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길벗어린이 문학
엘리너 파전 지음, 에드워드 아디존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길벗어린이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작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내내 먼지 자욱한 '작은 책방'에서 책을 읽으며 자란 작가의 소박하고 담백한 단편들.

어릴적 시골 할머니댁 아랫채엔 창고로 쓰이던 작은 뒷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방은 내 아버지가 또 삼촌들과 고모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방이었다. 거미줄이랑 먼지가 하도 많아 할머니가 들어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셔도 그 안에 들어가 놀면 아버지랑 고모 삼촌들이 쓰던 이런저런 옛날 물건들이 보물처럼 쏟아져나오곤 했다. 향기가 나는 작은 다이어리에서부터 아버지가 총각 때 쓰던 일기장, 낡은 만년필, 쪼글쪼글해진 우표, 살짝만 접어도 바스라질 것 같은 책들- 그 방에서 나오는 물건엔 모두 역사가 있었고 삶이 있었다. 어린 나는 그 방에서 나는 곰팡내마저도 사랑했다.

여기 실린 단편들, 하나같이 다 괜찮지만 서문에 실린 작가의 말이 나는 가장 좋았다. 엘리너 파전처럼 나에게도 비록 '책방'은 아니었지만 '작은 뒷방'이 있었으니까. 언젠가 나도 이런 책에다 내 '작은 뒷방' 얘기를 쓸 날이 오겠지. ^^

1930년대에 어린이책 작가가 되고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엘리너파전이 남겼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어린이한테 맞추어서 쉽게 쓰겠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어린이의 수준에 맞추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어린이가 특정한 어조에만 반응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린이가 모른다고 생각되는 언어와 사건을 쓰는 것을 겁내지 마십시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핀드혼 농장 이야기
핀드혼 공동체 지음, 조하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스코틀랜드의 척박한 모래땅을 기름진 농장으로 바꾼 기적의 일꾼들 이야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인지 보여주는 놀라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자연과 소통해서 기르는 꽃과 야채들은 우리 몸으로 들어오고 그것들을 먹고 그것들로 숨쉰 우리는 자연 그 자체가 되는 놀라운 실제 경험을 쓴 이야기다. 소설이라고 해도 이보다 흥미롭기 어려울 것이다.

자연과 소통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 핀드혼같은 공동체가 점점 많아지면 좋겠는데, 60-70년대 핀드혼 이후에 어떤 곳들이 이런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책 속에 나오는 핀드혼 같은 곳을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창비아동문고 17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강일우 옮김, 일론 비클란트 그림 / 창비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삐삐롱 스타킹'으로 유명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할머니의 단편 모음집이다. 개인적으로 린드그렌은 코미디도 뛰어나지만 비극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가란 생각이 든다. 물론 코믹한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인정받는 작가가 되었지만, 린드그렌 할머니의 장기는 아이들의 슬픔을 제대로 목도하고 그걸 전달해내는 재주다. 가난한 왕따 아이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준 유일한 남자아이를 위해 목숨까지 희생하는 '메리트 공주님'은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서 동생을 업고 불난 집에서 뛰어내리는 형을 떠오르게 한다. 이런 슬픔은 아주 깊고 진한 진짜배기여서 제대로 경험하기만 한다면 아이들을 한 뼘은 자라게 해줄 보약이 된다.

언젠가 아동문학가 이재복 선생은 '슬픔을 느낄 줄 아는 힘이 있는 아이는 타인을 괴롭힐 수 없다'고 하신 적 있다. 맞는 말씀이다. 동화책을 덮으면서 이 세상에 슬픔을 느낄 줄 아는 힘이 있는 어른이 아직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 아닌 소망이 생겨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법
토리우미 진조 지음 / 모색 / 1999년 3월
평점 :
품절


아톰도 쓰고 이상한 나라의 폴, 개구리 왕눈이도 썼던 일본의 시나리오 작가가 쓴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법서다. 예로 든 작품들이 모두 명작이긴 하지만 제작된지 오래되어서 일일이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좀 아쉽고, 일본에서 20년 전에 나온 책을 12년 후에 번역해서 8년 동안 5쇄를 낼 때까지 우리나라에선 변변한 애니메이션 작법서 한 권이 없다는 사실이 좀 서글프다. 일본 만큼은 아니지만 이래봬도 우리나라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나름) 애니메이션 강국인데 말씀이다.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 영화의 차별점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실사와 애니 두 장르를 두루 섭렵해본 노작가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아주 설득력 있었다. 그 밖에도 대사라든가, 상황에 대한 조언들은 실사 영화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실제적이고 유용해 보였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애니메이션 감독, 좋은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많이 탄생해서 조만간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애니메이션 작법서도 만나보길 고대한다. 앙시페스티벌에서도 인정했듯이 우리나라엔 훌륭한 애니메이션 제작을 향한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 작은 것들 속에 깃든 신의 목소리
조안 엘리자베스 록 지음, 조응주 옮김 / 민들레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신이 보낸 전령이라는 관점을 갖고 곤충에 대해 쓴 책이다.

이사한 지 얼마 안돼서부터 집안에 바퀴벌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에 살던 사람이 바퀴벌레약을 붙여놓은 걸 보면 전에도 바퀴가 살았던 것 같긴 한데 이사 이후에서야 미리 살피지 못한 것을 후회했었다. 속으로 짜증도 나고 한밤중에 마주친 바퀴벌레가 살짝 겁나기도 했지만, 잡는 족족 죽이며 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랬다.

겁내고 싫어하면서 죽일수록 바퀴는 점점 더 커져서 나타났고 강력한 바퀴벌레약을 빌려다 귀퉁이마다 발라놓아도 몇 주 쯤 후에 또 나타나곤 했던 바퀴벌레. 그러던 어느날, 바퀴벌레도 자기 인생이 있을텐데 나한테 이렇게 허무하게 맞아죽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자 그들의 인생에 동정이 가기 시작했다. 그 뒤론 바퀴를 죽이면서 '성불하십시오'하고 기도했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때부터 바퀴가 점점 줄더니 지금은 아예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그 의문에 해답을 얻었다. 바퀴벌레는 내 기도에 감복한 것인가보다. 우리가 하찮다고 생각해 마구 죽였던 벌레들이, 단순한 몸을 갖고 신의 의지를 보이러 온 전령이라고 생각하면 경이롭다. 앞으로 세상의 모든 생명있는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질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