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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을 그리다
종이나라 편집부 엮음 / 종이나라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을 처음 넘겨보았을 때는 이게 그냥 휘리릭 넘기면 되는 책인가보다 생각했었다. 그러다 시간을 내어 한장 한장 그림도 살펴 보고 글도 읽어 보았다. 아... 이런 저런 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몰입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책이었다.
얼마 살지 않은 나의 평생 중에서 시를 가장 많이 읽었던 때는 고등학생 때였다. 오래되고 칙칙했던 공립 여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유일하게 내가 애정을 가지고 생활했던 문예반 시절. 매일 남아 습작을 하면서 시집을 읽기 시작했고 좋아하는 시인도 생겼다. 그 때 만났던 김수영, 신경림, 정호승, 천상병, 기형도... 그러나 나는 시를 쓰지 못했다. 시는 읽는 것 만으로도 벅찼다. 운율을 맞추고 시어를 고르는데 약하다는 핑게로 줄창 산문만 써댔고, 교지 편집에만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이 책이 소중하게 읽혔던 것은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시와 시인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내 가슴을 울리고 친구들과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들, 시인들. 그동안 잊고 있었구나. 이렇게 아름답고, 슬프고, 가슴을 울리고...
이 책에는 시 외에도 소설의 일부도 실려있다. 전편을 실을 수 있는 시 쪽에 더 눈이 가는 건 사실이다. 최근에 신문에서 보았던 김혜순의 '모래여자'도 실려 있다. 그녀의 이름이 시인의 이름이 아니라고 평론가들은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시인으로써의 얼마전 아주 큰 영예를 얻었다. 관심이 있어 열심히 읽어 보았으나 아직도 뜻은 잘 모르겠다. 여전히 시는 읽는 것 만으로도 벅차다.
긴 글의 일부도 앞뒤를 상상해보는 맛이 있다. 예전에 읽었던 글을 만나면 반갑고, 아는 작가의 새로운 글을 만나면 그의 이미지로 상상해보고, 전혀 알지 못하는 작가의 글을 만나면 관심이 생긴다. 그리고 그림.
그림에 문외한이라 생각하는 나의 눈에,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하나하나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나같이 다른 그림과 표현 방식들. 저절로 탄성이 나올만큼 아름답기도 하고, 아무리 봐도 이상하기도 하고, 입이 한순간에 막힐 정도로 강렬하기도 하다. 문학을 표현했을 이 그림들은 그림 자체에 대한 호기심도 유발한다. 처음에는 그림을 먼저 한 눈에 보았다가, 그 다음 글을 읽었다가, 다시 그림을 찬찬히 보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사연으로 이 그림들이 그려진 것인가. 궁금하여 살펴보니 맨 마지막에 기획의 변 2장이 있을 뿐이다. 오히려 인터넷 서점의 도서 소개를 보고 문학상 수상작을 대상으로 화가당 3점씩 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에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