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어두운 창고에서 - 세계적인 법의학자의 충격적인 범죄심리 보고서
마크 베네케 외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구성이 산만한 책이었다.

첫 장을 히틀러의 유해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흥미로운 주제이기는 하지만-책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지 않아 생뚱맞게 느껴진다. 마크 베네케와 리디아 베네케 두 저자는 히틀러와 나치를 악마화하고 타자화 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들의 경우도 똑같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저자들은 히틀러를 다룬 장에서 스탠포드 감옥 실험과 밀그램 실험을 소개하며 인간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잔혹하게 행동할 수 있으며, 누구나 권위에 복종하며 폭력적인 명령을 이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나 아렌트 식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악의 평범성‘을 인지하고 범죄자들을 타자화 하지 않는 것은 범죄 예방에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연쇄 살인범들 모두 비슷한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유년기에 끔찍한 정서적, 물리적 학대를 경험했다. 연쇄 살인범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는 없으며 살인을 행하기 이전 동물 학대와 같은 이상 징후를 보인다. 인간을 대상으로 참혹한 폭력을 저지르기 전에 사회가 이들의 문제를 인지하고 적절한 치료나 격리를 진행했다면 , 살인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에 실린 여러 내용 중 소아성애증을 가지고 있던 한 범죄자의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고 몇몇 전문가에게 전화상으로 상담과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혐오감을 표시할 뿐 그에게 어떤 조언도 해주지 않았으며 결국 그는 강간 살인범이 되었다. 이런 사례를 읽고 나니 소아성애를 혐오하며 악마화하기 보단 그 성질을 이해하고(페도필리아-헤베필리아-에페보필리아 로 이어지는 일련의 스펙트럼이 있다)이런 질병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적절한 치료와 성범죄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편이 사회적으로 훨씬 더 이익이라는 저자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성-특히 이상성욕-에 대한 저자들의 이런 개방적인 태도는 작년에 읽은 또 다른 범죄 심리학책 <프로파일러 노트>와 비교된다. 책의 저자 로이 해이즐우드는 포르노와 BDSM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피어싱이나 상호 합의된 거친 섹스 등등이 성범죄를 증가시키는 요인이라 썼다(물론 자신의 이런 주장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도 적었다). 마크 베네케와 리디아 베네케는 포르노가 성범죄를 증가시킨다는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으며, 또 대부분의 이상 성욕자들은 환상과 현실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고 썼다. 개인적으로는 마크 베네케와 리디아 베네케, 두 저자들의 의견에 더욱 수긍하게 된다.

범죄심리학이나 법의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한번 쯤 읽어볼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연주 시전집 - 1953-1992
이연주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년 전, 웹에서 우연히 한 시구를 맞닥뜨렸다.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는 사람들은 / 어떤 사람들일까... / 함박눈 내린다.˝ 때는 마침 함박눈이 쏟아지던 매서운 겨울 밤이었고, 이후로도 나는 오래 이 구절을 잡고 놓지 못했다.

작고한 이연주 시인의 시집을 구할 길 없어 갈증이 나던 찰나에 그의 시전집이 출간되어 기쁘고 놀라웠다. 과연 어두우면서도 환하고, 참혹한 와중에 찬란하며, 남루하고 또 아름다운 시들이었다.

이번 시전집엔 시인의 절판된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과 <속죄양, 유다> 외에 동인지에 발표한 시들과 시극도 수록되어 있다. 작고한 시인의 시를 갈무리한 유가족과 그가 생전에 활동하던 동인의 회원들, 그리고 이를 출간한 출판사 ‘최측의 농간‘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12-28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두우면서도 환한 시. 정말 이 시집을 보면서 느낀 첫인상을 제대로 표현해주셨습니다.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csp 2016-12-29 14:07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Cyrus님도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한 새해 맞이하시길...^^
 
[수입] Hamilton Leithauser - I Had A Dream That You Were Mine (Digipack)
Hamilton Leithauser / Glassnote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덜어낼 부분 하나 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Pictures of us dancing / from a lifetime, a lifetime ago˝ 외치는 부분을 듣다가는 눈물을 조금 흘리고 말았다. A lifetime ago... 정말 어떤 일들은 전생의 기억 같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량 크리스천
데이브 톰린슨 지음, 이태훈 옮김 / 포이에마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영국 성공회 신부인 데이브 톰린슨이 쓴 책. 원제는 How to be a bad Christian - and a better human being 으로, 나쁜(불량한)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법에 대한 저자의 소고가 담겨져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진리는 한 종교가 독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며 종교 다원주의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교리를 핑계로 소수자들을 외면해온 교회의 편협함을 비판한다. 그는 교리를 엄격히 따르며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부수적 요소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복음의 핵심은 하느님의 사랑이 무한하다는 것이며, 예수의 길을 따르는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톰린슨은 크리스천Christian 이라는 단어가 동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원래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그 길의 사람들‘이라 불렸다. 그들은 예수가 가르치고 몸소 보여주신 그 방식대로 사는 사람들이었다. 처음 예수를 따랐던 사람들이 어릿광대들처럼 예수님을 오해하고, 경솔한 말을 하고, 서로 다투고, 깨어 있어야 할 때 잠들고, 계속해서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도 마음에 든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 예수를 따랐다. 이 사실이 내게 희망을 준다.˝

톰린슨은 이처럼 ˝비틀거리는 신앙˝을 가진 모든 이들을 ‘불량 크리스천‘이라 말하며 자신도 그 중 하나라고 고백한다.

기독교의 배타성과 편협함을 비판한 책들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불량 크리스천>의 미덕은, 기독교 성직자가 일상적인 언어로 리버럴한 현대인들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에 있다. 다양한 인종과 정체성이 혼재하는 메트로폴리스 런던의 현장감이 생생히 와닿는 책이었다. 독서하는 내내, 왁자지껄한 펍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혹은 조용한 집에서 찻잔을 홀짝이며, ‘선량한 good‘ 성직자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영적 지능(SQ)이나 애니어그램과 같은 유사 심리학적 내용만 없었다면, 거리낌없이 별 다섯개를 주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vering: The Hidden Assault on Our Civil Rights (Paperback)
Yoshino, Kenji / Random House Inc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nyu로스쿨 교수인 켄지 요시노의 책. 소수자 집단/개인의 소수자성을 검열하는 사회에 대한 깊고 통렬한 분석.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이자 동성애자인 본인의 경험을 반추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conversion☞passing☞ covering 하는 것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하는지 얘기하는 부분이 참으로 시적이고 아름다웠다. 전통적인 소수자 집단들의 경계를 넘어 `주류 집단`이란 미신을 깨자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음. 요시노는 Erving Goffman의 <Stigma>에서 covering이란 용어를 발견아고 마치 프라이데이의 발자국을 발견한 로빈손 크루소의 심정이 되었다고 썼는데, 그의 책을 읽은 지금의 내 기분이 딱 그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