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는 나의 중학생 시절이던 1985년 8월 2일, 광주에 있었던 지금은 사라진 서점인 "나라서적"에서 구입했던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테리 #3 <0시를 향하여>. 그 서점 입구 바로 옆 아랫쪽에 꽂혀 있었던, 다소곳이 나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은 이 책과의 첫 만남이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떠 오른다.
내가 아동 축약판이 아닌 완역으로 읽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첫번째 소설임은 물론 완역으로 읽은 첫번째 추리소설이기도 한 이 책은, 사진에서 보다시피 처음 발행되었을 당시에는 빨간색 장정으로 말미암아 매니아들에게 흔히 불리워지는 호칭인 소위 "빨간책"이 아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이라고는 아동판으로 읽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ABC 살인사건>이 다였던 초보 추리 독자였던 나에게 당시 10권 발행 기획으로 시작되었던 해문출판사의 이 시리즈는 설래임과 흥분 그 자체였었다. 예상과는 달리 좋은 판매고를 올렸는 지 어떠했는 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결국 '애거서 크리스티 베스트 10' 정도로 시작되었던 이 시리즈는 총 80권에 이르는 크리스티의 전 작품을 출판하는 금자탑을 쌓았으며, 아직도 절판되지 않고 꾸준히 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추리 문고의 대표 주자이다. 아마도 내 또래 이후의 우리 나라 추리소설 매니아라면 누구나 거쳤을 "크리스티 시대"를 만들어 낸, 그리고 어찌 보면 추리 소설의 선호도를 지나치게 크리스티만으로 국한시켜 버린, 이런 저런 면에서 의미가 큰 시리즈라고 하겠다.
3-4년을 오로지 크리스티에만 빠져있었던 나는, 그 이후 여러 다른 작가들을 찾게 되었고, 몇 번의 공백기를 거쳤지만, 아직도 추리소설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 지내고 있다. 물론 이제는 더이상 크리스티를 읽지 않지만, 또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르면 다시 찾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으로나 우리 나라 추리소설사에서나 역사적인 시리즈라 할 수 있는 문고의 초판본으로, 현재와는 다른 색깔의 장정이 주는 독특함으로, 이 책은 이래 저래 나에겐 소중한 소장도서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