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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벼르고 별렀던 <카포티>를 보았다. 중간중간 자막이 안나오고 따로놀고 pdp 업그레이드해준다고 서비스 와서 중간에 끄고 하는통에 5장의 cd 를 버려가면서 보고나니 한시였지만

그래도 정말 이 영화를 안봤다면, 혹은 중간에 포기해버리고 나중에 보지..했다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영화는 둔중하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화제의 살인범 페리 스미스를 소설로 쓰기 위해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과 너무나도 닮은 불행했던 유년시절을 돌이키게 되고, 그와 자신이 한집에서 자라다가, 마치 그는 뒷문으로 나오고,  자신은 앞문으로 나온 것 같다는 고백을 할 만큼, 그와 가까워지고 심적으로 깊은 애정을 느끼지만

자신의 성공과, 4년간의 피땀을 쏟아온 역작의 발간을 위해서 그가 죽기를 간절히 바래야만 하는. 그의 사형을 손꼽아 기다릴수밖에 없는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나와, 그리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내가 빚어내는 아이러니,

쿠당탕거리며 불화하는 두 명의 나 사이에서 성공과 명예와 인정을 좇아갔지만 결국은 파멸하고 말았던 불행한 한 천재의 모습을 영화에서 보았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어요, 라고 사형을 앞둔 페리 스미스에게 눈물지었지만, 그렇다. 오랜 친구 넬의 지적처럼 "그것은 당신이 원했던 것" 이었다. 카포티는 그를 사랑했지만 결국 자신의 작품의 성공을 위해서, 결말을 어서 내고 4년간의 세월을 부와 명예로 보상받기 위해서 그의 죽음을 고대하고 갈망했다. 그의 사형을 매일 기도했을 것이다.

 마지막 자막에서 카포티는 그의 어떤 미발간 작품의 에필로그에 그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응답받지 않은 기도보다도, 응답된 기도로 인하여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알코올중독 합병증으로 죽어가기 전까지 카포티는 몇번이고 되뇌었을 것이다. 응답받은 기도에 대한 쓰라린 후회를. 자기와는 달리 뒷문으로 나갈수밖에 없었던 한집에서 자란 소년을. 떠밀어 버린 것에 대한 오랜 참담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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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샤 2007-12-10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자막이 중간중간 안 나와서 그 안 나온곳을 찿을려다가 님을 만났습니다 늘 즐거운 날들이 되길 빕니다 
 

사람이 슬플때가 많지만, 내 마음을 몸이 배반할 때, 혹은 내 몸을 마음이 배반할때 슬퍼지곤 한다. 예를 들면, 마음으로는 그 녀석을 잊었다고, 이제는 다시 떠올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꿈에서 그녀석이 너무나 멀쩡한 모습으로 밝게 웃는다든지, 나도 모르게 친구한테 전화한다고 했는데 그 녀석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다든지. 꼭 연애사에 국한하지 않는다면 머리로는 이건 안돼!! 라고 생각을 하면서 몸으로는 자학적인 습관을 반복(폭식이라든지;;)하고 있다든지. 어쩌면 김유신이 천관의 집으로 향한 말의 목을 가차없이 베어버렸던 것 역시, 그런 맥락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런 때는 참 슬프다. 왜 내 마음과 몸이 따로 노냔 말이지. 마음과 몸은 하나라고 하면서도, 왜 그렇게 내 맘대로 안되는 것들이 많냐는 말이지.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그들의 옥상 애송이 땐쯔도 귀여웠지만, 그리고 마지막 결승전의 어이없는 결과도 재밌었지만, 또 정말 나이를 무색하는 이상아의 아름다움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 마음에 사무쳤던 장면은 바로, 동구의 꿈 신이었다.
 
좋아하는 일본어 선생님(초난강은 진지한 역을 해도 웃긴다 "그래쿠나 무서운 꿈을 꾸엇던 것이쿠나"의 오마주.. 귀여운 감독들 같으니) 에게 "선생님 기뻐해 주세요, 저 드디어 멘스를 시작했어요" 라고 말하는 행복한 꿈을 꾸는 동구는 깨어나서 가만히 이불을 들쳐보고, 그리고 울면서 빨래판에 박박 팬티를 빤다. 카메라는 가만히 낮은 조명으로 동구의 울먹이는 등을 비춘다.
 
동구는 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멘스를 시작했어요" 라는 행복한 바램이 아닌, 남자로서의 육체를 엄정하고 날카롭게 드러내는 그의 육체의 반응 앞에, 너는 남자야, 라고 단정지어 보여주는 그의 육체의 반응 앞에..
동구는 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음을 배반하는 몸. 나는 여자야, 남자의 몸 속에 갖힌 여자야, 라고 생각하며 꿈꿔왔던 바램을 그의 몸이 냉정하게 배반하고 웃기지 말라는 듯... 그렇게 코웃음치는 그 순간에, 빨래를 벅벅 빨면서 흐느껴 우는 동구는.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었을까. 발로 걷어차 주고 싶은 등짝, 이라는(맞나?-_-;;) 일본소설 제목도 있지만, 동구의 등이야 말로, 어루만져 주고 싶은 등이었다.
 
나는 뭐가 되고 싶은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거야. 동구는 말했다. 마지막까지 예쁜 여자가 되지 못한 동구야, 그렇지만, 잘 살아라.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 자체는, 정말 작지만 행복한 일이 틀림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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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1-15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 영화 개봉할 때 못 보고 지나갔는데 빌려서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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