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의 시대
제임스 러브록 / 범양사 / 199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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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발표된 지 20년이 훌쩍 넘어 웬만한 사람들은 한 번 씩 들어봤을 법한 가이아 이론. 전작 '가이아'가 가이아 이론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담은 책이었다면 이 책은 '가이아'의 후속편 격이다. 데이지꽃 실험을 예로 자신이 세운 가이아 이론을 증명하려고 노력한 흔적과 태고대, 중간시대와 현생대로 나누어 지구 생태의 역사를 고찰해본 점, 제 2의 가이아가 될 수도 있을 화성에 대한 희망적인 의견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내가 관심있게 보았던 부분은 9장 '신과 가이아' 부분이었는데, 종교적으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는 않는 과학자로서 저자의 입장과 가이아를 연구하면서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힘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 소박하고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가이아 이론이 지구의 자기 치유력에 관해 설명하면서 인간이 저지른 어떠한 오염도 정당화시켜준다는 혹자들의 오해와 달리, 현 상태대로 열대 우림이 파괴되고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 결국 가이아는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을 지배종으로 선택할 것이란 이야기는 다소 섬뜩했지만 충분히 설득력 있었다. 워낙에도 이 상태로라면 인류가 곧 멸종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요 지배종의 지위를 다른 종에게 내어줄 것이란 생각을 평소에도 갖고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는 제임스 러브록의 논조가 교조적이지 않다는 점이 이 생각에 신빙성을 더했던 것 같다.

20년 전에도 이 책은 지수적으로 불어나는 이산화탄소와 토양오염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는데, 지난 20년간 인류는 그 전의 수십년 간 저질러왔던 것보다 더한 파괴와 오염을 일삼아 왔다. 그럼에도 저자 말마따나 현대 인류가 몇 년 안에 모두 채식주의자가 되고 자동차를 폐기하고 저마다 나무를 심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 인간은 공멸을 향해 가도록 예정된 모양이다. 인간이 이루어낸 눈부신 과학 기술로 그 속도를 조금 늦출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곧 지구를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희박해질 것이라 본다. 글쎄, 인간의 바통을 이어받을 지구의 지배자는 누가될까?

흠... 지금이라도 생존이라면 둘째 가라 서럽다던 바퀴벌레랑 친해두어야 할까보다. 어느 순간 바퀴벌레가 진화해서 더 높은 지능을 갖게 되고 우리는 모두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처럼 바퀴벌레의 은혜를 통해서만 가이아와 접촉할 수 있을지 누가 아는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부해 근처의 주민들은 커다란 바퀴벌레 '오무'의 허물로 만든 마스크를 써야만 부해에서 숨을 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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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 루소
J.루소 지음 / 집문당 / 199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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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싸이코패시(psychopathy)라는 말이 종종 회자된다. 정신병적 징후를 두루 일컫는 말이었다가 요즘엔 특정 범죄(예를 들어 연쇄살인 등)와 연관된 정신 작용을 일컫는 말로 주로 쓰인다. 싸이코패시들의 특징은 보통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희생자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라든가 죄책감이 전혀 없으며, 범죄 이후에 때로는 전혀 이해 못할 방식의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살인을 하고 나서 희생자의 살점을 도려내 가져간다든가, 시체를 열십자 모양으로 배열한다든가.

이런 싸이코패시는 살인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범죄와 함께 나타나는데 오늘 신문에도 난 중학생들의 단체 성폭행이라든가, 물건을 훔치는 증세라든가, 폭력 행사 등등이 그렇다. 특히 사회에서 소위 '성공한' 인사들 중에도 싸이코패시들이 만연한데 이런 사람들을 따로 white color psychopathy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가장 고등한 형태의 사이코패시로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정치인들과 대기업 CEO 등이 있다. 이들은 극도로 이기적이며 거짓말을 함과 동시에 자기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어버리기 때문에 거짓말 탐지기로도 알아내지 못한다.

'에밀', '사회계약론', '민약론'을 집필하고 백과전서파로 활동했던 18세기 위대한 사상가 장자끄 루소, 그가 싸이코패시였다면? 이백 년을 넘어 세기의 교육학 고전으로 평가되는 '에밀'의 저자가 자기 자식을 한둘도 아니고 다섯이나 고아원으로 보낸 비정한 아버지였다면? 그리고 나서도 남의 아이들을 보면 귀여워하고 다정해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루소가 어떤 심정으로 이 책을 썼는지도 알겠고, 책 제목도 자기 말마따나 참회한답시고 '참회록'으로 지었다지만 그의 이기적인 행동과 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평생 가난에 쫓기고 병마에 시달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핍박 받는 일생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는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때로 사람의 됨됨이가 그 사람의 성공하고는 관련 없다는 것은 왠지 풀죽고 억울해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루소가 애시당초 목적한 대로, 그의 솔직함만은 높이 살 만 하다. 이렇게 살아왔다고 해도 이 인생을 책으로 써서 후대에 남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테니까. 덕분에 '삶'과 '성공'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볼 좋은 기회도 얻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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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산보자의 꿈 홍신사상신서 52
루소 지음 / 홍신문화사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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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가 만년에 작업한, 일종의 에세이집이다. 임종이 가까워져서인지 루소는 다른 책에서보다 훨씬 부드럽고 영적인 느낌으로 충만한 글을 많이 썼다. 결국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쓰다 영면에 들었다고 한다. 

