……
- 29
문학에 대한 어떤 입장이 처음으로 나왔던 때를 돌아보는 내용이다. 그리고 의사로서, 시인으로서 한창 활동하고 있을 때의 태도도 나온다. 저자는 매우 건강하고 건전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문학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관리가 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일정한 노동 시간과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단지 노동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무슨 특별한 영역에 있는 것처럼 여기거나 다루어질 때, 타락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가끔 예술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말재주나 말장난을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거나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한때 빛나는 재능을 믿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거나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을 자랑거리나 개성 같이 여기는 괴이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런 자들에게서 나오는 생산물이나 겨우 한때의 유행에 지나지 않는 인스턴트 식품과도 같은 것인데, 이것은 함량 미달의 예술 창작-공급자도 문제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수준이 한참 후퇴했다는 절망적인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 시는 사랑의 한 표현 방법이고 체온의 나눔이고 생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 시의 목표가 사랑이 아니라면 그런 시는 내게 필요 없는 것이겠지요. 왜냐면 보기보다 잔인하고 외롭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시는 삭막한 세상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36
예술의 존재 이유는 사랑의 표현이요, 실천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 배려, 위로다. 전쟁과도 같은 삶에서 예술은 하나의 숨통이 되어야 한다. 시를 무슨 언어유희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한심한 사람들은 읽어보면서 반성해봐야 할 대목인 것 같다.
자신을 소유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시를 읽는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 38
마종기 시인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피난살이 중에도 학교 공부만큼 예술과 교양에 관한 소양을 갖추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셨기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가정 환경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시는 구체적인 삶과 죽음, 다시 말해 허황된 말재주와 말장난이 아니라 말 그대로 피부에 와닿는 삶과 죽음에 대한 경험과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의사로서 훈련받고 있던 과정은 그의 문학의 방향, 좋은 시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과 결합하여 자기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자기가 우선시되고 중심이 되는 서양 철학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찾는 레비나스의 철학을 소개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저자의 직업 분야인 의학은 철학이나 인문학에 속한 학문이었다고 한다. 의학이 다루는 상대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7세기 산업혁명 이후 의학도 과학에 속하게 되고 감성의 인간은 의사 앞에서 자취를 감춘다. 저자는 이런 잘못된 관계를 바로 잡으려면 의사에게 인문학과 예술을 가르쳐 인간의 복잡한 감성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 후반부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와의 인연이 소개되어 눈길을 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씨가 젊은 날 저자의 아버지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감사를 전하기 위해 만나러 온 장면이었다.
저자의 글을 읽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이 참 투명하고 순수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의학과 문학의 길을 정식으로 걷는 독특한 이력은 독자로 하여금 동경을 갖게 한다.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은 코로나 시대에 자신의 글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겸손한 마음이 잘 전해지는 따뜻한 책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