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육> 2호(2011. 5)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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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들의 반란과 명륜동의 봄
-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생들이 보낸 ‘475시간’에 대한 기록
지난 겨울을 생각하니 벌써 온몸에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진다. 한결같은 찬바람을 맞아도 그게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던 겨울이었고, 나는 그때 기상예보를 유난히도 열심히 챙겨 봤다. 약한 바람, 센 바람, 더 센 바람, 비바람……. 나는 바람의 소리와 결, 그 속도와 세기를 열심히 관찰하게 됐고, 그에 따라 사람의 마음도 강해지거나 약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람과 마음의 관계에 대한 이 이야기를 언젠가 꼭 글로 쓰고 싶었다.
2011년 2~3월은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생들에게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 뭐부터 써야 할까. 아我와 피아彼我, 주관과 객관이 뒤섞인 시간. 먼저 우리의 ‘투쟁 아닌 투쟁’의 경위를 말해야겠다. ‘등록금 투쟁’, 약칭 ‘등투’, 속칭 ‘개나리 투쟁’. 아, 다 아는 얘기인가.
전야前夜, ‘마음이 소금밭’
전쟁 같은 학기를 마친 후 겨우 만난 꿀 같은 방학이건만, ‘마음은 소금밭’이다. 휴가를 가거나 귀향한 사람은 없다. 세미나와 논문, 그리고 중단 없는 일, 일, 일……. 4,749,000원이라는 금액이 적힌 등록금 고지서를 받아 든 두 손은 떨렸고, 마음은 급했다. 작년에 비해 4.2% 인상된 금액이었고, 학부 인상률 3%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였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도 학교 당국은 학부 등록금은 동결한 반면 대학원 등록금은 5.1%나 인상해 놓고, 등록금 동결을 통해 학생들의 고통을 분담했다며 대외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 숫자는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였지만, 우리가 당면한 상황은 꽤 구체적이었다. 누군가는 대출 절차를 알아보느라 분주했고, 누군가는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이유로 세미나에 자주 결석했으며, 누군가는 소리도 없이 휴학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대학원에서 보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지만, 아무도 그들을 붙잡거나 나무라지 못했다. 교내 장학금은 등록금에 비해 턱없이 적고, 그나마 있던 인문학 장학금 제도도 폐지됐다. 학부 등록금 인상률은 정부 권고안에 따라 3% 미만으로 제한되어 있다지만, 대학원 등록금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제도 없다. 그런 가운데 5년간 등록금이 무려 100만원이나 올랐다. 그런데도 달라진 건 없다. 학교 건물은 늘어만 가는데, 연구 공간은 여전히 부족하고, 개설된 수업 수는 적으며, 학생 복지는커녕 도서관에는 책도 없다.
대학원생들이 등록금 투쟁을? 그런 말은 들어본 적 없다. 그나마 조금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곧바로 ‘대학까지는 국민 정서상 의무교육에 가깝다지만, 대학원? 니들이 선택한 거잖아!’라는 핀잔만 돌아올 뿐, 아무도 대학원생에게 관심 갖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안 움직이는 나약하고 안이한 부류들. 아무도 안 읽는 글을 읽거나 쓰는 데 홀로 만족하고, 교수의 심부름을 하느라 온 청춘을 다 보내도 끝내 저항하지 않을 자들.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현실이 가까운 미래인 줄 알면서도 그저 참는 자들. 대학원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꼭 죄짓는 것만 같다.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등록금을 대기 위해 일하다가 쓰러지거나, 대출 빚을 갚다 못해 자살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보도 기사는 거짓이 아니다. 우리는 죽어 가고 있다. 그래서 어느 날 누군가가 “뭐라도 좀 해봅시다!”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놀라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가칭 ‘박카스 프로젝트’가 시작된 건 2월 10일 즈음이었다. 모두들 힘들겠지만, 박카스라도 마시고 힘내 보자며 서로를 격려했다. 우리는 대학원생들이 더 이상 학교 당국의 부당한 요구에 순순히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간 읽었던 책에 적힌 혁명과 진보에 대한 앎을 총동원해 우리는 열띤 토론을 벌였다. 1980~1990년대에 격렬했던 투쟁 사례들이 떠올랐지만, 우리는 그 기억에 쉽게 몰입하지 못했다. 우리는 ‘싸움’ 또는 ‘투쟁’이라는 역사적 용어의 사용을 의도적으로 꺼렸고, 대신 우리의 움직임을 ‘운동’이라 부르며 ‘혁명’과 유비했다. ‘투쟁’이 정의에 대한 열정과 특유의 배타적 폭력을 동시에 상기시키는 말이었다면, ‘혁명’은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지의 것이었고, 그 내용은 우리가 채워 나갈 것이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 정서에 걸맞은 변화의 움직임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는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하게 책정된 문과대 대학원 등록금액인 4,749,000원에 반대하는 의미로 2월 16일부터 3월 7일까지 ‘475시간’ 동안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기로 했다. 장소는 학교 본부가 있는 곳이자, 이 학교에서 가장 비싸고 상징적인 건물인 600주년 기념관 앞으로 정했다. 20일간의 짧지 않은 여정이 될 터였지만, 한 명이 하면 475시간, 10명이 하면 47.5시간, 20명이 하면 24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475시간 릴레이 1인 시위 교대 시간표’라는, 세상에 없는 표를 만들었다. 각자의 시위 시간대가 적힌 네모 칸에 빼곡히 배치된 26명 동학들의 익숙한 이름들이 왠지 다르게 보였다. 그건 시각적으로 무척 아름다웠는데, 마치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가장 불온한 ‘성좌’처럼 보였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목표는 2011년도 등록금 동결, 대학원 연구 환경 개선, 총학생회의 반성과 쇄신! “춥고, 따분하고, 불쌍해 보일 수도 있지만 ‘즐겁게’ 해보자!”
