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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로버트 하일브로너 & 윌리엄 밀버그 지음, 홍기빈 옮김 / 미지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사회의 형성(the making of economic society)이라는 원제를 가진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서.
무려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책인데 교양경제학 서적 중에 이 책만큼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은 처음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주요개념 과 역사적 형성과정에 대한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자본주의의 과거, 현재, 미래 에 대한 통찰과 혜안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책은 1968년 초판 출판 이래 2008년까지 무려 12번의 개정을 거친 12판의 역사를 자랑하는 책답게 인간역사의 새벽에 등장한 최초의 시장(물물교환시장)에서부터 2008년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한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다룬 인간경제의 대서사시이다. 바로 이점이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룬 다른 어떤 저서와도 다른 독특한 성격과 매력을 이 책에 부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왜냐하면 1960년대 이후 40년간은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적 성격이 극적으로 변했고 자본주의가 인간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극도로 확대된 시기인데, 이러한 최근의 중요한 변화까지 놓치지 않고 자본주의 역사에 편입시켜 분석한 책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자본주의의 역사의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는 셈이다.
저자인 하일브로너는 미국의 진보경제를 대표하는 학자답게 이 책에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시종일관 냉혹하고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시선을 유지한다. 그러나 하일브로너의 이러한 분석태도는 자본주의와 시장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본과 시장을 정확하고 제대로 보기위한 도구적 틀로서 이해해야 된다. 과거와 현재의 자본과 시장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분석해야 미래의 자본주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저자의 분석적 틀과 시선은 날카롭고 냉혹하지만 자본주의의 공과에 대한 서술은 치우침 없이 공평하다.
다시 말해, 하일브로너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그 자체를 악덕 혹은, 미덕으로 보지 않는다. 부유함이 악덕이 아니며 가난과 빈곤 또한 미덕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하지 않는다. 하일브로너의 이러한 치우침 없는 공평하고 냉혹한 시선은 요즘 우리나의 일부 진보언론 매체가 쏟아내는 자본주의와 시장에 대한 이유 없는 극도의 증오심과 적대감으로 무장한 기사와 글들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솔직히 보수언론들의 자본과 시장에 대한 짝사랑보다 일부 진보매체의 극단적인 자본주의 혐오(시장경제가 곧 망해야 될 것 같은 논조들)가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선, 중앙, 동아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의 시장경제 예찬과 일부 진보언론의 극단적인 시장경제 증오 편향 가운데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게 필요하다. 바로 이런 적절한 균형적 시각을 하일브로너에게서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하일브로너는 인간사회가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세 가지 방식을 전통, 명령, 시장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전통은 원시적 물물교환과 자급자족적 경제, 명령은 강력한 왕권으로 통치되는 경제, 그리고 시장은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조율하는 시장메커니즘이 주도하는 경제체제이다. 저자는 이 세 가지 큰 틀로 유사 이래 전체 인간경제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가능했던 이유를 설명한 부분도 흥미롭지만, 1929년 미국 대공황을 분석한 하일브로너의 독특하고 정확한 견해와 사유를 읽고 나면 당시 미국대공황의 여러 원인들이 결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대공황의 근본적 원인은 바로 ‘대박에 대한 광적인 열망’이었던 셈이다. 이윤과 투기를 불리기 위한 극단적이고 비도덕적 조작들이 무분별하게 횡횡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경고메세지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또 하일브로너는 사회주의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제공한다. 케인즈 경제학이 비록 스태그플레이션을 해결하지 못했지만 그의 경제학이 여전히 유효한 것처럼 자본주의의 미래가 반드시 시장경제체일 필요도 없음을 저자는 역설한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모색이 필요한 이유를 이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경제학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고 경제사 교과서의 용도로도 유용하다. 어떤 용도로 이 책을 선택하든 간에 모두 자신이 원하고 기대했던 이상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참모습과 변화의 궤적, 그리고 미래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자본주의를 더 크고 더 넓게 보고 싶은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