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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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서 피안(彼岸)’은 현실 밖의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세계, 깨달음의 공간을 의미한다. 이에 반대 개념으로 차안(此岸)’이 있는데, 이는 우리가 태어나고 죽고 고통을 겪는 현실세계를 말한다. 지금 우리가 읽는 SF 장르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나 기술이 실현된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 현실을 비판하거나 성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의 제목이 그런 장르적 특성을 잘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여섯 편의 중단편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분량으로 봤을 때 중편 셋, 단편 하나, 초단편이라고 할 짧은 2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작품인 당신은 어디에 있지는 인공지능 복제인간 서비스인 분신의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벤처기업인 런이의 이야기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초기 투자 유치에 성공해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했으나, 치열한 업계에서의 경쟁과 생각대로 진척이 이뤄지지 않아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는 자사 제품의 추가 투자 유치의 어려움을 처하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인물 런이는 결국 바쁜 생활 속에서 그의 연인 쑤쑤와의 관계까지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이 작품 속에서 인공지능 클론인 분신은 주인을 대신해 실생활에서 역할 대행을 할 수 있는 제품으로 등장하지만 완성도가 떨어져 아직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초기 인공지능 개발 시대를 반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기존의 인간관계가 최신기술을 향한 인간의 열정으로 인해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작품인 영생병원은 주인공 첸루이가 병원에서 회복 불능의 죽어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바쁜 일상에 쫓겨 다정하게 대해지 못해드렸던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집에 돌아와보니 멀쩡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있는 어머니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회생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던 어머니가 어떻게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이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는데... 복제인간과 기억을 소재로 하여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규정되는가를 고찰한 작품이다.

 

세 번째 작품인 사랑의 문제는 비록 상품이긴 하나 고도화한 인공지능 클론이 사회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래 사회를 그린 작품으로, 이 작품집의 주제 의식이 한층 짙어지는 지점이라 하겠다. 인공지능 알고리즘 개발자로서 AI 업계의 에디슨으로 불리는, 상징적인 인물인 린안이 어느날 자택에서 흉기에 찔려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의 아들이 용의자로 지목되는데, 이때 그의 혐의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근거를 내놓은 캐릭터가 바로 그아버지의 개발품인 뛰어난 성능의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비서인 천다이다. 작품은 급박하게 진행되는 듯하나 같은 상황을 두고 등장인물들의 시점에서 번갈아 장면들이 묘사되면서, 인간만의 고유한 정서나 가치관이 과연 계량화, 수치화되어 옳고 그름이라는 단순한 결론으로 좌지우지 될 수 있냐를 묻고 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의 핵심은 최적화된 논리와 연산이고 이것으로 가치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 천다는 인간들이 왜 비이성적이고 비상적인 선택을 하는지 계속 의문을 제기한다. 감정의 폭발과 정서의 불안정성을 조절하고 제거해야 할 요소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가운데 진범이 밝혀지는데 그 전개와 결말도 짧지만 강한 인상을 준다.

 

네 번째 작품인 전차 안 인간은 군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탑재된 무기, 장차 인간과 인공지능 기계군단이 군사적으로 대립할 수 있다는 위험한 가능성을 다루고 있다. 다섯 번째 작품인 건곤과 알렉은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라 할 수 있는 특성에 대해서 인공지능이 이해할 수 없는 특성에서 이해가 필요하다는 인식의 발전이 일어난다면 대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매우 짧은 분량이지만 무거운 주제를 잘 압축하여 긴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여섯 번째 작품인 인간의 섬은 시간적으로 100년이 넘는 우주 탐사를 나갔다가 지구로 돌아온 탐험대원들이 맞닥뜨린 인공지능 시스템이 지배하는 세상에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의미의 생성과 가치의 부여조차 모두 논리와 연산, 효율성, 최적화라는 시스템의 통치 속에서 통제되는, 인간에게 있어서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로 발전할 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암울한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인간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와 의미를 인공지능 기술에 온전히 반영할 수 있겠느냐는 주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결국 고도의 기술 발전 사회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등의 인문학적, 철학적 질문을 끊임없이 이끌어내며, 인류에게 펼쳐진 중대한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만들 것이다. 이 선택이 인류를 어떤 상황으로 몰고 갈 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제자리에 멈춰서 머뭇거릴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이 작품은 미래를 통해 현실을 성찰하고, 또 현실에 내재된 복잡한 미래성을 탐구하는 연구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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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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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에서 이승우 작가에 대한 평론을 보면서, 기독교적 세계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작가에 대하여 관심이 갔다. 그전에는 이름만 겨우 아는 정도였고, 스치듯 보았던 그의 작품들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통해서는 큰 인상을 받지 못했었다. 뭔가 우울하고 무거운데 그다지 끌리지 않는 느낌. 그러나 앞서 말한 책에서 그의 이력과 작품에 서린 정서나 세계관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가운데, 작가의 산문집인 소설가의 귓속말출간 소식은 매우 반가웠고, 이렇게 읽게 된 것이 이승우 작가의 작품세계를 접하기 전 준비운동 격이라고 할까, 참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사이사이에 인용되는 성경 구절들이었다. 저자의 생각과 사고의 기반을 이루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인데, 첫 장부터 창세기의 한 장면을 인용하며 불완전하고 불가해한 인간의 특성을 통찰하는 내용이 나온다. 물론 저자는 이 부정적인 인간상을 부정적인 영역에 내버려두지 않고 불가능성은 포기의 구실이 아니라 추구의 이유가 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희망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인간의 불완전성과 신의 완전성이라는 상반된 특성이 신과 인간 모두를 동일하게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저자는 가장 중요한 테마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나와 외부세계의 연결성에 주목한다. 나를 이루는 것은 내 안의 요소뿐만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물, 사건,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면세계와 외부세계는 대립하거나 충돌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나아가 나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타인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고, 내면을 들여다 보면 외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나와 나 아닌 것들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만약 그려야 하는 어떤 외부적인 것이 있다면 먼저 그것이 나의 내부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다소 어려운 설명이 덧붙는다.

