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법, 출구를 만들어라.


심리적으로 탈진 상태에 이르면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리 힘들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도피할 곳이 없다 생각하면 스트레스는 배가 된다. 미국의 어느 교수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조사를 했다. 학생들을 둘로 나누어 A방은 하루종일 공부만 해야 된다는 조건을 달았고, B방은 힘들어 잠깐 쉬어도 된다고 했다. 정해진 시간이 마치고 나서 시험을 치고 결과를 확인하자 확연한 차이가 났다. 절대 나갈 수 없다고 했던 A방의 학생들보다 힘들면 잠깐 쉬어도 된다고 한 B방의 학생들의 평균성적인 25점 정도가 높게 나온 것이다. 연구자는 학생들과 인터뷰하면서 재미난 사실을 발견했다. 


성적은 공부한 양에 비례하지 않고 집중력과 재미에 비례한다.  A반은 나갈 수 없다는 이유 만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집중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억지로 공부를 했다.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앞으로 피곤하면 어떻게하지라는 걱정이 앞서 집중을 못한 것이다. 그에비해 B반은 언제든지 힘들면 쉴 수 있기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고, 공부도 재미있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 B반은 A에 비해 공부량은 2시간 적도 작게 나왔다. 그럼에도 높은 점수가 나온 것은 재미있게 공부하므로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습득할 수 있었다.


회사일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다. 모든 일에 출구 없는 삶은 비극이다. 억지로 하는 일에 능율이 오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너무 엄하게 가르치면 아니들은 주눅이 들어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다.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면 틀릴까봐 어려운 문제는 도전하지 않음으로 성장이 둔해 지기도 한다. 실수해도 용납할 만한 분위기가 되고 좋은 결과를 요구하는 목적 중심의 삶이 아니난 최선을 다하는 여정으로서의 삶을 지향할 때 삶은 풍요로워지고 행복해 진다. 출구는 도망가는 곳이 아니라 마음의 안식처인 셈이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타인의 눈치를 보고 실수하기를 두려워한 탓이다. 그러다보니 모든 일에 실수 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과도한 압박감이 스트레스를 유발했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자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한 달전 몸이 안 좋아 검진을 받을 때 의사는 별다는 이상은 없으나 스트레스 때문으로 보이니 휴식을 취하고 마음을 편하게 하라는 충고를 했다. 그러나 동료는 지키지 못했고 결국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여러 방법 중에서 배설작용이 있다. 말로 풀고, 글로 풀고, 생각 정리를 통해서도 스트레스는 얼마든지 낮출 수 있다고 전문가들을 조언한다. 스트레스는 모든 사람의 현상이지만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강도의 차이가 난다. 자신의 상태와 삶의 의미를 다시 묻고 재정리하는 습관도 중요하다. 스트레스에 관련된 책을 찾아보니 좋은 책이 의외로 많다. 아이들에게는 동화책을 읽어 줌으로 공감하게 하여 해소할 수도 있다. 책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의 낙서


필사적이다. 오늘을 잡기 위해서. 누군가의 소식도 듣지 못한체.

거리를 거닐다 횡한 생각이 든다. 왜 아무도 없지? 시장인데? 

그게 궁금한게 아닌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시장인데 왜 사람이 없냐구? 가끔 몇 사람이 지나치지만 왠지 횡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라딘이 참 좋다.


알라딘이 좋다. 오지랍 넓은 성격이라 다른 인터넷 서점도 헤집고 다녔지만 결국 알라딘으로 최종 결정. 무슨 이유이겠는가. 글쓰기가 최고라는 점을 든다. 크롬를 사용하는데 알라딘 만큼 잘 열리거나 잘 써지는 서재가 없다. 인터파크나 교보 같은 경우는 낯설고 어색하다. 몇 달 동안 집중해서 글을 올리고 나름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원했지만 쉽지 않다. 특히 인터파크의 경우는 크롬과 맞지 않는다. 어쩔때는 크롬을 종료하고 익스플로어를 띄워야 글쓰기가 가능하기도 하다. 힘들다. 


 어떤 녀석이 집 앞에 꽁초를 버리고 갔다. 이런 녀석들은 얼굴만 봐도 안다. 거의 끝까지 피운 걸 보니 청년이거나 중고생이다. 성인들은 건강을 위해서 끝까지 물지 않는다.


작년에 즐겨 읽었던 셜록홈즈에서는 사용하는 물건을 통해 사람의 인상착의나 성경, 심지어 학벌이나 배경까지 알아 내는 장면이 나온다. 대단한 홈즈다. 아니면 작가인 코난 도일이 대단하던지. 한 인간에 대한 천착이 만들어낸 위대한 소설임이 분명하다. 요즘은 시간이 나질 않아 거의 읽지 못하지만 두고두고 읽을 책임에 분명하다. 