'참회록'을 읽으면서 느꼈던 루소에 대한 실망감이나 분노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나마 누그러졌다. 그가 죽을 때까지 결국 가장 많이 괴로워한 일이 자기 자식을 고아원에 내다버린 일이라는 걸 읽게되자 한편으론 '거 봐라'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쓰러워지기도 했다. 그는 그저 타고난 대로 자기 한 목숨 걱정하면서, 자기 원형대로 살았을 뿐인데 세상이 그에게 요구한 것은 그의 명성과 성공에 걸맞는 도덕군자였다. 이 책은 그럴 깜냥이 안돼서 세상에서 내쳐진 사람의 절박한 자기 변명같기도 하고, 부와 명성과 친구에게서 멀어진 은자의 담담한 자기 고백 같기도 하다.

한 살 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느끼는 거지만, 삶에는 끝이 없다. 목숨에는 끝이 있지만 이 삶은 내 목숨이 끊어진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삶은 적어도 목숨 보다 길고 오래남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영원이라고도 부를 수 있기에, 우리는 목숨이 아니라 삶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래서 루소가 남긴 책들은 어떤 면에선 반면교사가, 어떤 면에선 참 교사가 되어준다. 사람에게 실수보다 중요한 것은, 실수 이후에 어떻게 했느냐가 될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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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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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나 '발전'이라는 말이 경제적인 관점이 아니라 정치적인 관점이라는 탁견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일본 오키나와에서 군복무한 일을 계기로 일본에서 살고있는 정치학자이자 평화운동가.

우리는 모두 더 잘 살기 위해 여가를 희생하고 가족을 희생하고 건강까지 희생해가며 돈을 벌지만 결국 우리가 지배당하고 있는 '성장' 혹은 '발전' 이데올로기란 제한된 자원을 가진 지구안에서 한계가 명백한 것일 터. 고르게 가난한 삶이 결국 앞으로의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테지만 이미 인간들의 세계는 자멸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타이타닉을 닮아있다. 

멕시코를 잡아먹은 NAFTA를 번연히 보면서도 조금이라도 돈되는 것 더 팔아보겠다고 더럭 FTA를 체결하는 한국 정부도 웃기고, 그 정부에 부화뇌동하는 언론도 아주 꼴사납다.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화란 이름의 타이타닉을 타고 빙산을 향해 폭주하는 중이다. 그놈의 세계화가 거꾸로 거슬러가면 경제발전론이 되고 제국주의가 되고 결국 그 뿌리는 식민주의라는 것을 어째서 보지 못한단 말인가. 하긴 일제 식민지하에서 득세하던 자들이 권세를 잡은 나라이니 미제 식민지가 된들 무슨 차이가 있으랴마는! 착한 백성, 힘없는 백성만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좋은 책에 옥의 티라면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다. 특히 초반부엔 번역투도 이런 번역투 문장이 따로 없어서 우리말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직역에 가깝다. 번역은 또 다른 창작이다. 아무리 직접적인 뜻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지만 작가의 의도를 살려 우리말로 제대로 풀어 전달하는 것이 번역가가 할 노릇 아닐까. 김종철 선생님 번역은 좋기로 소문났는데 이 책은 바삐 내시느라 신경을 못쓰셨나보다. 5년에 걸쳐 9쇄나 찍었으면 이제 개정판을 준비하셔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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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온달 힘찬문고 34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김호민 그림 / 우리교육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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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이 문학사에서 환타지 문학의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바보온달'을 다시 읽었다. 이 책은 우리 설화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한 것이다. 바보 온달은 평강 공주를 만나 강인한 무사가 되었지만 결국 싸움터에서 죽고 만다. 온달이 바보를 벗어나 똑똑한 장수가 되어 과연 행복했을까? 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이 책은 서른 무렵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생명'과 '용기'의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이현주 선생님의 깊은 세계관이 담겨있어 어른에게도 만만치만은 않은 책일 듯 하다.

고구려 무덤의 벽화를 닮은 삽화도 아주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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