 

성경을 인용하면서 저자의 생각을 드런내는 몇몇 부분을 살펴보자.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람들이 곧 길, 길이 곧 사람들임을 주장한다. 또 내면은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인데, 이것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신약성경의 고린도후서 418절을 인용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는 부분을 통해 그 방법을 주목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곧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보는 주체에게 요구되는 주의 깊음을 뜻한다고 한다. 이것을 통해 그의 외부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유명한 구절에 대해서도, 무의식적인 것과 의식적인 것을 구분하며 귀 있는 자의 보다 구체적인 의미는 귀가 있다는 의식이 있는 자라는 저자의 해설이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을 때 독자에 따라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에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저자는 다음과 같은 상황으로 설명한다. 먼저 책을 읽는 행위는 독자 자신의 이제까지의 삶에 의해 형성된 감각이 참여해서 하는 일종의 번역작업이기 때문이라는 것과, 다음으로 독자가 현재 처해 있는 상태, 즉 장소, 연령대, 읽고 있는 자세 등이 읽고 있는 텍스트의 속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어의 불완전함과 독자의 개별적 상황들이 저자의 원 의도와 다른 이해와 해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저자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이것이 소설이 아닌 에세이어서인지, 소설가보다는 철학자의 깊이 있는 사색의 향연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비슷한 개념들을 대입하거나 주어나 목적어를 서로 바꾸면서 동일한 문장구조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그 의미를 강조하는 서술 방식 같은 것들이 그런 인상을 더 강하게 한다. 앞으로 이승우 작가의 작품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하나씩 살펴보면서 참고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듯하다.

 

귓속말치고는 좀 심오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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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사람의 조건 휴탈리티
박정열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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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에게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인지 함께 고민해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서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상상력과 협동력을 논한 바 있다. 이것들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떠올리고 의미를 부여하며, ‘가치 기준이나 목표라는 불분명한 개념을 실제로 도달하거나 성취해야 할 구체성을 띈 어떤 대상으로 여길 수 있는 독특한 능력.

 

인류는 자연, 즉 세상과의 상호작용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설정하고 목표와 방향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리고 그런 성과 혹은 업적들이 축적되고 지식화되고 나아가 해석을 하는 단계로 발전되면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 과정이 전체적으로 반복되면서 발전은 가속성까지 품게 되었다.

 

이런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 다듬어지고 세련되어지면서 인간성의 중요한 한 가지 특성으로 자리잡아왔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이것은 소수의 깨어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변질되어 있는 것 같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소수가 만들어놓은 게임판 위에서 움직이는 말들과 다름이 없어졌다. 누군가의 플랫폼 위에서 자유를 누린다고 착각하고, 자기만의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한다고 잘못 알고 있게 만드는 힘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표현이 인재(human resource)’라는 단어다. 이 책 AI시대 사람의 조건 휴탈리티에서 저자는 휴탈리티라는 개념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을 자원이나 재료, 객관화시키는 인재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 발견하고 깨워내야 할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으로서의 인재(human + talent)'를 의미한다.

 

지금 이 시대가 컴퓨터 공학, 알고리즘, 슈퍼 기계, 빅데이터 같은 기술적인 것들에 의해 인간이 소외되고 소수만 이 열매를 누리며, 대다수의 수동적인 입장의 인류에게는 장차 암울한 인간 사회의 전망을 갖게 하고 있지만, 이런 문제적 상황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고민하고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내용 구성이다.

