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를 많이 봤다. 책도 많이 봤다. 영화를 찍을 생각은 안했다. 그러다보면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 믿었다. 하지만 유명한 감독들은 무슨 아카데미 출신이 많았다. 나는 서울 소재 모 사립대 경제학과 학생이었다. 감독은 내게 먼 길이었다.

 그래서 알아보니 피디 출신들도 감독을 많이 하더랬다. 피디가 되고 싶었다. 피디가 되려면 센스가 뛰어나야 된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은 내 센스가 뛰어나다고 했다. 특히 고등학교 친구들은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들은 나에 대한 과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하든 잘하거란 식의 믿음 말이다. 난 스스로가 그렇지 않다 여겼다. 난 그냥 몽상가였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무언가 잘 되겠지라 여기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4학년이 되자 피디 공부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경제학 수업은 어려웠다. 공부에 더 전념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모 방송사 원서를 썼다. 서류에 붙었다. 난 내가 붙어서 다 붙는 줄 알았다. 헌데 3:1의 경쟁률이었다고 누가 가르쳐줬다. 스스로가 대견했다. 시험을 봤는데 작문을 쓰라 했다. 폴리니와 아르헤르치의 음악에 대한 변증법적 고찰을 썼다. 쇼팽을 메인 테마로 했다. 차가움과 정열이 아름다운 데칼코마니를 이룬다고 했다. 문제는 기획안이었다. 처음 써 보는 거였다. 보아하니 이 방면 공부한 사람들은 익숙할 듯 했다. 대충 적어 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래서 인생에 대한 고민을 했다. 결론은 소설가였다. 소설가들은 기자 출신이 많았다. 기자가 되기로 했다. 모 언론사 원서를 냈다. 단번에 최종까지 갔다. 또 스스로가 대견했다. 헌데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특기에 ‘스타크래프트’라고 썼는데 나를 동네 한량으로 본 듯했다. 편집국장이 왜 그게 특기냐고 물어봐서 나도 당황했었다. 허나 그러려니 했다. 후엔 내가 가고 싶은 언론사만 원서를 썼다. 5군데 정도 넣었다. 이상하게 서류는 잘 붙었다. 필기에서 떨어졌다. 이 길이 아닌가 싶었다. 근데 또 다른 주요 언론사 최종까지 갔다. 다시 자신감이 붙었다. 헌데 이번에도 면접 가서 헛소리를 했다. 왜 문화부 가고 싶냐고 하길래 다른데 보다 쉬울 거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여기서 다른 데란 타 언론사의 문화부를 지칭하는 거였다. 질문이 그런 식으로 왔기 때문이다. 역시 떨어졌다.

 그리고 몇 달 동안 주린 배를 쥐고선 놀았다. 나름 인생의 황금기였다. 재밌는 일이 많았다. 오상원의 ‘유예’가 생각나게 하는 시절이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방학이라 여겼다. 이제 취업시즌이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아무데나 원서를 넣는다. 소설가나 영화감독은 이제 생각지 않는다. 그냥 밥벌이 하는 이 땅의 노동자가 되려 한다. 소설가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밥벌이가 얼마나 위대한지 이야기 했다. 그러한 일상의 고달픔과 힘겨움을 이겨 내는 일이 평범함이 아니라 비범함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잗다란 일을 구접스럽게 생각한 지난날의 오만이 누군가에게 죄송하다. 누군가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이제 어른이 돼야겠다. 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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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9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9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9-09-2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요새 무심한 날씨는 참 좋네요^^

바밤바 2009-09-21 19:0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오늘은 비까지 오네요~ ㅎㅎ

드팀전 2009-09-21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배고플 것 같고..그 시간을 견딜 열정이나 재능도 없어보여서..ㅋㅋ 제 대학시절 베프는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했지요...
.. 언론사의 고위층이란 사람들이 좀 조직의 중간관리자들이고 보수적이니...너무 튀거나 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네요..취업이 힘든 시절인데 조금 더 애쓰셔서 좋은 기자나 PD 노동자가 되세요.

바밤바 2009-09-21 19:10   좋아요 0 | URL
오~ 제가 좋아라하는 팀전님이네요^^ 모두가 최선을 다하라지만 항상 여분의 힘은 남겨두고 사는 게 저한테 맞는거 같아요. 불확실성에 대한 보험이라고 할까.. 팀전님 글 자주 보고 있습니다~ 좋은 글 계속 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