싸움 혹은 축제의 시간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생 일동’의 이름으로 총장 및 각 부서 처장에게 우리의 운동 취지와 요구 내용을 담은 길고도 열렬한 편지를 발송했다. 어떤 말이든 좋다. 일단 답하시라. 그러나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일동’이란 정확히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라는 참으로 촌스러운 물음이었다. ‘주동자’, ‘배후’ 운운하는 걸 보니 근 십 년간, 이 학교의 일천한 운동 역사를 알겠다. 학교 당국이 이런 구닥다리 매뉴얼을 갱신할 수 있는 기회를 그동안 우리는 거의 주지 않았던 것이다.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2월 16일. 드디어 ‘등록금 인상 반대 475시간 릴레이 1인 시위’의 시작을 알리는 성명서가 교내 게시판에 나붙었다. 첫 타자가 별 어색함도 없이 거대한 건물 앞 벌판에 홀로 서 있고, 학우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고 지나간다. 좋은 시작이다. 그런 격려가 ‘우리의 힘’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등록금은 학생대표들이 위원으로 참여한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와 협의로 결정한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등심위 자료 공개는 대학원 총학생회의 소임이므로 학교는 그에 대한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 등심위 자료의 산출 근거를 학생들이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 신임 총장이 부임한 이 시기에 국문과 대학원생들의 움직임은 ‘분위기’를 해친다는 것, 등록금 동결이나 재협상은 절대 불가능하며, 대신 국문과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들어주겠다는 것이 학교 측의 주장이었다. 학교 측은 학생 대표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구조화된 등심위 제도를 십분 활용했으며, 학생들의 소통 요청에 대해 고압적이고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거나, 국문과에 특혜를 주겠다는 식으로 우리를 교묘하게 회유하려 했다.
그날 이후,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위하고 밤에 집으로 돌아와 온라인 선전을 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나는 매일 시위 내용과 그에 대한 소회를 학과 게시판 및 각종 포털 사이트와 블로그, 트위터 등에 기록했다. ‘공감’과 ‘추천’, ‘좋아요’와 ‘리트윗’에 기댄 밤들이 외롭지 않았다.
둘째 날. 영하 2도의 날씨에 시위 현장에 오롯이 서 있자니 어제에 이어 학교 측이 또 부른다. 어제와 똑같은 얘기를 하며 앉아서 커피 좀 마시란다. 하지만 이미 배부른 걸요. 밖에 서 있을 때, 학생들이 주고 간 캔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요. 3일째 되는 날에는 대대적인 학회가 있었다. 여러 학교에서 오신 선생님들이 행사장으로 들어가며 우리를 본다. 웃으며 눈인사를 나눈다. 평소라면 우리도 학회장에 들어가 선생님들의 논문 발표를 열심히 들었겠지.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나. 아아, 만물이 흔들리는 금요일이다.
시위가 계속되자, 현장에 놓아둔 서명철에 우리의 운동을 지지하는 이름들이 빈틈없이 적힌다. 낯모르는 학우들이 따뜻한 음료와 핫팩을 슬그머니 쥐어 주고, 홀로 선 내게 이런 저런 말을 건넨다. 그 감동을 전할 길이 없어, ‘1인 시위’ 말고 ‘프리 허그’를 할까 잠시 생각해 본다. 동아시아학과, 철학과, 사학과, 교육대학원 원우들이 앞 다투어 연대를 선언하며 지지성명서를 발표했다. “공부하고 싶다. 먹고는 살아야겠다. 이 어디쯤에 대학원생들의 현실이 있습니다.” ‘날 것’의 분노가 담긴 이 격문과 투서들이 교내 게시판을 사정없이 메웠다.