 

저자는 앞서 말했듯이 인류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던, 의미를 만들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주어진 상황을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이 능력을 회복하는 것에서 답을 구한다.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바로 그 놀라운 능력, 이제는 감춰지고 어쩌면 억압되어 특정 계층의 인물들에게만 향유되었던, 그 능력을 깨워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만의 신념, 오리지널리티, 기능적인 면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잠재된 해석 능력을 일깨우는 것, 이것을 통해 우리는 인재성(휴탈리티)’을 획득하고 또 이것을 바탕으로 어떤 격변의 시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책과 의미에의 의지’, ‘의미치료로 잘 알려진 빅터 프랭클 박사를 통해 인간은 의미를 먹고 사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운 바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차원에서, 지금처럼 새로운 가치관과 경제관, 사회상으로 격변하는 시기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중심, 기준은 바로 이 상황을 해석하고 의미를 만들고 가치 체계를 변화시킬수 있는 힘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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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스티브 잡스가 반한 피카소
이현민 지음 / 새빛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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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버 mp3나 전자사전 등이 우리나라에서 반짝 인기있었던 시절에 통화기능, 사전, 음악 재생 기능 등이 한 전자기기 안에 다 들어있는 디지털 컨버전스의 개념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이 많았다. 나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여러 기능이 한 기기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어중간한 성능을 모아놓은 것 이상이 되지 못한다는 의견, 즉 핸드폰은 핸드폰, 전자사전은 전자사전, MP3 플레이어는 MP3 플레이어로서 각각 독립적으로 최고의 성능을 가진 채로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당시 전자사전이나 MP3 플레이어 같은 전자기기를 최고 사양은 아니더라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 생각이 정말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 아이폰3GS가 들어왔고, 우리는 스티브 잡스 덕분에 혁신적인 모바일 통신기기의 눈부신 기능적 발전을 매년 목격하고 있게 되었다. 햅틱을 만지작거리면서 최신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착각을 한번에 부숴버린 애플 제품들의 혁신적 디지털 컨버전스 제품이었던 아이폰은 이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바꿔버린, 그야말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확실하게 기록될 스티브 잡스의 대단한 업적임에 틀림없다.

 

스티브 잡스가 반한 피카소는 이와 같이 기존의 전통과 사고방식, 통념에 갇혀 그것만이 전부인 양 고정되고 고립된 가치관 속에서 더 이상 새로운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나 기존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으며 인류의 생각과 행동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놓인 예술 작품들과 작가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의미와 당대와 후대에 미친 영향을 쉽게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먼저 유명한 예술 작품이 소개된 잘 알려진 영화를 소개하면서 친근한 분위기로 접근한 다음, 가볍지만 결코 무성의하지 않게 해당 작품과 작가, 역사적 배경 등 지식과 정보를 깔끔하게 전달하고 있다.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입문서 성격을 띄고 있기에, 그림이나 조각, 현대미술 작품을 한번 제대로 보고 싶다고 생각해오던 독자라면 권할 만한 정도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잘 알려진 베르메르, 로댕, 보티첼리, 인상주의의 상징적 인물인 에두아르 마네, 그리고 책 제목에 나와 있는 피카소, 프리다 칼로, 앤디 워홀 등의 작가들이 다뤄지는데, 그들이 만든 작품과 사상들에서는 혁신과 창의의 관점으로 분석했을 때 드러나는 몇 가지 공통점들이 있다. 먼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다. 과거 역사에서 인간은 생각과 관찰의 대상에서 그리 주목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자연현상이나 신과 종교 등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 예술이나 학문, 철학의 주요 관심사였는데, 이러한 흐름이 기술과 자본의 발달을 힘입어 인간으로 넘어오게 되었고, 이제 관찰과 연구, 표현의 대상이 된 인간이라는 존재를 둘렀나 안팎의 다양한 현상과 사건, 의미가 예술 역사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고 발전되며 여러 예술사조와 작품으로 나타나게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회화 예술의 역사에서 눈에 띄는 전환점은 또 있다. 예술을 표현하는 방식은 객관적 기준이 있었다. 예를 들어 초월적 존재나, 종교적 신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사회적 환경이 변화되면서 이로부터 관점이 확대되어 인간이나 평범한 일상 등이 기준의 범위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면서 예술 표현의 대상은 객관적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이를테면 재현의 예술에 머물러 있었는데, 작가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의견 등 주관성이 예술 행위에 개입되기 시작하는 시대가 온다. 인상주의가 대표적인 사례다.

