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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불꽃 - 뉴욕의 빈민가 아이들과 함께한 25년
조너선 코졸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조너선 코졸은 미국의 유명 교육자이자 저자입니다. 책 날개에 적힌 약력에 따르면, 하버드와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수학한 코졸은 `보스턴의 흑인 거주 구역에서(...)랭스턴 휴스의 시를 수업 시간에 다뤘다는 이유로 해고`된 뒤, 미국의 공교육을 개선하기 위한 진보적인 시민운동에 헌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희망의 불꽃>은 지난 25년간,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선거구인 뉴욕 사우스브롱크스 지역에서 코졸이 만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절대적 빈곤,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열악한 교육환경...동정심은 가지만 너무 진부한 이야기 같다고요. 하지만 <희망의 불꽃>은 빈곤이나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주로 부르주아 백인들의) 동정심이나 자선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그보다, <희망의 불꽃>은 뉴욕의 가장 지독한 빈민구역에서 생존해 나가는 사람들의 연대기입니다.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누구도 문자로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작고 연약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놀랍도록 크고 강건한 삶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져 있습니다.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책의 1부 `과거의 그림자` 브롱크스 지역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2부 `찬란한 빛`은 빈민가의 파괴적인 환경과 투쟁하며 자라온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 이르는 시기를 따뜻한 필체로 담아낸 2부가 주는 울림은 깊고도 독특합니다. 놀랍게도 코졸은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고 하는군요.
<희망의 불꽃>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 중, 특히 제 기억에 남는 이는 앨리스 워싱턴이었습니다. 알콜 중독이던 남편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경험한 뒤 곧바로 집을 떠나온 워싱턴은, 십대 후반의 두 딸과 어린 아들을 데리고 빈민 수용 시설을 전전하다 브롱크스 지역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곳에서 워싱턴은 코졸과 길고도 특별한 우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날카로운 정치 의식과 신랄한 유머감각, 그리고 음식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워싱턴은 매우 활력이 넘치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에이즈 감염과 폐암으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별세하고 말죠. 이 짧은 설명만 읽으면 자칫 앨리스 워싱턴이 그를 둘러싼 가혹한 환경의 피해자인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이는 희생양이된 사람들의 심정에 공감했지만, 본인 스스로는 희생양이 되길 거부했다. 그이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그리고 그 일상을 곱씹고 뒤집어 보는 데서 얻는 기쁨을 무기로 삼아 수많은 역경을 헤쳐 나갔다. 당시 뉴욕은 그이와 같은 계층과 인종에 속한 여성에게 혹독한 역경을 안겼지만, 그이는 역경 앞에 무너지지 않았다. 그이는 자신을 둘러싼 비열한 사회 구조를 뛰어넘었다. 총명함과 재치로, 그리고 부조리함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으로 비열한 사회 구조에 일침을 놓았다. 그이는 많이 웃었다. 그이는 직접 구운 소 갈빗살 요리와 감자 요리를 몹시 좋아했다. 그이는 일상적인 삶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어려움을 이겨 냈다.˝
책에는 이 앨리스 워싱턴처럼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많은 이들의 투쟁적인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 반면, 정말로 환경의 피해자가 되어버려 비극적인 방식으로 삶을 마감하는 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도 많이 등장하지요. 코졸은 이에 대해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어도 불행을 맞이하는 아이들은 있었을 것` 이라 일부 시인하면서도, 브롱크스와 같은 빈민 지역에서 성장한 아이들의 성공과 실패를 온전히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풍조를 차갑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빈민 지역 아동들의 경우, 사회 구조에서 비롯한 기존 환경의 문제점은 `부모의 결함`, 혹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안이하고 허술한 표현으로 쉽게 무마할 수 있는 하찮은 문제가 아니다. 이런 표현은 미국이 빈민들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혐의를 부인하려고 갖은 애를 쓰는 학계와 정치곙이 악당들이 의존하는 최후 수단일 뿐이다.˝
파인애플, 제레미, 벤자민 등, <희망의 불꽃>에 등장하는 빈민가 출신 아이들의 성공적인 사례들은 극소수의 특수한 경우일 뿐입니다. 그들은 모두 예외없이 헌신적인 지역 성공회 신부와 교육자들, 뉴욕 안팎의 후원자들을 통해 특수한 기회를 얻었으며, ˝이런 자선은 그 규모가 아무리 크다 해도 제도적인 형평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공교육의 성과를 대체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 아이들의 성공을 단순히 개인의 역량이나 운 좋음의 영역에서 축하할 것이 아니라,왜 이런 기회가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지를 반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 출간 후 코졸이 NPR과 나눈 인터뷰에서 밝혔듯, ˝You shouldn`t have to be a little charmer to get an equal shot at education in America.˝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책에 기록된 여러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 만큼이나 인상깊었던 것은 저자 조너선 코졸이 이들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코졸은 워싱턴의 민감한 조언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어렸을때부터 자신이 보아온 브롱크스 아이들의 독립성을 최대한 존중해 주는 등, 빈민가 사람들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교류합니다. 그 자신의 글을 빌려 표현하자면 코졸은 `베푸는 이와 받는 이 사이의 역학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독단적인 편견에 치우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희망의 불꽃>이 뉴욕의 빈민가를 다룬 진부한 신파나 딱딱한 보고서가 아니라 역동적인 이야기들의 모음집일 수 있는 까닭은, 지난 수십년에 걸쳐 코졸이 이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엮어낸 촘촘하고 따스한 관계의 망 덕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책의 여러 부분을 울컥해가며 읽었습니다. 저 자신이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결코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10대의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책 속 아이들이 맞닥뜨려야했던 절대적인 빈곤이나 폭력과는 비할 바 아니겠지만, 20대 초반이 된 지금까지도 저는 자주 무력감, 열패감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코졸의 글을 읽으며 조금 덜 외로워진 까닭은, 마치 그가 책 속에서 소개한 아이들과 맞닿는 기분이 들어서였습니다. 먼 미국땅에 사는 얼굴도 모를 낯선 아이들이지만, 독서하는 내내, 이들의 성공은 저의 성공이었고, 또 이들의 실패는 저의 실패였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용감하게 살아가기를. 저도 함께 기운을 내야겠지요.
덧)중간에 인용한 인터뷰 출처입니다
http://www.npr.org/2012/11/26/165922118/jonathan-kozol-on-kids-that-survive-inner-cit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