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스티브 잡스가 반한 피카소
이현민 지음 / 새빛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아이리버 mp3나 전자사전 등이 우리나라에서 반짝 인기있었던 시절에 통화기능, 사전, 음악 재생 기능 등이 한 전자기기 안에 다 들어있는 디지털 컨버전스의 개념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이 많았다. 나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여러 기능이 한 기기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어중간한 성능을 모아놓은 것 이상이 되지 못한다는 의견, 즉 핸드폰은 핸드폰, 전자사전은 전자사전, MP3 플레이어는 MP3 플레이어로서 각각 독립적으로 최고의 성능을 가진 채로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당시 전자사전이나 MP3 플레이어 같은 전자기기를 최고 사양은 아니더라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 생각이 정말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 아이폰3GS가 들어왔고, 우리는 스티브 잡스 덕분에 혁신적인 모바일 통신기기의 눈부신 기능적 발전을 매년 목격하고 있게 되었다. 햅틱을 만지작거리면서 최신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착각을 한번에 부숴버린 애플 제품들의 혁신적 디지털 컨버전스 제품이었던 아이폰은 이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바꿔버린, 그야말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확실하게 기록될 스티브 잡스의 대단한 업적임에 틀림없다.

 

스티브 잡스가 반한 피카소는 이와 같이 기존의 전통과 사고방식, 통념에 갇혀 그것만이 전부인 양 고정되고 고립된 가치관 속에서 더 이상 새로운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나 기존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으며 인류의 생각과 행동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놓인 예술 작품들과 작가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의미와 당대와 후대에 미친 영향을 쉽게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먼저 유명한 예술 작품이 소개된 잘 알려진 영화를 소개하면서 친근한 분위기로 접근한 다음, 가볍지만 결코 무성의하지 않게 해당 작품과 작가, 역사적 배경 등 지식과 정보를 깔끔하게 전달하고 있다.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입문서 성격을 띄고 있기에, 그림이나 조각, 현대미술 작품을 한번 제대로 보고 싶다고 생각해오던 독자라면 권할 만한 정도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잘 알려진 베르메르, 로댕, 보티첼리, 인상주의의 상징적 인물인 에두아르 마네, 그리고 책 제목에 나와 있는 피카소, 프리다 칼로, 앤디 워홀 등의 작가들이 다뤄지는데, 그들이 만든 작품과 사상들에서는 혁신과 창의의 관점으로 분석했을 때 드러나는 몇 가지 공통점들이 있다. 먼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다. 과거 역사에서 인간은 생각과 관찰의 대상에서 그리 주목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자연현상이나 신과 종교 등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 예술이나 학문, 철학의 주요 관심사였는데, 이러한 흐름이 기술과 자본의 발달을 힘입어 인간으로 넘어오게 되었고, 이제 관찰과 연구, 표현의 대상이 된 인간이라는 존재를 둘렀나 안팎의 다양한 현상과 사건, 의미가 예술 역사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고 발전되며 여러 예술사조와 작품으로 나타나게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회화 예술의 역사에서 눈에 띄는 전환점은 또 있다. 예술을 표현하는 방식은 객관적 기준이 있었다. 예를 들어 초월적 존재나, 종교적 신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사회적 환경이 변화되면서 이로부터 관점이 확대되어 인간이나 평범한 일상 등이 기준의 범위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면서 예술 표현의 대상은 객관적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이를테면 재현의 예술에 머물러 있었는데, 작가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의견 등 주관성이 예술 행위에 개입되기 시작하는 시대가 온다. 인상주의가 대표적인 사례다.

 

피카소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전의 모든 회화적 기법들이 피카소라는 개인의 창조적 모방 능력과 융합되어 새로운 미학적, 예술적 가치가 탄생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 변기제품을 예술작품이라며 전시회에 출품에 세상을 충격에 빠트린 마르셀 뒤샹은 예술가의 행위 자체가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완전히 새로운 예술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이렇게 예술의 역사에서 기존의 가치관과 고정관념을 뒤집는 시도와 그에 대한 저항, 그리고 새로운 가치로서 자리를 잡는 과정 자체가 바로 혁신과 창의적 사고방식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임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다른 분야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적용된 것 중 하나로 스티브 잡스의 사례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미술이 한 단계 발전하는 원동력은 탁월한 개인의 재능과 노력뿐만이 아니라 그런 발현이 가능하게 한 시대적 환경도 매우 중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회화를 최고의 예술로 생각했으나 후원자에게 고용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건축, 조각뿐만 아니라 공학 등 과학 분야에서까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의 만능형 인간이 탄생하게 된 과정 자체도 이렇듯 융합적인 요소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생각의 방향이 여러 갈래로 펼쳐지고, 그 펼쳐진 상상들을 다시 모아 독특하고 재미있는 창의적 발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진정한 혁신이 개인과 공공 영역 등 여러 곳에서 생겨나길 기대해본다.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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