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소원칙
도정일 외 지음 / 룩스문디(Lux Mundi)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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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의 스킬을 알려주기보다는 우리시대에 있어 글쓰기란 과연 무엇이며  어떤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생각, 철학을 14명의 사회 각계전문가들에게서 들어보는 책이다.

 

 물론 글쓰기의 기술과 스킬을 알려주는 내용도 빠지지 않지만 이 책이 지향하는 것은 글쓰기에 대한 담론의 형성이다. 수천 년 간 글을 쓴다는 것은 한자와 한문에 능통한 지배층과 지식인의 전유물이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훈민정음이 발명되었지만 글쓰기 행위의 주체가 일반 민중과 대중이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제 높았던 종이와 먹의 위세는 사라져 문맹률은 거의 제로가 되었고 스마트 폰과 인터넷SNS로 소통하는 시대에 있어 글쓰기의 주체는 모든 사람들로 확대되었다. 또 글 쓰는 일반민중이 바로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주체가 된지 오래다. 그래서 옛날에는 글 그 자체가 귀하고 소중했지만 요즘엔 너무 많은 글이 넘쳐나는데다가 인문학적, 이성적 성찰과 인간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글이 너무 많아 도리어 좋은 글 한편 찾아내는 것이 희귀한 일이 되어 버렸다. 특히 인터넷매체나 웹상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들의 대부분은 한글 맞춤법조차 준수하지 못한 비문으로 도배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글쓰기의 최소원칙들은 오늘날 모든 대중들이 거의 강압적으로(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지 않고는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없다) 직면하고 있는 글쓰기의 현실적 필요 속에서 글쓰기의 방향과 방법을 몰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된다.

 

 평론가 도정일 씨는 책읽기와 글쓰기의 교육이 성숙한 시민사회의 뿌리가 된다고 하면서 우리도 하루빨리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시작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작가 김 훈은 소설, 에세이, 칼럼의 글쓰기 형태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김훈 특유의 편견?을 읽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처세, 경영, 주식, 경제, 자기계발 서적이 난무하는 오늘날의 출판시장과 독서현실에서 고전읽기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는 영산대 배병삼 교수의 ‘고전, 현재형으로 끊임없이 다시 써야 할 오래된 미래’ 라는 글은 혼자 읽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글이다. 고전읽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문재 교수의 ‘정확해야 아름다울 수 있다’ 라는 글은 글쓰기의 실제적 스킬과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훈련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실용적이다. 이 교수는 정확한 문장이 생명인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미덕을 칭찬한다. 그리고 개성적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 다지기는 바로 정확한 문장의 구사임을 주장하면서 정확하고 개성적인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을 다지는 자신만의 체험적 방법을 소개한다. 나도 멋과 기교를 부린 글보다는 한글 맞춤법을 준수한 정확한 문장으로 서술된 차분하고 간결하며 논리적인 글이 좋다. 문예 응모작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은 작품을 심사할 때 한글 맞춤법을 지키지 않은 비문으로 된 작품을 먼저 골라낸다고 한다. 비문작품을 골라내고 나면 남는 작품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니 정확한 문장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문재 교수는 먼저 정확한 문장쓰기 훈련의 일환으로 좋은 작가들의 작품을 필사하라고 한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는 몇 몇 좋은 작가들이 떠오른다. 먼저 문학 평론가 도정일 씨의 글은 잘 짜여진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긴장감과 질서 속에서 생각의 정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데 그는 정말 글 하나만큼은 미끈하게 잘 쓰는 것 같다.


 계간잡지 녹색평론의 김종철 씨의 글은 평이하면서도 호소력이 있는 문장이라 자주 찾아 읽는 편이다. 평론가 겸 작가인 고종석씨의 글은 매우 논리적이고 읽을수록 감칠맛 나는 문장을 구사한다. 작가 김훈의 글은 주어와 술어만으로 된 문장이 대부분이고 대나무를 칼로 벤 듯한 날카로움 속에 도도히 흐르는 삶의 서사를 적확하게 오려내고 추수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김훈의 글을 처음 읽는 사람 대부분은 이런 그의 글을 숨 막힐 정도로 답답하게 여기지만 결국 그의 글이 풍기는 묘한 매력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김 훈의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의 글을 흉내 내기는 쉽지 않다. 김 훈의 에세이를 구성하는 문장하나 하나에는 이 십년이 넘게 저널리스트로 살아온 기자로서의 관록과 삶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 그리고 인간적 성찰이 깊게 배어들어 우러나오고 있고 이런 점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의 문장들을 종이에 정성껏 필사해보면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개성적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 다지기 방법으로 자신이 쓰는 글에서 나쁜 버릇을 찾아 낼 것, 항상 새로움을 찾아 볼 것, 사물과 일을 자세히 관찰할 것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는 주저하지 말고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하면서 메모의 유용함도 강조한다. 요즘 나도 좋은 생각이나 문구가 떠오르면 열심히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는데 내 기억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머리가 아닌 메모지에서 나온다는 이문재 교수의 조언은 매우 의미심장하고 실용적이다. 메모지가 바로 상상력의 발전소이다.

 이문재 교수는 개성적인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다지기에 이어 세부지침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먼저 자신의 이야기부터 써볼 것, 같은 내용과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말 것, 접속사를 쓰지 말 것, 문장을 쓸 때 병치를 조심할 것 같은 아주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한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문재 교수의 글쓰기 비법하나만 제대로 실행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변호사 차병직씨의 ‘글쓰기 작업으로 구성되는 법의 세계’ 라는 글도 읽을 만하다. 법의 세계는 법을 언어로 만들고 다시 언어로 해석해서 그 결과를 다시 언어로 표현한다. 결국 법이라는 것도 언어와 글쓰기 행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법의 세계에서는 읽고, 생각하고, 그 결과를 써내는 작업으로 법의 의미를 창출하고, 또 그것을 적용해 이상적 질서에 가깝게 이끌어가는 일이 계속되는데 법의 세계 그 자체가 이미 글쓰기 작업으로 구성되는 세계인 셈이다.

 

 특히 법원의 판결문은 승자보다 패자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패자들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이 가능해져야 법 자체 또는 사법제도 전반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차병직씨의 의견에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한다.
 법조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한자어 표현들로 도배된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문이 아닌 패자와 사회를 설득시킬 수 있는 글쓰기를 시도했으면 좋겠다. 헌법재판소가 공개하는 판결문을 들여다보면 주어와 술어사이가 너무 길어 질리는 문장이 보이고 박근혜대통령도 앞뒤가 맞지 않아 구글번역기로 돌린듯한 알아들을 수 없는 문체를 구사한다. 대통령의 그런 문장은 따라하기도 어렵다.  아래 박근혜대통령이 구사하는 문장이다. 우리가 모르는 4차원의 세계를 향해 발언하시는 듯..

 

 글쓰기에 있어 최소원칙이 있다면 최대의 원칙은 무엇일까? 아마 글쓰기에서 최대 원칙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글쓰기의 외연은 무궁하게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소한의 원칙도 없는 글들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정보를 소비하는데 집중한다. 정보를 창조, 생산하는 자가 되고 싶다면 적어도 글쓰기의 최소원칙은 최소한으로 갖추어야 할 미덕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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