6일째 되는 날에는 복잡다단한 절차를 거쳐 등심위 회의록을 ‘겨우’ 열람했다. 학교는 학부 3.1%, 대학원 4.1% / 학부 3.0%, 대학원 4.2%의 두 안을 등심위에 참여한 학부 총학생회장과 대학원 총학생회장에게 제시하며 선택을 요구했다. 이 안에 따르면 학부생과 대학원생은 마치 일종의 ‘부채 공동체’ 같다. 학교 측은 대학원 총학생회장에게 ‘선배로서 후배에게 양보할 것’을 제안하고, ‘의좋은 형제’는 그에 따르기로 한다. 뜨거운 모교애와 형제애가 흘러넘치는, 참으로 감동적인 텍스트다.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학부 등록금을 3% 이상 올릴 경우, 우리 학교가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되며, 등심위를 통해 이 사안을 결정하지 못하면 등록금에 대한 의결권을 가진 총장이 더 높은 인상률로 등록금을 책정해버리기 때문에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해명했다.
22일, 졸업식을 앞두고 학교 측은 또 한 번 우리를 부른다. “졸업식 날만이라도 시위를 중단해 달라. 너희가 외롭게 시위하는 모습이 학교의 대외 이미지를 해친다.” ‘브랜드 이미지’, ‘미래지향적 융복합 학문 지향’ 같은 학교의 과잉수사는 언제 들어도 허무개그 같아서 우리에게 아주 작은 충격도 주지 못하지만, 대신 역설적으로 큰 영감을 준다. 그렇다. 외로움은 우리의 무기다. 우리의 외로움이 부를 상식적인 동정과 행동이 학교는 많이 두렵다.
27일에는 비가 많이 왔다. 텅 빈 교정에서 주룩주룩 쏟아지는 빗소리만을 벗 삼아 서 있자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비장해진다. 과연 이 짓이 정말 ‘변혁의 무브먼트’인지 아니면 그냥 ‘개고생’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오들오들 떨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잘 안 나와서, 일단은 그냥 뜨거운 김이 훅훅 나는 엄마손 칼국수 같은 걸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내 앞 주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릴레이가 끝나면 꼭 물어봐야지.
3월 2일. 믿을 수 없지만 개강이다. ‘학생은 사실 개강을 위해 있는 건데, 난 왜 자꾸 학교가 답답하게 느껴질까. 나쁜 학생! 나쁜 학생!’ 하며 현장에 서 있자니, 신입생들이 와르르 와서 서명철에 꼬물거리는 글씨로 잘 못 알아보겠는 메시지를 써 놓고 간다. 무른 손가락을 가졌어도 실은 제법 단단한 이들이겠지. 한편, 우리의 면담 요청을 한사코 외면하던 신임 총장의 발언이 학교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려 우리의 전투력을 진작시킨다. ‘등록금 없으면 학자금 대출 받으라’(“비전을 통해 글로벌 리딩 대학으로 도약해야” <성대신문> 2011년 3월 2일)는 말씀. 대출 권하는 대학 총장이라니! ‘글로벌 리더’라서 그런지 과연 범인凡人들의 상식을 초월한다.
드디어 3월 7일. ‘등록금 인상 반대 475시간 릴레이 1인 시위 종료 선언식’이 있는 날이다. 어젯밤에 게시해 둔 3차 성명서의 제목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아침부터 집에서 각종 자료를 준비하고 여기 저기 연락하느라 출발이 늦었다. 급히 택시를 잡아타니,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끝도 없이 나온다. 아, 내리고 싶지 않다!
우리의 운동을 지지해 준 모든 연대 단위들과 함께할 종료 선언식을 알리는 초대장에 나는 이렇게 썼다. “475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만큼 상식적인 시간 감각을 교란시키는 참으로 신비롭고 이상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또한 추위와 긴장, 침묵과 소란, 분노와 외로움 등 그 시간을 구성하는 그 모든 성분들이 우리 몸에 각인된, 가장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시간이기도 합니다. (……) 비바람 몰아치고, 가끔은 엷은 햇볕에 서 있는 등이 따뜻하곤 했던 475시간 동안 우리가 나눈 이야기와 눈맞춤, 그리고 희망을 기념하려 합니다.”
