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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평점 :
세계적인 선진국 핀란드의 최고 적은 '구 소련연합보다 더 무서운 우울증'이다. 해마다 2개 대대 병력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1개 여단 병력은 목숨을 끊을 계획을 세운다.
소설은 어느 축제날, 같은 헛간에 자살하러 온 두 남자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된다. 가족과 사회의 냉대에 마음 다친 두 남자가 세상과 하직하려는 순간, 같은 공감대를 가진 사람을 만나 대화하게 되면서 자살에 대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짜내는 거다. 두 사람은 전국의 자살희망자들을 끌어모아서 세미나를 열고, 집단자살을 꿈꾼다. (집단 자살의 경우 유족들이 장례 비용을 할인받을 수 있다는 이점도 중요하게 부각된다.) 이들은 핀란드에서 노르웨이, 독일, 스위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에 이르는 긴 자살여행을 감행하기로 한다.
뭐니뭐니해도 이 소설의 백미는 '유머'다. 이 모든 상황을 너무도 따뜻하고 편안하게,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볍지는 않게 그려내고 있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사람들이 끝까지 인간적인 욕망과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음을, 죽음을 통해 통찰하고 있다는 것이 신선하고 놀랍다. 그래서 작가는 '삶과는 유희할 수 없어도 죽음과는 유희할 수 있다'고 했던가.
아르토 파실린나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지만 핀란드에서는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작가라고 한다. 이런 유머 감각과 인생에 대한 통찰을 가진 작가라면 핀란드가 아니라 아이슬랜드건 남극에서건 사랑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단숨에 파실린나 유머의 열성팬이 되었음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