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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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에서 이승우 작가에 대한 평론을 보면서, 기독교적 세계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작가에 대하여 관심이 갔다. 그전에는 이름만 겨우 아는 정도였고, 스치듯 보았던 그의 작품들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통해서는 큰 인상을 받지 못했었다. 뭔가 우울하고 무거운데 그다지 끌리지 않는 느낌. 그러나 앞서 말한 책에서 그의 이력과 작품에 서린 정서나 세계관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가운데, 작가의 산문집인 소설가의 귓속말출간 소식은 매우 반가웠고, 이렇게 읽게 된 것이 이승우 작가의 작품세계를 접하기 전 준비운동 격이라고 할까, 참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사이사이에 인용되는 성경 구절들이었다. 저자의 생각과 사고의 기반을 이루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인데, 첫 장부터 창세기의 한 장면을 인용하며 불완전하고 불가해한 인간의 특성을 통찰하는 내용이 나온다. 물론 저자는 이 부정적인 인간상을 부정적인 영역에 내버려두지 않고 불가능성은 포기의 구실이 아니라 추구의 이유가 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희망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인간의 불완전성과 신의 완전성이라는 상반된 특성이 신과 인간 모두를 동일하게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저자는 가장 중요한 테마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나와 외부세계의 연결성에 주목한다. 나를 이루는 것은 내 안의 요소뿐만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물, 사건,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면세계와 외부세계는 대립하거나 충돌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나아가 나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타인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고, 내면을 들여다 보면 외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나와 나 아닌 것들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만약 그려야 하는 어떤 외부적인 것이 있다면 먼저 그것이 나의 내부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다소 어려운 설명이 덧붙는다.

 

성경을 인용하면서 저자의 생각을 드런내는 몇몇 부분을 살펴보자.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람들이 곧 길, 길이 곧 사람들임을 주장한다. 또 내면은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인데, 이것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신약성경의 고린도후서 418절을 인용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는 부분을 통해 그 방법을 주목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곧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보는 주체에게 요구되는 주의 깊음을 뜻한다고 한다. 이것을 통해 그의 외부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유명한 구절에 대해서도, 무의식적인 것과 의식적인 것을 구분하며 귀 있는 자의 보다 구체적인 의미는 귀가 있다는 의식이 있는 자라는 저자의 해설이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을 때 독자에 따라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에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저자는 다음과 같은 상황으로 설명한다. 먼저 책을 읽는 행위는 독자 자신의 이제까지의 삶에 의해 형성된 감각이 참여해서 하는 일종의 번역작업이기 때문이라는 것과, 다음으로 독자가 현재 처해 있는 상태, 즉 장소, 연령대, 읽고 있는 자세 등이 읽고 있는 텍스트의 속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어의 불완전함과 독자의 개별적 상황들이 저자의 원 의도와 다른 이해와 해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저자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이것이 소설이 아닌 에세이어서인지, 소설가보다는 철학자의 깊이 있는 사색의 향연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비슷한 개념들을 대입하거나 주어나 목적어를 서로 바꾸면서 동일한 문장구조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그 의미를 강조하는 서술 방식 같은 것들이 그런 인상을 더 강하게 한다. 앞으로 이승우 작가의 작품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하나씩 살펴보면서 참고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듯하다.

 

귓속말치고는 좀 심오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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