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톱으로 툭 튀기면 쨍, 하고 금이 갈 듯.
이희승 선생의 벽공(碧空) 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릴리슈슈의 모든것, 을 보면서 나는 자꾸 그 시가 생각이 났다.
비빔툰 만화에서, 날마다 얼굴에 대패를 밀면서, 점점 나이들수록 얼굴이 두꺼워져서 큰일이야, 라고 하는 정보통 생활미 부부가 기억이 나는데. 어른들이라면 그저 그냥 기스 한번 났다고 심상하게 지나쳐 버릴 나날들을. 쨍 하고 금이 갈 듯, 그리고 와장창, 하고 산산이 조각이 나 부서져 버릴 듯한 지옥의 시간들을 보내는 아이들이 여기 있다.
여행도중 만난 외톨이 여행객이 해 준 교살식물의 이야기. 천천히 천천히 다른 나무를 휘감아가 결국 그 나무를 고사시켜 버린다는 교살식물. 사람들이 낙원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 속에 사는 생물들에게는 지옥일지도 모르지, 라고 그는 말한다.
애들은 교복만 입어도 예뻐. 니들이 고민이 뭐가 있니? 학생때가 제일 좋다. 라는 말을 무색하게 해버릴 만큼 아이들은 존재 자체에 대한 불안 속에서 지옥을 살아간다. 커다란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보여 주고,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친근하게 말하던 호시노, 함께 여행을 갔던 친구 호시노가 갑자기 9월 1일 신학기를 기점으로 완전히 타인이 되면서 유이치의 잿빛 시대는 시작된다. 그러면서 유이치에게는, 릴리 슈슈만의 삶의 마지막 희망이 된다. 릴리 슈슈의 에테르만이 유이치를 숨쉬게 하고, 다른 세상은 매트릭스로, 릴리 슈슈만이 진실로. 그렇게 유이치는 스스로를 혹사시킨다. 호시노에게 강간당한 여자아이에게 "일(원조교제)"을 나가도록 시키고 그 돈을 호시노에게 전달할 때,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창고로 데려가 호시노들이 강간하게 하며 무력하게 그 비명 소리를 들을 때, 그러면서 소리질러 울 때. 그때도 릴리슈슈의 노래는 흐른다. 아름답고 무심하게. 비정하고 몽환적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 무심한 카메라. 빨갛게 예쁜 연을 보고 해맑게 웃는 여자아이의 모습 뒤에는 바로 옥상에서 떨어져 머리에서 피를 콸콸 쏟는 모습이 이어진다. 그리고 "날고 싶어" 라는 청량한 그녀의 나레이션이 지나간다. 릴리 슈슈의 공연장, 왠지 음악으로 위아더월드~ 로 끝날 것 같은 그런 익숙한 풍경은 기대를 배반하고,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약속에 칼이 꽂히고 피가 묻는다. 자살하지 않을까 내 마음을 졸이게 했던 유이치는 전혀 다른 결말을 택하고, 쿠노는 모자를 쓰고 학교에 등교한다. 그리고 서로 죽고 죽이며 상처주고 상처받던 아이들은 시골 들판에서 각자 홀로 서서 릴리 슈슈의 노래를 듣는다.
사람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것은. 존재이다.
존재만으로도 상처를 입고 피를 철철 흘리는 열다섯의 나날들. 신비롭거나 뽀샤시하지 않고, 그냥 생존과 공포와 불안과 잔혹함으로 얼룩진 나날들. 그럼에도 그 아이의 피아노치는 모습에 설레고 음악을 들으면 눈물이 나고 그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싶은 나날들... 그런데 아무도 밉지 않았다. 릴리 슈슈의 순전한 에테르 때문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