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법의 균형 - 이해의 충돌을 조율하는 균형적 합의 ㅣ 최승필 법 시리즈
최승필 지음 / 헤이북스 / 2021년 4월
평점 :
법에 대해 생각하자니 불현듯 고 노회찬 전 의원이 떠오른다.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할 법이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는 날카로운 풍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법 현실에 대한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법을 단순히 사회의 질서 유지와 안녕을 위한 장치 정도로 정의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법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나 집단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살아숨쉬는 생물과도 같은 성격을 가진다.
신간 『법의 균형』은 요즘 법의 경향 혹은 관심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고 이야기한다. 세상이 더 풍요로워지고 먹을거리나 가질 것들이 많아지면서 사회 곳곳에서 더 많은 이익을 취하기 위해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반면에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투쟁을 벌이기도 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볼 수 있다. 다양한 법들이 국회에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미 입안 과정에서 이해집단의 요구에 따라 난도질되거나 폐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말 필요하고 시급히 시행되어야 할 사안들이 정치인들이나 권력자들의 필요 상황에 따라 경중의 가치가 바뀌니 정말 한탄할 노릇이다.
법의 본래 기능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법 제정과 집행은 그렇지 못하다. 많은 경우 특정 그룹이나 유력한 개인의 사적 이익, 정치적 목적으로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미 좋은 법이 만들어져 있는데도 활용하지 못하고 이슈에 따라 비슷한 내용의 법을 다시 만들겠다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거기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을 잘 조정하기 위한 법의 기능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지금 사회가 단순한 이익 갈등을 넘어 세대 간 대립, 성별 간 대립, 지역 간 대립 등 각종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법의 기능이라 한다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적 문제가 이념적 문제로, 그리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맹목적인 대결 구도로 변질되는 한국 사회는 곧 터질 폭탄을 품고 있는 것만 같다.
법은 과거로부터 축적된 인류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 세대까지 배려해야 하는 성질의 것으로 확장되었다. 여기에는 금융경제의 무책임한 가치 확장과 자원의 고갈과 환경 위기라는 실존적 문제까지 겪고 있는 지구촌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대의민주주의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시민 사회의 역할, 시민 개개인의 각성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우리는 좀 더 법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기득권이 공공의 가치를 사유화하는 악행을 더 이상 바라보고만 있거나 모르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익은 취하면서 책임의 부담은 지지 않으려는 불법적인 집단이나 개인을 박멸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바른 방향성을 설정해야만 한다. 우리의 무지함으로 인해 정말 개혁되어야 할 갑이 철옹성 같은 법의 보호를 받고 이익을 취하고 있는데, 그 아래서 얼마 되지도 않는 파이를 가지고 수많은 을들이 제살 깎아먹기에 빠져 있는 것은 비극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교육에서 찾는다. 어린 시절부터 일상에서 적용되는 법 내용들, 예를 들어 계약 관계가 어떻게 이뤄지는 등을 가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교육 활동에 넣어야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이 윤리와 이익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현실적으로 가장 안정된 상태로 법 환경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공정, 균형, 정의, 합리성 등의 가치가 필요함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상생의 핵심은 이익의 균형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법이 어떤 고상한 대의를 폼고 있다거나,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라거나, 똑똑한 사람들만 다루는 것이라거나 하는 환상을 버리자.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법 지식부터 배우고 활용할 수 있도록 아이들부터 제대로 교육시키자. 그리고 무엇보다 법이 특정 이익 집단이나 개인의 사적 이익 취득 수단이 되지 않도록 모두의 법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