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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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모의 편지와 나(은미)의 일상이 교차 전개되는 정한아의 『달의 바다』는 결코 '달의 바다'를 둘러가지 않는다. 즉, 글의 도입을 여는 첫 물음,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로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달의 '실체'와 달의 '바다' 사이에서 언제고 '바다' 곧, 꿈꿀 수 있는 여지를 택했다는 말이다.  

 바다의 속성은 건축이 불가한 '無'로의 회귀다. 따라서 '바다'를 추구한다는 것은 한낱 신기루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와 실제보다 더 절실한 '허구' 중 어느 것이 더 현실에 가까운 현실이라 말할 수 있을까. 겨냥하는 자를 지배하는 추구, 그것은 그런대로 그의 현실일 수 있지 않을까.  

 소설,『달의 바다』는 미숙하다. 그러나 척박하거나 허망하지는 않다. 그 일관된 긍정이 성긴 문체에 상처입지 않을 온기를 입혔으므로. 또한, 삶을 긍정하는 20대의 건강한 자아가 다시 한 발 '진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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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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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컨대, 호모 쿵푸스(Homo Kungfus)란 머리 꼭대기 '공부'가 아니라 그것을 몸으로 체화하여 일상에서 구현하는, 공부의 달인을 일컫는다. 저자는 이를 위한 방법론으로 고전 중심의 독서, 암송과 구술 능력의 강화, 앎의 코뮌 조직, 일상의 모든 것을 배움으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장장 214p.에 걸쳐 전하는 그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감동적이며 찬미적이다. 마치, 대학에 갓 입학해 마음 맞는 동아리를 발견한  새내기가 놀러온 사촌동생에게 열을 토하는 것 같다고 할까. 토씨를 바꿨을지언정, 결국 원점인 동어반복은 하품나게 지루하고 11,900원의 가격이 의심스럽다. 좀더 과장하자면 인문학판 자기계발서, <…하기 위하여 꼭 해야할 …가지 방법>의  목차 훑기와 무엇이 다른가. 그나마 이 책을 구원하는 것은, 인용된 텍스트들인데 주 인용서를 언급하자면, (고병권,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이탁오, 『분서』), (일리히, 『학교 없는 사회』) 등 이다. 격앙된 톤으로 내내 찬미하지 말고 좀 더 구체적으로 당신의 수기를 보여 달라. 당신이 구성한 앎의 코뭔에서 어떤 식으로 공부의 주제를 잡고 그것을 전개하는지, 그 파급과 효과까지의 변화를 깊이 있게 보여주는 것이 백마디 포괄적 문장보다 설득력 있을 것이며 지리한 반복은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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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픽션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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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접한 작가들, 이를테면- 생태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및 물질 문명을 비판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소설에 투영한 세풀베다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출현한 현 인류의 변종 즉, 다양한 심토머들을 등장시켜 사회 곳곳에 포진한 소외의 징후들을 기발한 상상력과 인간애를 잃지 않은 감성으로 엮어낸 김언수의 책은 독자로서의 내게 큰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박형서의 책을 막 읽었다. 서가에 꽂혀 있는 걸 '자정의 픽션, 픽션의 자정?' 이러다 여러번 지나쳤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신나게 읽어 줄곧 득템((?)한 기분이다.
 소설집은 논쟁의 기술, 날개, 노란 육교, 두유전쟁 등 총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작품의 집필동기가 마지막 작가의 말에 간단하게 나와 있다.
 작가가 '자정'에 대해 '동시대에 서사문학이라는 대가족 안에서 소설이 태동하던, 태아처럼 웅크린 채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홀로 자문해보던 근대 이전의 저 먼 '새벽'을 의미'한다고 말한 바, 이 책은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 개인의 실험적 궁리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구조적인 면에서,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명확한 여타의 소설처럼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작가의 실제 사건이나 주변 인물들이 얼렁뚱땅 들어와버렸다고 할까. 
 비단 이런 생뚱함은 구조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이야기 자체에도 있다. 이를테면, 말을 툭 내던지고 또 그를 설명한답시고 개연성 없는 말을 이리저리 둘러대다 '뭐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하고는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버리는 것이다. 작가는 마치, 본책 '논쟁의 기술'에서 예로 들었던 말 돌리기나 괴상한 어법, 딴청 부리기, 막나가기 등을 내내 구사하는 듯 보인다. 
 허나, 묘한 것은 이런 요소들이 이야기의 흐름에 있어 어떤 이물감이나 불쾌감을 유발한다기 보다 웃음의 기재로 작용한다는 것이다.아무 생각없이 읽다가는 작가의 상상력과 재기에 놀라고 뭘 생각하려다가는 그 말발과 망상에 허허실실 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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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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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옴, 이다. 단비가 지난 자리엔 4월 초, 눈이 상할 만큼 곱던 백목련의 흰빛도 벚꽃의 잦은 파닥임도 간데없다. 나는, 부스스 일어나 연이은 휴일에도 청강을 종용당한 수업을 들으러 간다. 수업명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스 케슬러 교수의 '인생수업.'
