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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1 - 맛의 시작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3년 9월
평점 :
나는 만화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나 한번쯤 만화의 세계에 빠져들기 마련인 학창 시절에도 그리 깊이 발을 담그지 않았다. 감성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는지, 비주얼한 측면에 그다지 관심과 흥미가 없었기 때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런 내가 30대가 되어 처음으로 만화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시리즈로 말이다. 그 책이 바로 허영만의 <식객>. 그렇다고 내가 예전부터 만화가 허영만의 팬이었던가. 사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 그의 만화로는 까치와 엄지 캐릭터 정도 외에는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은 명절 때 뭘 사들고 시댁에 들고 가면 좋을까 고민하던 와중에 처음 알게 되었다. 최소한 2박3일은 시댁에 머물러야 하는데 아무리 일이 많다 해도 잠시 짬은 나기 마련이고, 나 이외의 가족들도 매우 심심한 때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책이 없을까... 그러다 이 책이 눈에 띄었고, 정말 탁월한 선택이 되었던 것이다.
음식과 요리를 주제로 한 다섯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만화. 그러나 이 책을 설명하기에는 이것 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단순히 음식과 요리 정보를 알려주는 책에 그치지 않고,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케한다. 책 속 주인공인 성찬을 보면서 최고의 식재료와 요리를 향한 그의 집념과 끊임없는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일종의 신념까지 가지고 있는 그를 이 시대 진정한 장인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와 다른 분야의 일을 하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그의 모습은 큰 교훈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어디 그 뿐이랴. 음식을 둘러싼 여러 가지 사연과 사건들을 통해 이 시대 내가 알지 못하고 있던 무언가를 알게 되는 즐거움도 작지 않다. 배고프던 그 때 그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는 '찐 쌀'을 도시에서 성장한 30대인 내가, 그리고 어린 내 아이가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어렴풋이 떠오르는 과거의 영상 그리고 질퍽한 정서는 나와 아이 모두에게서 공감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름도 몰랐던 '가을 전어'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으니, 그 후 TV 에서 전어에 관한 내용이 방송될 때 '책에서 보았던 그 전어', 하면서 살짝 입맛을 다시게 되는 것도 공통적이다.
이 책은 첫 선을 보인 시댁에서 큰 히트를 친 이후(!) 명절마다 2권씩 며느리인 내가 사가야 하는 즐거운 불문율이 생겼다. 내 아이도, 아이의 삼촌도 조용히 식객 한 권을 들고 독서에 열중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출되곤 한다. 그리고 한마디씩... "이거 언제 다같이 먹으러 가자~!!"
즐겁고, 맛있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 식객은 온 가족의 보물 같은 책이 되었다. 부디 초심을 잃지 않는 책이 계속 만들어져서 오래도록 사랑받는 명품 만화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