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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지점의 집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5
엘러리 퀸 지음, 현재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베토벤을 통해 고전 음악을 듣기 시작한 사람이 수많은 다른 작곡가들의 곡을 찾아 듣고 심취하고를 반복하다가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베토벤으로 돌아온다."
작가를 보고 작품을 고르는 경향이 무척 강한 추리 소설 독자들에게도 위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유효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각각의 개인차이가 있을 것이고, 혹자에게는 그 작가가 도일이거나, 혹자에게는 체스터튼, 혹자에게는 크리스티일수도 있겠다. 내게는 그 작가가 바로 다름아닌 "엘러리 퀸" 이다. 도일이나 크리스티, 딕슨 카보다도 늦게 접했지만 내게 추리 소설의 고향은 어디까지나 "퀸"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크리스티를 제외하고는 국내에 가장 많은 작품이 소개되어 있는 작가가 또한 퀸이다.
여름 휴가 기간동안 몸도 마음도 홀가분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추리 소설의 고향에 다녀왔다. 즐거움을 위한 편안한 독서야말로 행복한 책읽기의 필요 조건이다. 역시나 무리없고 흥미로운 책읽기였다.
<중간지점의 집>은 엘러리 퀸의 작품 목록중에서 논리의 극한을 보여주는 완벽한 퍼즐 미스테리를 추구했던 1기의 작품들과 라이츠 빌 시리즈를 필두로 내밀한 심리 묘사와 본연의 인간성 탐구에 천착했던 3기의 작품들을 사이에 둔 과도기적인 2기의 첫 작품에 해당한다. 국명시리즈의 서문을 장식했던 J.J. 맥이 마찬가지로 등장하고 독자에의 도전도 여전히 들어 있다. 그래서 작가의 후기에도 국명 시리즈의 한 작품이 아닌가하는 자문 자답(어째서 제목을 <스웨덴 성냥의 비밀>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라는)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이 자문 자답을 통해 퀸은 1기의 종료와 새로운 작풍으로의 변신을 시도한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중간지점의 집>은 용의자의 재판 과정이 상세히 묘사되며 그의 무죄를 믿는 엘러리 퀸의 수사가 펼쳐진다는 점에서 라이츠 빌 시리즈의 개막작 <재앙의 거리>를 연상케 하는 면도 있지만, 범행 동기와 범행 심리보다는 전작인 국명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범행 기회와 가능성을 더욱 중요하게 판단하는 철저한 퍼즐형 미스터리의 면모도 동시에 띄고 있다.
두 아내를 가진 사내가 두 가정의 중간 지점에서 살해된다. 남겨진 아내들은 뒤늦게 알게된 남편의 이중생활에 충격에 휩싸이고 서로 갈등하지만, 그 중 한명은 도리어 범인의 혐의를 쓰게 된다. 진상의 해결 부분에서 연달아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 능수 능란한 수법은 여전하고 진범을 솎아내는 엘러리 퀸의 소거법(솎아낸다는 표현이 그야말로 어울리는)은 역시 짜릿한 논리적 쾌감을 선사하지만, 범행에 대한 왜? 어째서? 라는 독자들의 의문에는 답변이 다소 미흡하다.
2기의 작품들이 1기의 걸작들이나 3기의 걸작들에 비해 다소 평가가 뒤지는 이유도 1기의 걸작들에 비하면 논리적 쾌감이 부족하고 3기의 걸작들에 비하면 등장 인물들에 대한 농밀한 심리 묘사나 범행의 근원에 대한 통찰이 부족한 이러한 어중간함에 있지 않을까.
<중간지점의 집>은 소설의 내용에 비추어 볼때도 매우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만 엘러리 퀸의 작품세계를 논함에 있어서도 이 작품이 갖는 과도기적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제목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