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했다. 자정이 넘었으니 어제 졸업했다. 졸업식 날 아침엔 비가 왔다. 가녀린 빗방울처럼 나는 외로웠다.
부러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학우들 중 거의 마지막으로 졸업을 하는 터라 겸연쩍은 맘도 있었다. 그런 마음이 그네들의 일상 같은 무관심과 잘 버무려져 나는 스스로를 한없이 탐닉했다.
졸업식에 오고 싶어 했던 어미도 부르지 않았다. 졸업식 전 날 아버지 제사상을 차려야 했던 탓이다. 무엇보다 아비도 없이 홀로 상경하는 어미의 기죽은 모습을 감당하기 싫었다. 가뜩이나 늦은 졸업에 딱히 나를 돌봐줄 지인도 없는 공간의 적적함은 내 것으로 충분했다. 자식의 학사모를 쓰고파 하는 어미의 소소한 행복을 모르는 건 아니나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다. 그저 나 혼자 감당하고 나 홀로 외로워하면 그만인 행사였다. 졸업 탓에 아비의 빈 공간을 느낄 어미를 달랠 자신이 없었다. 아직 어린 탓이다.
졸업 사진을 같이 찍자는 전화가 왔다. 회사 동기인데 학교 후배이기도 한 그네의 밝은 목소리는 나또한 기쁘게 했다. 여린 친구다 보니 웃음에서도 시린 결기가 느껴지곤 했었는데 그러한 해맑음은 그네에 대한 내 잔걱정을 적잖이 눅였다. 몇몇은 졸업하는지 몰랐다며 연락이 오기도 했다. 그나마 취업을 했으니 그들은 내게 덜 미안한 마음을 가진 듯하다. 미안할 것도 축하할 것도 없는 시간 속에, 나는 그네들에게 각기 다른 이유로 졸업식에 가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 잗다란 이유는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지만 그만큼 허언(虛言)이라 해도 좋았다. 나는 나를 알기에 그렇다.
회사에서 알면 괘씸해 할 지도 모른다. 졸업식이라 휴가를 줬거늘 제 외로된 사업에 골몰하느라 식도 참석하지 않았으니 이런 불경이 또 없다. 불경하고 또 불경하니 다 미욱함이 낳은 업보(業報)다. 마음은 비루하지 않으나 글이 처연하니 내겐 아직 겨울인가 보다. 그래도 오늘은 어제만큼 따뜻했다. 한없이 외로운 심사가 어디서 기인한지 알 길 없다. 외로움은 그리움으로 깊어지고 선명해진다. 나는 무엇을 그리도 그리워하여 밤을 부여잡고 잠을 못 이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