요즘 읽고 싶은 책이 몇 권 보인다. 단연코 최고는 조정래 선생님의 <정글만리> 시리즈다. 지난 달 아내에게 사준 <태백산맥>은 그대로다. 아내가 역사소설은 읽기 부담스럽단다. 그럴꺼면 내가 좋아하는 책을 살껄 약간 후회가 된다. 그대로 명작이니 시간 나면 읽을 참이다. EBS에서 방영한 <자본주의> 또한 매력적인 책이다. 마지막 한 권은 바로 <미생> 첫 권을 더 나가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요즘 나온 최고의 책이 아닐까 싶다.















공감이란 결국, 그가 아닌 너와 나로서의 마음이 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단화된 객체가 아닌 존재와 존재로서의 조우처럼 아름다운 것이 없다. 알라딘에서 공감까지 왔다. 알라딘의 편리함은 사용자 중심의 공감이 아닐까 싶고, 읽고 싶은 책 또한 마음이 통할 것 같은 기대감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소망이 있는 법이다.


알랭드 보통의 책은 잘 읽지 않는다. 한 권있는 책 <무신론자의 종교>를 읽고 참 글을 잘쓴다는 생각을 했다. 보편적이면서도 마음 깊숙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덤덤하게 그려준다. 종교에 극성인 사람이 보면 자신의 종교를 폄하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가 이번에 신간을 출간했다. 제목이 특이하다. <영혼의 미술관>이다. 왜 종교적 색체가 짙은 제목을 정할까? 그만의 노하우? 아니면 성격? 아니면 번역자의 생각? 하여튼 그의 책은 사고 볼 일이다. 찾아보니 그것 말고도 제법 책이 많다. 독자층이 탄탄한가 보다. 좀더 그에 대해 알아보아야 겠다. 

지루한 금요일 오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3-10-1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의기쁨과슬픔,도 표지가 바뀌어 새로 나왔군요. 글쓰기 좋은 알라딘에 전 요새 뜸한데 곧 돌아오겠어요^^ 낭만인생님과는 달리 오지랖 안 넓은 전 다른 곳에는 가보지도 않지만요ㅎㅎ 즐거운주말 보내세요^^.

낭만인생 2013-10-12 11:50   좋아요 0 | URL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라딘이 글쓰기에 편하네요.. 쭈욱 이곳에 머물 생각입니다.
 

메타언어 (meta言語)란?


메타언어가 뭘까? 금시초문이다. 메타도 알고 언어도 알건만 두 단어의 요상한 합성어인 '메타언어'는 모르겠다. 도무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더이상 이해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즘 시대가 좋은 건 국어 사전에 없어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쉽게 알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네이버 검색을 통해 알아 보았다. 


[명사] <언어> 다른 언어를 기술하거나 분석하는 데 쓰는 언어. 영어 문법을 한국어로 설명할 경우에 한국어를 말한다.


먼저, 명사다. 당연한 것이지만. 뜻풀이를 보면 다른 언어를 기술하거나 분석하는 데 사용하는 단어다. 이 언어를 처음 발견한 곳은 경향신문에서다. 논설위원인 이대근이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조의 논지를 펼치면서 사용했다. 용례를 직접 인용한다.(사이트링크)


 성장, 경쟁력, 성공 같은 메타언어의 틀 안에 갇혀 있던 한국 사회를 깨우는 변화의 신호인가? 


메타언어가 다른 언어를 기술하기 위한 언어라면 위의 용례는 틀렸다. 그러나 메타언어의 용도를 포괄적으로 잡으면 용납할만하다. 즉 박근혜 정부를 기술하는 용어로서 '성장' '경쟁력' '성공' 등을 사용했다면 말이다. 다른 용어를 설명하기 위한 단어로서의 활용이다.


혹여나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나 싶어 다시 위키백과 사전의 검색을 시도해 보았다. 맞았다. 


메타언어는 대상을 직접 서술하는 언어 그 자체를 다시 언급하는 한 차원 높은 언어로서 고차언어(高次言語)라고도 한다.


조금 길지만 위기백과사전의 설명을 그대로 카피했다.