 

피카소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전의 모든 회화적 기법들이 피카소라는 개인의 창조적 모방 능력과 융합되어 새로운 미학적, 예술적 가치가 탄생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 변기제품을 예술작품이라며 전시회에 출품에 세상을 충격에 빠트린 마르셀 뒤샹은 예술가의 행위 자체가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완전히 새로운 예술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이렇게 예술의 역사에서 기존의 가치관과 고정관념을 뒤집는 시도와 그에 대한 저항, 그리고 새로운 가치로서 자리를 잡는 과정 자체가 바로 혁신과 창의적 사고방식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임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다른 분야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적용된 것 중 하나로 스티브 잡스의 사례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미술이 한 단계 발전하는 원동력은 탁월한 개인의 재능과 노력뿐만이 아니라 그런 발현이 가능하게 한 시대적 환경도 매우 중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회화를 최고의 예술로 생각했으나 후원자에게 고용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건축, 조각뿐만 아니라 공학 등 과학 분야에서까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의 만능형 인간이 탄생하게 된 과정 자체도 이렇듯 융합적인 요소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생각의 방향이 여러 갈래로 펼쳐지고, 그 펼쳐진 상상들을 다시 모아 독특하고 재미있는 창의적 발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진정한 혁신이 개인과 공공 영역 등 여러 곳에서 생겨나길 기대해본다.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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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나는 산책길
공서연.한민숙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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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공간이 들려주는 역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5) 크게 네 가지 주제(서울, 왕의 길, 삶의 모습, 희생의 역사)로 나누어 주제와 관련된 지역과 장소에 감춰져 있거나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와 사연들을 들춰봄으로써, 공간에 이야기를 더해 의미를 확장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깨달음과 공감을 유도한다는 목적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요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생각날 것이다. 탤런트 김영철 씨가 전국 곳곳의 동네를 매주 한 곳씩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 삶의 이야기를 나누거나 장소에 얽힌 사연들을 접하면서 마치 시청자들이 그곳에서 함께 동행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주는 가벼운 여행 혹은 나들이 컨셉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편안한 느낌이라면 역사를 만나는 산책길은 그 프로그램보다는 조금 더 진지한 느낌으로 역사적인 장소 및 공간을 살피면서 의미를 발견하며 깨달아가는 걷기 여행 컨셉이라고 볼 수 있겠다.

 

1부 과거가 부럽지 않은 역사도시, 서울 - 에서는 먼저 서울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울역은 꿈과 희망을 안고 첫 발을 내딛는 청춘의 설렘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갖은 수탈과 근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라는 점을 알려준다. 지방에 살면서 볼일을 보려 여러 번 오간 곳이긴 하지만 예전 서울역 쪽으로는 한번도 못가봐서인지 서울역의 역사와 건축양식, 변천사는 흥미롭게 읽혔다. 2부 화려함 뒤에 감춰진 처연의 왕의 길 - 에서는 특히 고종 황제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와닿았다. ‘증명전에 대한 내용이 눈에 띄었는데, 이곳은 덕수궁을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황실의 서적과 보물들을 보관하는 도서관 용도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제의 내정간섭과 본격적인 침략과 수탈의 치욕 속에서, 또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같은 건물이지만 그 주인과 용도, 외관까지 외부 상황에 따라 계속 변화를 겪은 일련의 과정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이는 4부 우리의 자유로운 삶이 있기까지(오늘 우리가 이렇게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는 파트) - 에서 광복 이후 민족 통일을 위해 힘썼던 김구 선생의 거처이자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던 경교장의 경우와도 비교가 되었다. 그곳 역시 주인이 여러번 바뀌면서 중화민국 대사관저, 미군 특수부대 주둔지, 월남 대사관 등으로 사용되었고, 1967년에는 삼성재단에서 매입해 오랜 기간 병원 현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이렇게 한 장소나 건물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오면서 주변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의미를 담아온 과정을 잘 전달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3부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 - 에서는 익선동 한옥마을, 통인시장, 광장시장, 을지로 인쇄골목 등을 탐방하면서, 시대의 유행에 따라 그 동네를 대표했던 산업이나 풍경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주로 보여주는데, ‘뉴트로라고 해서 요즘은 예전의 문화와 요즘 젊은이들의 감각이 결합된 형태로 전성기를 지난 동네나 상권을 살리는 현상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 도시나 골목도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처럼 어떻게든 시대에 적응하여 살아남으려는 생존의지 같은 것이 서려 있는 것 같아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으면서 하는 독서라고 한다. 걸으면서 하는 독서, 이 말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이 책은 우리가 평소에 다니는 길이나 장소들이 그냥 전부터 그렇게 있어왔던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도전과 의지, 꿈과 희망, 성공과 좌절, 눈물을 거쳐 형성되어 온 것임을 잘 알려주고 있다. 거리나 동네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품고 전달하는 공간으로서,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이어가주는 버팀목으로서,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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