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 : 화질 보정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나카다이 타츠야 외 출연 / 블루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거장이 만들었다. 유장한 자연이 등장하고 사람도 여럿 나온다. 연극적인 요소가 가미돼 한편의 우화처럼 읽힌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배경을 일본전국시대로 옮겼으며 세아들들이 주인공이다. 적절한 각색으로 일본냄새가 물씬 나는 이야기 구조다. 

서사보단 미장센에 더욱 집중했다. 많은 이야기를 담은듯 보이나 기실 평론가들이 짚어내는 많은 의미들은 장면의 돋보이기 위한 부속품이다. 각 장면이 서사를 압도한다. 

세련된 영상미 만으로도 서사가 전달된다. 지금 관점에서는 옛 영화처럼 고루하고 과한 상징성 따위가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고풍스런 매력을 준다고도 할 수 있다. 음악도 80년대 작품인만큼 과하게 비장하고 때론 기괴하지만 그게 화면과는 매우 잘 맞는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참으로 대중적인 거장이다. 다만 그의 마지막 작품 '란'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던 80년대 특유의 허세와 무게가 느껴져 다소 귀여운 측면이 있다. 컴퓨터 그래픽이나 특수효과에 의지하기 힘들 시절에 만든 아날로그적인 만듦새가 근사하다. 허세도 돈 만이 들이고 안간힘을 써서 부리면 그게 하나의 '멋'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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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이 산문보다 살갑다. 

산문은 글의 이어짐으로 제 몸을 바로세우지만
운문은 문장의 맛으로 제 살갗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시는 구술로 전해져 내려온 탓에 
말하나하나 더해진 운율이 화자를 흥분시키고
겉치레 가득한 말이 설 때가 없어 
문장하나 씹어 삼켜도 온전한 글이 된다. 

말로 맺혀진 마음 글로 풀어낼 적에
내 피안에 단군이 
내 몸안에 토끼와 거북이가 어우러 지는데

미당이 짊어지고 소월이 읊조렸던 세상이  
내 잗다란 언어에도 수줍게 녹아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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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하루키가 배두나에게 묻는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을 좋아하나요? 내가 그이에게 묻는다. 


봄은 쇼팽에게 영감을 주고선 젊음을 앗아갔다. 


다가올 봄을 견디는 힘은 흩어진 옷매무새와 추억서린 마음 한켠. 


가지런하지 못한 부름이 애써 짓누른 울음을 밀어낸다. 내일은 오늘보다 덜 봄날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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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하다가 그이가 고팠다. 

밥솥은 비었고 나가긴 싫었다. 


전화를 하고선 그이가 받길 기다린다. 

빨래를 하다가 그이를 불렀다. 

젖은 빨래는 가을이 될 때까지 마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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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 던졌다. 아이는 울었고 친구는 웃었다. 돌 두개 던졌다. 아이는 울었고 친구들은 웃었다. 


돌이 쌓여갈 때마다

아이는 사라지고 비웃음만 남았다. 


마음 한곳 둘 곳 없어 돌무덤만 쌓여갈 적에

어른이 된 아이는 그때처럼 운다. 엄마도. 아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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