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다는 착각
질리언 테트 지음,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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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나 사건, 개념의 특성을 파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동일 선상에 있거나 비슷한 수준의 다른 것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역사의 흐름은 특이하게도 이 둘의 균등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을 강요하는 형태로 발전되어온 특징이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획일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초기 인류가 생존을 위해 자기들과 비슷해 보이는 존재들과 뭉치는 전략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통해 친교를 다지고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역사 발전의 단계에서 권력자 중심의 획일적 사회 구조는 상당히 오랜 시간 그 효용성을 인정 받아 근대까지 그 생명력을 이어 왔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중세 이후 개인이라는 개념이 부각되면서 집단 내에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독립적이고 개성을 지닌 개체로서의 인간 존재의 중요성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소규모 민족이나 집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흐름은 기존의 강력한 가치관의 탄압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하지만 균형을 맞춰가듯이, 상대주의적 관점은 점점 힘을 얻었고, 현대에 와서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다시 한번 차별과 혐오라는 이름으로 조금 다른 것, 주류가 아닌 것, 내 생각과 다른 것에 대한 불편한 감정과 행동이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사회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치명적일 수 있을 만큼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떤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번에 새로 출간된 『알고 있다는 착각』(원제:Anthro vison)의 저자 질리언 테트는 인류학의 사고방식, 다시 말해 인류학 시야(anthro-vision)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21세기는 복잡성과 다양성의 시대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특성이 삶의 모든 차원에서 관용과 배려의 관점으로 온전히 구현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배를 불리려는 못된 사람들의 선동이 득세하고 있다. 심지어 차별과 혐오를 대놓고 자기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우리의 실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금융시스템 붕괴와 팬데믹에 대한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대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저자는 이런 위기의 시대, 21세기를 탐색하기 위한 핵심으로 인류학적 사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시대가 앓고 있는 치명적 질병인 ‘터널 시야’를 극복하게 해줄 처방으로 적절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좁은 시야를 벗어나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힘을 인류학적 사고방식이 제공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류학 비전의 유익을 대략 다음의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는 사고방식, 둘째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셋째는 낯섦과 낯익음의 개념으로 남들과 우리 자신의 맹점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사실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통해 우리가 범해 왔던 차별과 혐오, 혹은 무비판, 무지성적 생활에서 벗어나 한 차원 발전된 인간성의 도약을 도모하게 한다. 'x'가 무조건 'y'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인류학 비전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공부한 인류학은 사실 고고학과 민속학, 사회학과 역사가 혼합된 복합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렇게 제한적일 것 같은 성격의 인류학이 정치나 경제, 이념적으로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등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그 방법론이 효과적으로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과연 저자의 인류학 연구가 정치와 자본주의의 중심인 워싱턴과 월스트리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 이유는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인류학은 사고방식, 곧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가 절대적 관점을 벗어나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을 인지하고 있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자리 잡은 관념이다. 내 생각이 이러니 상대방 생각도 이래야 돼. 혹은 내 생각이 이러니 상대방은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해, 같은 사고방식은 근대 이후까지도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었다.

저자는 재미있는 비유를 들려준다. 바로 ‘새의 눈’과 ‘벌레의 눈’이라는 개념이다. ‘새의 눈’은 자기중심적인 관점, 혹은 주류 사회나 이념의 관점을 상징한다. 하지만 ‘벌레의 눈’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관찰하는 시각이다. 거시사와 미시사의 방법론이 비교가 될 수 있을까? 특히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이 시선이 어떻게 상업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는지 살펴본 부분은 인류학과 비즈니스가 결합하여 ‘비즈니스 인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대의 환상은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만능 열쇠 같은 감각을 일으킨다는 것인데, 이것 역시도 요즘 들어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문화적 차이를 효과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알고리즘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도 인류학의 관점이 접목될 때 어떤 파급 효과가 있는지 설명한다. 특히 인간이라는 요인이 도외시되고 있는 경향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들의 해결책으로 인류학적 사고방식의 필요성은 더욱 커져 가고 있는 모양새다.

21세기 인류학의 가장 큰 미덕은 세계화 시대에서 국가 간 문화 번역 기능의 역할을 가장 충실하게 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한때 인류학자나 사회학자들을 대거 채용하며 팀을 꾸린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 인류학이 얼마나 매력적인 학문이며, 동시에 얼마나 실용적인 삶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해준다. 이 책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독자의 생각의 지평을 확실하게 넓혀줄 것이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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