가령 ‘4+4=8’이라는 등식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이 것 자체는 수(數)라는 대상에 관해 말한 대상언어이나 ‘4+4=8은 산수의 명제이다’는 메타언어이다. 이처럼 차원이 낮은 제1의 언어를 대상언어(對象言語)라고 하며 여기서 대상 언어의 진위여부에 대해 다시 한 번 언급 하는 언어가 메타언어가 된다. 대상언어는 ‘눈은 하얗다’ 또는 ‘1: 2번 문장은 참이다’와 같이 참, 거짓의 판별을 포함하는 문장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이러한 대상언어의 참, 거짓을 판별하는 메타언어는 ‘눈이 하얗다는 것은 참이다’, ‘2: 1번 문장은 참이다’와 같이 대상언어 전체를 그 속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대상언어보다 훨씬 길고 상세하게 서술된다. 또한 메타언어와 대상언어 양자는 상대적인 것이어서 메타언어라 할지라도 보다 높은 메타언어에 대해서는 대상언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A: 서로 평행인 두 직선은 영원히 서로 만나지 않는다. B: A 문장은 참이다. C: B 문장은 참이다와 같은 세 개의 문장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A문장은 단순히 기하학적 대상에 관한 정리를 나타낸 것으로서 이것의 진위여부를 서술하는 B문장에 대해서 대상언어이자 목표언어가 되고 따라서 B문장은 A문장에 대한 메타언어가 된다. 마찬가지로 B문장의 진위여부를 나타내는 C문장은 B문장에 대한 메타언어가 되고 B문장은 C문장에 대한 대상언어가 된다. 이러한 언어의 계층성은 사다리에 비유하여 설명할 수 있는데 사다리의 각 단은 위의 단에 대한 대상언어가 되며 사다리의 맨 첫째 단을 제외한 모든 단은 밑의 단에 대한 메타언어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메타언어와 대상언어의 계층 고리는 무한대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메타언어란 더 대상을 더 풍부하고 깊게 설명하고 해석하기 위한 보조적 기술이다. 메타언에 관련된 서적을 검색해보니 없다. 그러나 메타언어를 통해 해석하고 분석한 책들은 종종 있다. 한 단어에 따라오는 많은 단어의 세계가 즐겁다. 공부는 하면 할 수록 할게 많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ine30 2014-11-0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타언어란 말은 기호학에서 오랫동안 쓰여온 용어입니다.

안드로인 2015-01-14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래도 이해가 안되네요.. 어렵다~ 이해 안드로메다..

dddd 2021-06-13 16:1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ㅋㅋㅋ
 

책 읽기 좋은 책


순전히 개인 취향이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 변명도 아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책에 관한 책이다. 지난 번 페이퍼에도 연달이 글을 올렸지만 역부족이다. 좋은 책이 많으니 계속 쓸 일이다 싶다. 그래서 몇 권의 책을 골랐다. 


하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이다. 일본에선 그의 권위가 하늘 만큼 높다 한다. 기자 작가 교수 칼럼가 등 전방이적 삶을 살아간다. 번역되어 출간되지도 꽤 된 책이다. 2001년 9월이니 13년이 되었다. 큰 아들보다 한 살 많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이 책을 꺼내 읽는다. 처음부터 꼼꼼히 살피지는 않는다. 필요한 부분을 골라 읽는다. 특히 그의 책 고르는 법이나 고양이 빌딩이 맘에 든다. 난 언제 저런 서재실 하나 가질까. 까마득한 미래로 보인다. 그래도 꿈은 버리지 않으련다. 누군가는 다카시를 책 먹는 괴물이라 불렀다.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김용규의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는 특이한 책이다. 철학을 통해 문학을 읽어내려는 시도가 적지 않지만 그는 직접 해냈다. 그래서인지 딱딱하고 재미 는 덜해도 생각은 많이 된다. 한다가 아닌 된다이다. 철학의 눈으로 보는 문학는 어떨까? 재미난 이야기를 따분한 철학으로 해부하지는 않을까. 나름 생각이 더해지면서 이 책은 철학적 사유를 더해 준다. 








김정희 [한비야, 그녀의 서재를 탐하다]

썩 좋은 책은 아니다. 그러나 여행가의 눈을 엿보는 좋은 책이다. 여행도 일종의 독서이다. 세상을 책으로 보고, 만나는 사람 역시 책으로 보면 모든 것이 책이다. 사람 읽기도 세상 읽기도 결국 독서다. 오지여행가 한비야는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세상을 읽을까. 궁금하다. 그래서 인데 그분의 책을 한 번 읽고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여행이 가져다준 선물인지 아니면 본인 진작 가지고 있던 생각의 씨앗을 키운 것인지는 모른다. 답답한 사무실에 무턱내고 시간 죽이며 살아가는 나에게는 그녀의 서재가 궁금하다.



독서평설 10월호다. 그냥 잡지로 알았다간 큰 일 난다. 일년 200권의 독서력을 가진 나도 많은 도움을 받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이 참 좋다. 가끔씩 아이들의 수준을 너무 높게 잡지 않았나 싶다. 내가 낮은 건지도 모르지만. 이번에도 실망은 없다. 여유가 된다면 세 권 모두를 정기구독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