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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김동춘 지음 / 창비 / 2004년 11월
평점 :
해방 직후 군정과 곧 이은 한국 전쟁을 거치고 나서부터 미국은 우리나라에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는 힘센 친구, 구세주 같은 동맹국, 우리의 든든한 빽이었던 미국에 대해 민중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한 것은 80년 광주 항쟁 이후 부터이다.
대학가에서는 "양키 고홈"이라는 구호가 필수요소가 되었고, "미제국주의"라는 북한에서나 쓰던 단어가 휴전선 이남에서도 운동권을 중심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미 문화원 방화 사건과 점거 사건 등이 차례로 터지면서 남한 내 진보 진영의 반미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 이제 미국은 더이상 "우리의 구세주"가 아니었다.
90년대 이후 대표적인 한국의 진보적 사회학자 중 한사람인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연구년을 맞이하여 미국에 체류하며 나름대로 미국에 대한 참여 관찰의 결과를 책으로 엮어낸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은 이라크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전시체제'하의 미국에 대한 제 3 세계(그것도 미국의 입장에서는 아주 독특한 의미의 나라인 한국) 학자의 관찰과 분석이다.
김동춘 교수는 거대한 소비의 나라 미국을 움직이는 자본과 시장, 그리고 그러한 체제의 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전쟁이 바로 이 21세기 초강대국을 움직이는 엔진이라고 말한다. 항상 입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 그 이면에서는 언제나 피를 흘리며 전쟁을 일삼는 그들의 이중성과 정치권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 군산복합체, 그리고 보수 이데올로기를 민중에게 유포하는 역할을 맡는 기독교 세력 등이 어우러져 현재의 미국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라크 전쟁은 역대 공화당 대통령 중 가장 우익적인 부시의 등장과 공화당의 의회 장악 뿐 아니라 전쟁에 대한 민주당의 지지가 더해짐으로 가능해 졌다고 말한다. 결국 이는 한반도의 긴장과 북핵 문제를 풀어가는 당사자인 우리들이 부시 행정부와 네오콘이 정권에서 물러나면 한반도의 전쟁 위기가 감소할 것이라는 순진하고도 낙천적인 환상을 품어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담고 있는 것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걸어가는 고립주의, 시민들의 무분별한 애국주의, 거대 이익집단에 조종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미 의회 등으로 인해 미국은 한반도 평화, 나아가서는 세계 평화의 커다란 장애물로 변해가고 있다.
한국 사회과학에 대한 연구와 저서에 천착해 온 김동춘 교수가 미국이나 국제 문제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책 한권 분량을 채우는 것이 약간 버겁게 느껴졌으며, 시장과 전쟁이야말로 미국을 존립하게 해주는 두 엔진이라고 진단하는 저자의 주장이 그다지 새로워 보이지 않는 단점들이 있지만, 이 책은 현재 가장 굵직한 국제적 문제인 북한 핵문제와 이라크 전쟁 모두에 발을 담그고 있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미국의 참된 모습을 일깨워 주는 갚진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