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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김현철 옮김 / 새물결 / 2006년 11월
평점 :
19세기 중반 유럽의 어느 평온한 마을에서 비단의 원료가 되는 누에알을 사다 파는 남자 에르베 종쿠르. 그리고 그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내 엘렌.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어느 날, 유럽에 누에 전염병이 돌아 에르베 종쿠르는 미지의 땅 일본으로 누에알을 구하러 떠난다. 에르베 종쿠르가 일본에서 구해 온 것은 누에알뿐만이 아니었다. 은거하고 있던 영주 하라 케이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하라 케이의 곁에 있던 미지의 여인과의 만남이었다.
그녀는 지방세도가 하라 케이의 애첩이었던 것이다. 에르베 종쿠르와 이름 모를 그녀와의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녀는 에르베 종쿠르를 처음 본 순간부터 범상치 않은 미묘한 몸짓을 펼쳐 보인다. 에르베 종쿠르가 누에알을 구하러 유럽대륙과 러시아 대륙을 가로 질러 두 번째로 일본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에르베 종쿠르에게 작은 쪽지하나를 전한다. 에르베 종쿠르는 그녀가 건네준 작은 쪽지를 누에알만큼 소중하게 간직해서 돌아온다.
한편, 에르베 종쿠르의 아내는 엘렌은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는 남편인 에르베 종쿠르가 머나먼 미지의 땅 일본까지 가서 누에알을 구하러 떠날 때 마다 남편의 안위를 걱정한다. 남편은 가을에 떠나 늦봄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을 인내하는 아내 엘렌. 그러나 남편인 에르베 종쿠르의 손에는 미지의 여인이 건네준 일본어로 씌어진 쪽지가 들려있고...
에르베 종쿠르는 아내 엘렌을 사랑했다. 이 소설에서 에르베 종쿠르의 외도는 결코 추하게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일본여행에서 거부할 수 없는 지독한 사랑의 밀어를 얻어왔기 때문이다. 그가 얻어온 사랑의 밀어에 취하지 않을 사람이, 아니 취하지 않을 남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솔직히 말하겠다. 에르베 종쿠르가 얻어온 그 쪽지에 씌어진 그 한마디가 바로 남자들의 로망이었던 것이다.
“돌아오시지 않으면 죽어버릴 거예요”
하라케이의 여인이 쪽지에 남긴 이 한마디에 에르베 종쿠르는 또다시 일본행을 택하게 된다. 사랑하는 아내 엘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에르베 종쿠르는 그 쪽지의 밀어에 취해버린 것이다. 그 쪽지에 씌어진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라케이의 미지의 여인의 진심은 무엇일까?
마침 유럽에서는 파스퇴르가 누에 전염병을 해결할 연구를 거의 마무리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에르베 종쿠르는 또 다시 그 여인을 보기 위해 내전으로 치닫은 혼란하고 위험한 일본으로 떠난다. 이제 에르베 종쿠르는 하라케이의 그 여인을 만날 수 없다. 하라케이가 에르베 종쿠르와 그 여인과의 관계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에르베 종쿠르는 목숨만을 겨우 부지한 채 천신만고 끝에 다시 유럽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가 가져온 누에알은 모두 죽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일본의 그녀로부터 장문의 편지가 도착한다. 이 편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감히 꿈에도 상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나는데...
결국 이 소설은 우아한 에로티시즘으로 묘사된 지독히 슬픈 사랑이야기였던 셈이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은 에르베 종쿠르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의 심장을 아프게 찌른다.
남자들의 로망은 그저 어리석고 헛되고 헛된 것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시지 않으면 죽어버릴 거예요” 라는 쪽지는......... 여전히, 무척이나.... 관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