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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 전10권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태백산맥을 처음 본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약간 조숙하였다고 자부했던(?) 여고 문예반 시절, 친구의 추천으로 당시 출간된지 얼마 안된 태백산맥을 읽었다. 당시에는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도 별로 없었고, 해방 후 좌우 이념의 대립이 얼마나 심각했었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들과 연결하여 생각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이야기는, 고백하자면 김범우와 소화의 사랑 이야기... 고등학생으로는 무척 난이도가 높았던 노골적인 묘사들로 인해 책장을 넘기기가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10권의 책을 모두 읽고 나서는, 다양한 인물 군상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을 뿐이다.
그로부터 15년 정도가 흘렀나? 지난 겨울, 이 책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열흘 넘게 눈내리는 지리산 속에서 살았다.
비로소 작가가 하려던 이야기가 '인간'이었음을 깨달았다.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이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러한 이념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랄까, 역사적 조건이랄까, 이런 것들을 이해하고 인간과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이 책은 말하고 있었다.
또한 그동안 일방적으로 보아왔던 관점에 대한 반기, 즉 그동안 아무도 이야기할 수 없었던 좌측 진영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점도 선구적인 시도였다고 본다. 균형된 시각을 갖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한쪽에서만 역사를 바라보았다는 점은 반성의 계기가 아닐 수 없다. 어느 쪽이 옳으냐를 떠나서 말이다.
흔히들 이 책을 비판하는 보수 진영에서, 이 책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공산주의 체제를 옹호하 있다고 비판한다고 알고 있다. 나는 이 책이 이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고 믿는다. 빨치산들이 총을 들었던 이유는 과연 이념이었을까, 먹고 사는 절박한 문제였을까. 그리고 이 책은 어디까지나 소설이 아닌가.
이 책의 저자가 쓴 아리랑, 한강을 모두 읽어보았다. 아리랑은 후반부로 가서 약간 기대에 못미쳤고, 한강은 다소 이야기 구조가 단조롭다는 인상을 받았다. 태백산맥에 깊은 감흥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그러나 조정래 작가의 이야기 풀어나가는 솜씨는 일품이며, 한국인의 한과 정서를 잘 표현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