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흥얼거려지는 노래가 있다. 지금 생각나는 노래는 숙녀에게, 종로에서, 어떤 그리움 이다. 숙녀에게는 변진섭이 아닌 유리상자의 노래가 익숙하다. 이세준의 미성이 노래의 분위기와 꼭 맞다. 2005년 가을 경에 처음 들었을 땐 익숙한 선율 때문에 원곡이 무엇인지 꽤나 궁금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친구 한명은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다 알 필욘 없다며 괜한 설레발을 나무랐다. 후에 변진섭이 원곡의 주인공이란 걸 알았고 그의 곡도 찾아 들었다. 유리상자와는 다른 담담한 고백의 언어가 마음에 꼭 들었다. 유리상자가 가끔씩 보이는 우울함을 잘 살렸다면 변진섭에게선 수줍은 호기심이 묻어났다. 당시 사귀던 아이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지만 노래를 불러 줄 새도 없이 이별을 통보 받았었다. 그 애의 맑은 미소만 보고 가끔씩 보인 우울한 눈빛을 읽어내지 못한 내 불민함 탓이었다.
종로에서는 검찰청에서 공익요원으로 활동할 때 많이 들었다. 총무과 옆엔 자료 보관실이 있었는데 거기 주임과 후배 공익 셋이서 이 곡을 자주 들었다. 그 주임님은 ‘후르츠 바스켓’이란 만화를 좋아했다. 약간 어리바리하면서 속은 푼푼한 타입이었다. 내가 어리광을 부리거나 실없는 소릴 해도 언제나 웃으며 잘 들어주던 분이었다. 항상 웃고 있어서 언제나 그런 줄 알았는데 후배 공익의 말에 따르면 나만 보면 그 분 표정이 밝아졌다고 한다. 나도 주임님을 좋아라 하였다. 어느 날 그분은 직장 동료에게 시집을 갔지만 여전히 나를 잘 챙겨주셨다. 조금만 친해지면 반말을 하는 나였기에 그 분별없음을 귀엽게 보셨나 보다.
종로에서는 제이에스의 노래로 자주 들었다. 이 곡도 리메이크 곡이라는 데 원곡은 남자가 불러서인지 애절한 느낌이 덜했다. 당시 내가 곁에 있어도 그립다고 말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간절함에 닿지 못하는 내 모습에 자주 울음을 보였다. 사랑이란 말도 자주 들었지만 말은 쌓이지 않고 언제나 맴돌았고 홀로 속앓이를 하던 그 아이를 난 그렇게 보냈다. 가끔 종로를 거닐 때 마다 그 아이의 모습과 함께 이 노래가 떠오른다. 내일은 사랑한다 말해줬어야 했는데 말의 덧없음을 경계하던 가난한 마음이 지금은 야속하다.
어떤 그리움은 이은미의 노래다. 성시경의 음색으로 자주 들었다. 이은미의 곡은 사무치고 성시경의 곡은 아프지만 감미롭다. 내 여친이었던 아이는 이은미의 이 곡을 슬프다고 싫다 하였다. 마치 그 노래 속 임이 내 모습을 보는 듯 하다며 헤어진 후 들으면 마음이 매우 아플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그 아인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편안함을 느꼈고 그러면서도 외로워했다. 지금도 그 혼자만의 외로움으로 어떤 그리움을 미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항상 스스로를 타자화하며 슬픔도 눈물도 다 남의 것이라 여겼던 지난날이었다. 그런 이기적이고 슬겁지 못했던 마음이 매우 서글퍼 보인다. 내 앞 길을 비추는 또 다른 그리움은 소슬한 가을엔 왜 혼자이면 안 되는지 알게 해준다. 그대가 그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