색색깔의 피켓을 들고 도열한 우리 모습은 흔히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전혀 무질서하지 않았고 질서와 조화 그 자체로 보였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줬는데, 그래도 그게 끝이라면 아마 울었을 게다. 하지만 우리의 움직임은 교내외에 널리 퍼졌고,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학부생 모임’이 결성되어 우리의 시위를 잇겠다고 하니, 마냥 아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600주년 기념관 앞에 언제나 ‘홀로’ 서는 데도, 쉽게 내 자리를 알아보고 늘 같은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건, 그들이 항상 내 옆에 투명하게 함께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끝나도 끝나지 않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라고 외쳤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다. 열정은 더디게 자라고 냉정은 빠르게 온다. 이른 봄의 꽃샘추위도 늦겨울의 칼바람만큼 매서워서, 많은 이들이 지치고 상처받았다. 낯선 이들과의 연대에서 오는 긴장감, 점점 제도의 심층으로 육박해 가는 운동 방식, 학업과 생업, 그리고 운동의 병행으로 인한 부담은 누구에게나 버겁다. 누군가에게는 휴식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국문과는 이제 더 이상 혼자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의 운동을 지지해 준 여러 단위들과 함께 ‘성균관대 대학원 등록금 인상 반대 연대회의’를 출범했다. 이 기구는 등록금 최종 납부 기간인 3월 8일부터 11일까지 본부 앞에서 집회를 개최하는 등 2차 행동을 전개했고, 3월 22일에는 대학원 등록금 문제를 사회적으로 환기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안을 접수했다. 이제 남은 일은 비민주적인 기존 질서와 깊이 밀착되어 개인주의가 극도로 만연한 대학원 사회를 바꾸는 일이다. 식물화된 총학생회에 우리의 권익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 대학원생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진정한 학생 자치 기구를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 그리하여 학교와 사회가 조장하는 구조악에 맞서 학생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각종 미디어가 보도하는 고학생 드라마는 안 봤으면 좋겠다. 대학의 윤리와 정치에 대해 치열하게 사유하고 행동하지 않는 한, 대학원생은 여전히 ‘잉여’의 존재이며 그것이야말로 책에 대한 배반이다. 이것은 역설이 아니라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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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 05+06월호 차례
여는 글 선의의 경쟁은 없다 | 박복선
이계삼 선생님께 - 창간호 특집 ‘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에 대한 사유‘를 읽고 | 안준철
안준철 선생님께 | 이계삼
바라보다 | 최승훈 기자
‘동시대인’의 죽음, 동시대인의 ‘죽음’ - 당대 정치공동체 구성의 위기로서의 대학의 위기 | 엄기호
특집 대학의 교육 불가능
2011년 한국 교육, 야만의 지형도를 그리다 2
● 학문하지 않는 대학 | 문수현
● 대학, 악마와 거래하다 | 노영수
● ‘잉여’들의 반란과 명륜동의 봄 | 오혜진
●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 가난할수록 공부할 수 없는 | 서유정
● 괜찮다, 안 괜찮아도 괜찮다 | 최은정 기자
● 기업화된 대학 : 잔인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야만 | 정용주
인터뷰 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
이우학교, 8년의 실험을 이야기하다| 박복선, 이진주, 최승훈 기자
진보 교육감 취임 1년, 교육은 진보 중인가- 진보 교육감 시대와 교육운동 | 한만중
기획 - ‘가르치는’ 인권을 넘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인권 교육 |민진(한낱)
인권적인 학교를 향한 한 교사의 고군분투기 | 이재익
어느 새내기 교사의 죽음 | 김요한
학교부터 비정규직 없애야죠? | 조영선
“우린 괜찮다. 괜찮다” | 조용진
필요하면 네 곁에 있어 줄게 | 김윤희
일만 킬로미터를 돌아서, 다시 여기로 | 김정현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따라 움직인다 | 장덕균
리뷰
교육의 역할을 고민하다 -《왜 잘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나?》| 석영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이 천국이다 -《환대하는 삶》| 전성원
교과서 ‘너머’를 위한 교과서 다시 읽기 - 《교과서를 믿지 마라!》| 박진환
‘다른 세상을 위한 수사학’ 사용 지침서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박보름
슬픈 ‘개쉐이들’의 섬세한 내면, 그러나 까칠한 소통에 관하여 - 영화 〈파수꾼〉| 안정선
교실수업 이야기
교과서를 통해 보는 수업 풍경 | 이혁규
온고지신
불량정신의 찬란함 - 전쟁 중 ‘비행’에 관하여 | 후지타 쇼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