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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 과학기행 - 역사 속 우리 과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문중양 지음 / 동아시아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 전통 과학을 역사적 사실과 다르지 않게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자면 근대 과학이라는 필터를 제거하고 전통 과학을 역사 속의 하나의 산물로서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전통 과학을 그것이 처해 있었던 특정한 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이 특정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역사적 배경을 초월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머리말 중에서
책을 읽으면 항상 머리말부터 읽는다. <우리 과학 문화, 어떻게 읽을까?> 라는 제목의 10페이지 분량의 머리말을 읽으면서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보편과학의 개념을 가지고 현대 과학과 유사한 형태의 것만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이른바 실학자들이 얼마나 서양 과학을 제대로 수용했느냐에만 관심을 갖는 문제를 지적한다. 서양 과학의 우수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했던 유학자들만이 주목할만한 실학자로 인식되는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어디 과학 뿐이랴. 전통사회에 대한 일반인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학자들의 관심은 "현재와 비슷한 어떤 것"을 찾는데 집중되어 있다. 현재와 유사하면 환영이요, 현재와 거리가 있으면 외면한다. 역사적,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한 간과, 무시, 몰이해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고, 이러한 경향이 심하면 심할수록 역사적 실재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현재적 관점에서의 역사 연구는 결국 전통사회를 발전되지 못한 미개한 사회로 낙인찍을 수 밖에 없다.
전통사회의 교육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전통사회의 과학을 연구하는 저자의 이러한 학문적 관점이 마음에 와닿았다. 바로 이 점만으로도 이 책의 본문 내용은 덤으로 얻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본문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우리역사 과학기행>라는 제목이 무색하지 않을만큼 우리의 과학적 유산 대부분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게 하였다. 저자의 주 전공이 조선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의 천문도, 신라의 첨성대와 석굴암에 대한 설명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의 과학 기술에 대한 부분은 더욱 자세하고, 전통과 서양의 만남을 다룬 부분도 앞부분과 다소 중복되는 느낌이 들면서도 신선한 조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가장 과학적인 문자로 알고는 있지만 종종 그 사실을 잊게 되는 "훈민정음"을 제왕학으로서의 과학기술 측면에서 다룬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훈민정음의 제자에 대해, 발음기관 상형설, 천지인 모방설, 다른 문자 모방설 등을 소개하고 저자 나름의 의견을 제시한 것은 사실 다른 책에서도 볼 수 있기에 평범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 그러나 저자가 과학자 뿐만 아니라, 역사가라는 점을 일깨워주는 것은 그 다음이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당시의 선진적인 성운학(언어음운학)과 문자학을 수용해 발전시키려는 국가적 차원의 거대한 프로젝트였다는 것. 결국 제왕으로서 이상적인 유교 국가의 기반을 확립하지 위한 절실한 과업이었다는 결론은 저자의 과학 연구가 결국 역사성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본다.
이 밖에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세계지도에 관한 설명이 흥미로왔다. 중국의 지도와 비교하면서 세기마다 달라지는 천하관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조선시대의 세계지도가 거의 변화가 없었을 거라고 막연히 짐작했던 생각을 고쳐주었다. 앙부일구와 같은 해시계, 우주의 운행과 하늘의 이치를 담은 혼천시계와 같은 시계류에 관한 이해도 종전보다 높일 수 있었다.
복잡한 수치에 관한 설명을 제외하면 서술이 매끄럽고 쉬워서 술술 읽어갈 수 있었다. 사진과 그림 등 비주얼한 요소도 적절하여 책 읽기를 도와준다. 전통 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사학자로서 확고한 학문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저자가 앞으로 어떠한 연구를 계속적으로 수행할런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