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호장룡을 보았다. 나와 남편은 결혼식날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도 신부화장에 신랑 머리 다 한채로,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 을 보러갔었는데. 그러나 그보다도 더 사실 내가 좋아하는 이안의 영화는 와호장룡, 이다.
주인공 장쯔이의 이름이 룡(龍)이지만 사실 그녀는 숨어있는(藏) 용이 아니었기에, 영화의 제목과는 연결시키기가 뭣하고, 그저 영화의 제목을 생각해 보자면 누운 호랑이와 숨어있는 용, 즉 영웅과 전설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 있다. 는 뜻이다.
전설의 보검 청명검의 행방을 둘러싸고, 가장 조신한 귀족 아가씨로 보였던 룡이, 사실은 푸른여우라는 고수의 사사를 받아 마침내 그녀를 넘어서는 무림의 고수가 되어가고 그녀의 승한 기재(氣才) 가 스스로를 어떻게 망가뜨려 갔는지를 다시한번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계기였다.
자신을 얽매고 있던 모든 신분과 관습을, 결혼식 행렬에서 과감하게 깨 부수어 버리고, 남장을 하고 주막에 들린 그녀는 그간 눌려왔고 숨겨와야만 했던 자신의 무공비급을 수많은 고수들 사이에서 드러내며 현란한 검사위 속에 자신을 소개한다.
나는 천하제일 보검 청명검의 주인, 검의 여신, 오늘은 아미산에서 노닐며 내일은 무당산을 밟으리라!!
억눌려왔다가 이제 드러낼 수 있게 된 스스로의 재능에 도취된 그녀의 막무가내의 검술행진은 결국 미향에 중독되고 자신의 스승 푸른여우에 의해, 그녀를 뒤쫓던 리무바이를 죽게 함까지 질주해가고, 결국 이 모든 것이 허망함을 깨달은 그녀는 한 청년이 간절한 소망으로 뛰어내려, 그 소원을 이루었다는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어쩌면 가장 대단한 것은, 가장 위대한 영웅과 전설은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나고자 하는 욕망들과 나를 과시하려고 하는 욕망들은 언제나 부글부글 끓고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되려 하지만 가장 위대한 영웅과 전설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지 모른다.
푸른여우가 죽어가면서 용에게 남긴 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독은 여덟살 아이의 거짓말과 같은 것이다"
나 한사람만을 지키고 드러내려는, 여덟살 아이의 치기어린 거짓말이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것. 내가 읽은 책 단 한 권으로 세상을 안다 생각하고, 내가 경험한 단 한가지의 경험으로 다른 사람들을 재량하는 그 독으로부터 벗어나
누운 호랑이, 숨은 용의 미덕을 배우라고 하는 현명한 경고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요즘이다.
쓸데없는 이야기 하나. 장쯔이의 또박또박한 보통화 발음이 아주 듣기 좋았다. 장쯔이의 발음 외에는 이제 자막이 없으면 들리지도 않는구나...
쓸데없는 이야기 둘. 로맨스로도 읽기에 충분한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끝끝내 펼치지 못하고, 이제서야, 중년의 나이에 와서야 가까스로 손을 맞대어 본 사형을 그대로 보낼수밖에 없었던 수련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쓸데없는 이야기 셋. 펼쳐지는 중국의 풍경들을 보면서. 2001년 이후로 밟지 못한 중국에 대한 새삼스러운 그리움이 생겨나다. 언제 갈수 있을까..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