 삶의 요소들은 아침에 개키다만 이불, 정리 안 된 화장대, 앞서 걷는 사내의 닳은 구두에도 있다. 이렇듯 산재하고 존재를 구차하게 치대는 반복적인 일상에서 그네들은, '인생'이란 거창한 수업을 어떻게 살펴줄 것인가. 나는 졸음을 비비며 잠시 궁리한다.
 교수는 '자신으로 존재하기'란 대 주제를 칠판에 적고 호스피스 활동을 통해 만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전하는, 사랑과 관계, 상실과 이별, 용서와 치유에 관한 경험들을 풀어간다. 이는 '죽음'으로 선서한 '산' 사람들의 유언이었으므로 진정했다. 그들은 거듭 경고한다, 자신을 방어하고 역할을 연기하면서 본래의 '자아'를 외면하고 자신의 진심을 숨기기에, 우리가 사는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를.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입니까?"
 어제 나는 사회의 기대에 맞춰, 생존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재능에 대한 불신으로 진정 하고 싶었던 것들을 주저했고 포기했다. 이제와 같은 현실에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도전을 격려하기에는 무리라고. 더욱이 자아를 구현하기 위한 길이, '가지 않은 길'이라면 더 절실하게 노력함에도 내세울만한 수치를 산출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또 어제 나는, 외롭다고 툴툴거리면서 친구의 약속을 피하고 전화를 꺼뒀다. 용서를 구할 일에 자존심 운운하며 버텼으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fear, 실제처럼 보이는 가짜 증거(False Evidence Appearing Real)들에 압도되어 내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내보이지 못한 것이다.
 매 순간 'yes or no'의 선택 상황에서 1%의 중요성을 생각한다. 그 1%가 49:51의 판단을 확정하고 행동의 근거가 된다. 우리는 아니 나는, '기회' 앞에서조차 그 1%를 두려움으로 채우고 상실을 염려하며 성장을 유보했던 것은 아닌가. 그런 방어로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으며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쓸 수 있는 진정한 '나'로 남았는가. 내가 꺼려하던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이었던가.
 책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아직은 '살아가는' 내게 말한다. 생의 모든 시기는 불완전하다. 이는 인간이 결코 완전한 존재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용서는 훨씬 가벼운 단어가 될 것이고 관계로 점철된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너 자신을 인정하고 용서하는 것부터 시작해라. 부딪혀 보는 편이 낫다.'상실은 무엇이 소중한지 보여 주며, 사랑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가르쳐 준다. 관계는 자신을 일깨워주고 성장의 기회를 가져다준다.' 그러니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너를 규정하는 것은 현재의 직업, 재산, 명예가 아닌 자아가 가진 내면의 힘, 그 찬란한 빛이다. 그러니, 두려워말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
 전화벨이 울린다. 친구는 6월, 직장을 그만두고 인도로 떠난다 한다. 한참을 부러워하는 내게 대뜸 "너도 다 알지? 내가 더 무슨 말을 하겠니." 우리는 그렇게 웃었다. 그래, 실상 우리는 다 알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봄이다. 5월, 목련과 벚꽃은 지는 게 옳다. 한 시절이 가면 다른 시절이 오는 게 맞다.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순간으로 지고 만대도 겪어낸 의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몸에 새겨질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기보다 '아무것이라도 하고' 살 일이다. 오늘밤, 그대가 잠든 사이에 받지 못한 전화가 있다면 그건 나의 사랑인 줄로 알아다오. 이 끔찍한 생이여, 벗트(B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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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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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사두었던 김연수의 신작,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었다. 아니, 아니 읽었다. 읽는 내내 몇번이나 책을 놓았는지 모른다. 그의 글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건 전작을 통해 확인했지만 이번 글은 심하다. 도통 모를겠을 말튀김인 것만 같고 예전 진중권의 '앙겔루스 노부스'를 읽을 때처럼 그저 말을 위한 말인 것처럼 허허롭다. 소설을 두고 이리 말하는게 스스로도 아이러니하지만 그가 시대에 매몰된 개인을 구조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그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사건과 시대사는 그 정교한 구현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배경 곧, 장치로써 나열될 뿐 작가가 집중하는 것은 개인의 보다 근원적인 정체성이다. 즉, '고난에 찬 한국 현대사가 개인의 삶을 모두 똑같이 만들버렸'다 해도 개인이 개인일 수밖에 없는 주관, 서사 속에 숨겨진 서정을 끈임없이 탐구하는 작가가 그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그의 경향은 서사의 구성이 주는 재미와 함께 <나는 유령작가...>에서 내가 반한 구석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자신을 향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 과정은 지리한 동어반복을 수반할 수밖에 없고 질문이 확장될수록 잡히지 않는 관념이 난무하게 되는데 그게 지나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얼마나 진지한가! 그의 자의식이야 어찌 되었건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면 독자가 작중인물의 하품나는 말들을 계속 듣고 있는 건 곤욕이다.        
 김연수는 한국일보(07.10.01) 인터뷰에서 "이전엔 주로 주제를 명확히 드러내는데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은 이야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야기가 자유롭게 흘러 나오도록 방치를 했다고 할까요. 그게 장편의 속성에도 맞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야기의 방치는 책의 두께는 늘렸을지언정 장편을 끝까지 읽어야하는 독자의(로서의 나의) 집중도 역시 방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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