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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나는 산책길
공서연.한민숙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0년 3월
평점 :

이 책은 공간이 들려주는 역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5쪽) 크게 네 가지 주제(서울, 왕의 길, 삶의 모습, 희생의 역사)로 나누어 주제와 관련된 지역과 장소에 감춰져 있거나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와 사연들을 들춰봄으로써, 공간에 이야기를 더해 의미를 확장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깨달음과 공감을 유도한다는 목적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요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생각날 것이다. 탤런트 김영철 씨가 전국 곳곳의 동네를 매주 한 곳씩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 삶의 이야기를 나누거나 장소에 얽힌 사연들을 접하면서 마치 시청자들이 그곳에서 함께 동행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주는 가벼운 여행 혹은 나들이 컨셉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편안한 느낌이라면 『역사를 만나는 산책길』은 그 프로그램보다는 조금 더 진지한 느낌으로 역사적인 장소 및 공간을 살피면서 의미를 발견하며 깨달아가는 걷기 여행 컨셉이라고 볼 수 있겠다.
1부 과거가 부럽지 않은 역사도시, 서울 - 에서는 먼저 서울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울역은 꿈과 희망을 안고 첫 발을 내딛는 청춘의 설렘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갖은 수탈과 근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라는 점을 알려준다. 지방에 살면서 볼일을 보려 여러 번 오간 곳이긴 하지만 예전 서울역 쪽으로는 한번도 못가봐서인지 서울역의 역사와 건축양식, 변천사는 흥미롭게 읽혔다. 2부 화려함 뒤에 감춰진 처연의 왕의 길 - 에서는 특히 고종 황제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와닿았다. ‘증명전’에 대한 내용이 눈에 띄었는데, 이곳은 덕수궁을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황실의 서적과 보물들을 보관하는 도서관 용도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제의 내정간섭과 본격적인 침략과 수탈의 치욕 속에서, 또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같은 건물이지만 그 주인과 용도, 외관까지 외부 상황에 따라 계속 변화를 겪은 일련의 과정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이는 4부 우리의 자유로운 삶이 있기까지(오늘 우리가 이렇게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는 파트) - 에서 광복 이후 민족 통일을 위해 힘썼던 김구 선생의 거처이자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던 ‘경교장’의 경우와도 비교가 되었다. 그곳 역시 주인이 여러번 바뀌면서 중화민국 대사관저, 미군 특수부대 주둔지, 월남 대사관 등으로 사용되었고, 1967년에는 삼성재단에서 매입해 오랜 기간 병원 현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이렇게 한 장소나 건물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오면서 주변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의미를 담아온 과정을 잘 전달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3부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 - 에서는 익선동 한옥마을, 통인시장, 광장시장, 을지로 인쇄골목 등을 탐방하면서, 시대의 유행에 따라 그 동네를 대표했던 산업이나 풍경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주로 보여주는데, ‘뉴트로’라고 해서 요즘은 예전의 문화와 요즘 젊은이들의 감각이 결합된 형태로 전성기를 지난 동네나 상권을 살리는 현상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 도시나 골목도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처럼 어떻게든 시대에 적응하여 살아남으려는 생존의지 같은 것이 서려 있는 것 같아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으면서 하는 독서라고 한다. 걸으면서 하는 독서, 이 말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이 책은 우리가 평소에 다니는 길이나 장소들이 그냥 전부터 그렇게 있어왔던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도전과 의지, 꿈과 희망, 성공과 좌절, 눈물을 거쳐 형성되어 온 것임을 잘 알려주고 있다. 거리나 동네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품고 전달하는 공간으로서,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이어가주는 버팀목으로서,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