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다시 한번 차별과 혐오라는 이름으로 조금 다른 것, 주류가 아닌 것, 내 생각과 다른 것에 대한 불편한 감정과 행동이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사회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치명적일 수 있을 만큼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떤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번에 새로 출간된 『알고 있다는 착각』(원제:Anthro vison)의 저자 질리언 테트는 인류학의 사고방식, 다시 말해 인류학 시야(anthro-vision)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21세기는 복잡성과 다양성의 시대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특성이 삶의 모든 차원에서 관용과 배려의 관점으로 온전히 구현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배를 불리려는 못된 사람들의 선동이 득세하고 있다. 심지어 차별과 혐오를 대놓고 자기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우리의 실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금융시스템 붕괴와 팬데믹에 대한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대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저자는 이런 위기의 시대, 21세기를 탐색하기 위한 핵심으로 인류학적 사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시대가 앓고 있는 치명적 질병인 ‘터널 시야’를 극복하게 해줄 처방으로 적절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좁은 시야를 벗어나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힘을 인류학적 사고방식이 제공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류학 비전의 유익을 대략 다음의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는 사고방식, 둘째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셋째는 낯섦과 낯익음의 개념으로 남들과 우리 자신의 맹점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사실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통해 우리가 범해 왔던 차별과 혐오, 혹은 무비판, 무지성적 생활에서 벗어나 한 차원 발전된 인간성의 도약을 도모하게 한다. 'x'가 무조건 'y'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인류학 비전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공부한 인류학은 사실 고고학과 민속학, 사회학과 역사가 혼합된 복합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렇게 제한적일 것 같은 성격의 인류학이 정치나 경제, 이념적으로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등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그 방법론이 효과적으로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과연 저자의 인류학 연구가 정치와 자본주의의 중심인 워싱턴과 월스트리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 이유는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인류학은 사고방식, 곧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가 절대적 관점을 벗어나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을 인지하고 있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자리 잡은 관념이다. 내 생각이 이러니 상대방 생각도 이래야 돼. 혹은 내 생각이 이러니 상대방은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해, 같은 사고방식은 근대 이후까지도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