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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끝나기 전 꼭 해야 할 12가지 ㅣ 풀빛 청소년 문학 4
비외른 소르틀란 지음, 김라합 옮김 / 풀빛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처음 제목을 힐끗 보았을 때는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수필 또는 자기계발서인 줄 알았다! 죽기 전에 해야 할 44가지라든가, 100가지라든가... 그러나 이 책은 ‘소설’이며, 청소년 성장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 부모의 이혼 통고를 받은 후 갑자기 ‘해야 할’ 목록에 집착하기 시작한 열네 살의 소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인칭 시점인 이 책에서 화자인 주인공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자폐증을 앓고 있는 언니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 목적이란 바로 ‘해야 할’(사실은 ‘하고 싶은’) 목록 중에서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 주인공이 지목한 남자 친구 후보를 위해 거짓 숙제를 만들어내고, 할아버지에게 비디오를 빌리고, 드디어는 아버지 이름으로 비행기표를 결제하고... 그 놀라운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청천벽력 같은 부모의 이혼 소식인가, 아니면 사춘기 시절에 품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인가.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엄청나게 중요한 ‘해야 할’ 일들이 있지 않았던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 감옥처럼 느껴지던 답답한 학교에서 탈출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당시에는 절대 올 것 같지 않았던!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이루어졌지만 그 때 내가 간절히 원한 것은 ‘자유’였다. 내가 무엇이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 소망이 실현되기까지에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소설을 읽는 내내 재미있었고 자주 웃음이 났다. 특히 남자 친구와 여행을 떠나면서 주인공의 소원 여러 개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대목. 게다가 전화로 건네 듣는 할아버지의 충고! 적나라할 정도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아니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화자의 얼굴과 행동에도 슬쩍 나의 어린 날이 오버랩 되는 걸 보니, 그렇게 소소한 거짓말과 환상의 세계 속에 빠져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누구에게나...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남자 친구에게 엄청나게 집착하는 여자 주인공과 우리 문화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할아버지의 충고 때문에 딸 아이에게 선뜻 이 책을 건네주게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실은 궁금하다. 우리 아이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은 어떤 것인지. 그 옛날 내가 품었던 소망과 혹시 같은 것도 있지 않을지. 지금 아이의 관심사라고 생각되는 남자 친구와 예쁜 옷이, 아마도 엄마의 그 옛날 목록 속에 들어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