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러건트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승산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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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 여름날 밤 마루대청에 누워 누나와 함께 바라본 밤하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새카만 공간에 눈이 시리도록 신비롭게 빛나는 갖가지 별들과 은하수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내 상상력과 희망의 원천이었다. 우주의 시작과 끝이 너무 궁금해서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어쩌면 다른 생명체의 세포 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아마 초등학교 4~5학년 정도였으리라. 마루에 누워 같이 밤하늘을 바라보던 누나는 대학생이 되어 내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는 책을 사다 주었다. 나는 <코스모스>를 겉장이 너덜 하도록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태양과 지구가 멸망해 한 점의 먼지가 될 운명임을 알고는 이유 없이 그저 삶이 슬퍼지기도 했다.

  다시 책을 꺼내 보니 겉장은 사라지고 속지에 붓으로 제목을 다시 써 놓았다. 

 옛날  한문책처럼 보인다.

 

 

 

 세포내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지구 최후의 날 상상도를 거의 매일 들여다 보았다.

아래쪽의 지구 최후의 날 상상도를 보면서 난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어 가면서 밥벌이에 열중하느라 밤하늘을 쳐다볼 기회와 여유는 점점 사라졌다. 한마디로 “별 볼일 없는 인생”이 되어 버린 것이다. 며칠 전, 새벽근무를 마치고 우연히 새벽의 밤하늘을 보게 되었다. 그곳엔 여전히 어린 시절에 신비롭게 빛나던 별들이 밤하늘 가득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 별들이 보내오는 빛들의 파장은 짧게는 수 광년에서부터 길게는 수백만, 수 억, 수십 억 광년의 세월을 여행해 오고 있었다. 지금 바라보는 저 별들은 어쩌면 빛으로만 존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빛들은 내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득한 과거의 우주 저 편에서도 여전히 지금 내가 보는 빛과 동일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새벽에 나는 빛의 장구함과 공간과 시간의 막막함과 차가움, 그리고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의 유한성과 나약함에 몸서리쳤다.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현대 양자역학과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을 일반대중을 상대로 쉽게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쉽게 소개하고 있다는 수식은 다분히 상대적이다. 사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쉽게 읽고 이해하기엔 매우 어려운 책이다. 이 책의 후속작인<우주의 구조>가 어쩌면 이 책보다 읽기가 더 수월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쉽지만은 않지만 온갖 고등물리수학과 방정식으로 난무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수식하나 사용하지 않고 이 책만큼 일상적 언어로 서술하고 있는 책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저자 브라이언 그린의 장점은 바로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최첨단 이론물리학의 진수를 일상적 언어로 끊임없이 번역해낸다는 것이다.

 

 이 책의 도입부에서는 브라이언 그린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명쾌하게 풀어내고 해설한다. 물론 단 한 줄의 수식도 사용하지 않고 말이다. 상대성이론은 특수상대성 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나누어지는데 특수상대성 이론은 빛과 시간에 관한 것이고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에 관한 것이다. 브라이언 그린이 설명하는 상대성이론은 어렵지 않다. 그의 설명을 잘 따라가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과 시간이 절대적인 곳이 아님을 알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거시적 세계에 통용되는 법칙이지만 인간의 직관으로는 결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상대성이론보다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막스플랑크의 양자가설로부터 시작해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실험, 토마스 영의 이중슬릿 실험, 드브로이의 물질파, 슈뢰딩거의 파동함수 확률, 리처드 파인만의 경로합 등에 대한 브라이언 그린의 설명을 듣고 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와 자연은 완전히 우리의 상식에 벗어나고 만다. 우리의 직관과 상식은 양자역학에서 아무 소용도 없고 오히려 본질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자연 자체가 인간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음을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만물의 이론이라는 초끈이론 부분으로 들어가면 이제 과학이 아니라 오묘한 신비주의 철학에 다다른 것 같이 느껴진다. 초끈이론이란 만물의 근원이 두께가 없는 극도로 작은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물리이론이다. 물론 이 이론은 아직 과학적 실험으로 검증된 적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이론 물리학자들은 초끈이론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매끄럽게 통합해줄 만물의 근원 이론인 통일 이론의 후보로 여기는데 이론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 초끈이론으로부터 유도되는 우주의 근원과 참모습은 경이적으로 우아하고 아름답다. 이 책은 어렵지만 삶과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을 더할 나위 없이 풍부하게 해줄 이성과 감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제 다시 바라보는 새벽 밤하늘의 별빛과 시공이 그저 막연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것이 바로 과학의 힘이 아닐까?

the elegant universe!

 

 

                                                            

                                                                                     2010년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patra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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