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새 음반이 나올 예정이다. 111주년 기념반이라 한다. 60여 장의 음반이 포함돼 있는데 내가 가진 음반과 20장 정도 겹친다. 이전부터 회자되온 명연으로 가득하다. 주위에 클래식에 입문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추천해주고프다. 그만큼 좋다.
다만 이러한 저가 물량 공세는 판매자와 구매자 둘 다에게 단점이 있다. 우선 판매자는 음반을 염가로 팔게 됨으로써 기존 음반 구매자들의 신뢰를 잃게 된다. 기존 구매자는 정상 가격에 음반을 구입했다. 그러다 보니 염가음반에 비해서 웃돈을 주고 음반을 구매했단 생각이 들 수 있다. 물론 음반을 먼저 구입함에 따라 음반이 주는 효용을 충분히 누렸을 테다. 또한 가격에 대한 탄력성(elasticity)이 낮은 구매자라면 이러한 염가 음반에 대해 개의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가격에 대해 매우 민감한 구매자라면 차후 사고 싶은 음반의 구매시기를 늦출 가능성이 높다.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의 아포리즘 마냥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싼 가격에 음반을 즐길 수 있으니, 좀 더 참자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거다. 클래식을 향유하는 계층이 문화적 소양이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경제적 효율이 최우선시 되는 시대에 이러한 가격 정책에 쓴맛을 다실 클래식 애호가가 다수일 테다. 결국 이러한 구매자들의 구매 지연 행위는 음반 시장 위축을 낳고 다시금 저가 음반을 내어 이러한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염가 음반을 구매한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는 단점은 또 있다. 보통 비싸게 산 물건일수록 사람들은 애착을 보이기 마련이다. 가격이 높을수록 기회비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헌데 이렇게 저렴한 음반은 음악 자체에 대한 애착을 떨어뜨린다. 가격이 가치의 절대적 척도는 아니지만 꽤나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현 시대다. 아무래도 이러한 상품에 대한 가치를 낮게 둘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음반을 쟁여놓고 안 듣거나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개연성이 높다. '저렴한 가격의 역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이 가진 장점은 많다. 무엇보다 훌륭한 연주에 좋은 선곡이다. 내가 가진 음반과 3분의 1이 겹치지만 살짝 마음이 동하는 이유다. 몸을 위해 운동을 하고 두뇌를 위해 독서를 하듯 마음을 위해선 음악을 들을 필요가 있다. 음악은 영혼을 살찌운다. 살찌기 좋으라고 DG에서 음반이 나왔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음악까지 저렴하진 않으니 귀를 기울여도 좋다. 다만 낱장으로 구입했을 때의 설렘이나 푼푼함까진 기대해선 안된다. 열심히 정진하겠단 어기찬 다짐이 있어야만 이 음반은 오롯이 그대 영혼을 다습게 해줄 테다. 저렴한 물량 공세에 대응하기에는 이러한 성실함이 최고다. 혹 음악을 듣는 데 이렇게까지 바지런 피우며 들어야 하냔 의문도 들 수 있다. 생활이 팍팍하여 영혼이 핍진할수록 그런 의문이 심할 테다. 오히려 그렇기에 마음을 써서 음악을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운동도 몸이 성한 사람보단 어딘가 불편한 사람이 애써 해야 되는 것. 지난한 삶이 비루해 보일 때 마음을 기울이자. 클래식을 듣자. 마침 물건도 좋고 가격도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