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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들에게 주는 지침 ㅣ 평사리 클래식 2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류경희 옮김 / 평사리 / 2006년 6월
평점 :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로만 알고 있는 조나단 스위프트. 그의 다른 작품을 만나는 것은 사실 처음이었다. 책의 첫장을 열면 그의 묘지명에 적힌 글귀가 나온다. - 더 이상 맹렬한 분노가 그의 가슴을 찢지 못하리라 - 도대체 얼마나 분노가 컸길래 이런 글귀를 묘지명에 썼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그 궁금증은 책을 다 읽고 난 후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집사 생활을 오래 했다는 조나단 스위프트. 그는 이 책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18세기 하인들에게, 하인으로서의 생활을 현명하게 영위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하인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지침에서부터 집사, 요리사, 문지기, 또 여러 종류의 하녀에 이르기까지 매우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보여준다. 그 지침들은 얼마나 친절하고 세심한지, 읽으면 읽을수록 절로 감탄이 나오게 된다.
그의 지침은 하인이 걸어야할 정도(正道)의 반대, 즉 자신의 안위를 위해 주인을 지능적으로 속이고 주위 사람을 이용하는 "교활한 하인되는 법" 이라 할 수 있다. 주인이 서너번 부르기 전에는 절대 가지 말 것이며, 집사인 자신에게 커튼 달기를 명한다면 커튼 달 줄 모른다고 해야 할 것이며... 이렇게 해서 주인이 과연 호락호락 넘어갔을까 의문스럽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꽤나 알짜 같은 지침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으로부터 200년전이고 우리와 지구 반대편에 있던 유럽을 배경으로 하지만, 지금도 전혀 다를바 없는 지침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 동료 하인이 해고를 당하면 그의 비리를 낱낱이 고하고, 왜 진작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그런 이야기를 하면 주인님께 심려를 끼쳐드릴까봐... 게다가 제가 그런 말을 올리면 주인님께서 저를 악의를 지닌 나쁜 놈으로 생각하실지 모르니까요" 라고 답하라.
- 주인이 자신을 총애하는 사실이 감지되면 기회를 잡아 아주 조심스럽게 사직하겠다고 예고하라. 그 이유를 물으면 완곡하게 급료가 적다고 말하라. 이 일이 실패로 끝난다면 동료를 시켜 당신을 '그냥 남아있으라고 설득했다'고 주인님께 말하게 하라.
주인과 하인과 직장 상사와 자신으로 바꾸면 완벽하게 지금도 적용되는 지침이 아닌가? 그의 지적은 정확하고 날카롭다. 그리고 사회와 인물에 대한 그의 관점도 읽을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쾌락만을 구하는 존재이며, 사회는 그들의 집합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