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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한 포기 다치지 않기를
클로드 안쉰 토마스 지음, 황학구 옮김 / 정신세계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열여덟 소년이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베트남에 파병되어, 죽이고 죽는 진창 한가운데서 절대적인 폭력을 경험한다. 소년은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수십 개의 무공훈장을 가슴에 단 채 귀국하였다. 그러나 금의환향에 대한 소년의 꿈은 한낱 '꿈'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고통의 흔적을 돌아보기 싫어하고, 고통을 상기시키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도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클로드 안쉰 토머스. 가사 차림에 빡빡머리, 한눈에 보아도 스님처럼 생긴 얼굴에선 깊은 고통과 연민, 평화가 함께 느껴진다. 전쟁이 준 심리적, 정신적인 상처로 오랫 동안 스스로 삶을 파괴하고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온 사람. 이제는 그 고통 한가운데서 고통을 응시하는 표정으로 서 있다.
저자는 전쟁이 어딘가 다른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전쟁은 바로 지금 '내'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그' 전쟁과 '이' 전쟁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평화 운동을 하려면 너 자신이 평화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 책 만큼 구체적으로 그 사실을 와닿게 한 경우는 처음이다.
베트남 전쟁의 참혹한 현실과 아무것도 모르고 그 전쟁 속에 말려들어간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나도 밤마다 전쟁의 악몽을 꾸고 실제로 온몸이 아파왔다. 이렇게 쓰인 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아프고 힘든데, 실제로 그 일을 겪어내야 했던 사람은 오죽했을까. 그 일을 겪고 '나는 아팠다'고 말할 수 있기까지 그가 겪어야 했을 지옥이 어떤 것이었을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치유란 고통의 부재가 아니라고, 평화란 갈등의 부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고통과 갈등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도 내가 괜찮은 것,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치유와 평화의 진실이다.
이 사회에서 우리는 자신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도록 조건화되어 있다. 우리는 자신이 노숙자, 마약중독자, 살인자, 어린이 성추행자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우린 그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지금 그런 상황에 있지 않다고 해서, 그들과 다른 것은 아니다.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망각 속에 산다면, 우리도 역시 자기도 모르게 노숙자나 이혼자나 강간범이나 치한이 될 수 있다. 고통이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를 그런 곳으로 데려가서, 우리가 어떻게 거기 왔는지, 심지어는 우리가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고통에 지배되고 있고 고통의 덫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깨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미망의 힘이고, 망각의 주범이다. (p.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