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 - 두 남자의 고백>(악셀 하케 & 조반니 디 로렌초, 배명자 역, 푸른지식)
로쟈가 적확하게 지적한 대로, 이 책의 제목은 독자를 교란시킨다. "나는 가끔 성자일 때가 있다"가 더 겸손한 제목인데, 우리는 종종 그 반대로 착각한다. 그렇다고 할 때, 이 책이 강력하게 표방하는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이 두 아저씨의 대화로부터 기대하기란 힘든 일이 아닐까.(아저씨 두 분의 이야기를 참견 없이 장시간 듣는 건 원래 좀 험난한 일이지만...^^) 독일의 두 저명한 지식인 남성이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기 안의 모순, 지식과의 괴리 등에 대한 고백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학생운동 이력에 대한 비판적 성찰, 사회적 책임, 정의와 같은 가치에 둔감해지며, 오직 쓰레기 분리수거를 통해서만 자기보존과 옹호의 길을 구하게 된 이들. 그런데 이들의 속물근성에 대한 고백이 오히려 여느 속물들에게 안정적인 자기위안의 내러티브를 마련해주는 것은 아닐지. 자폭할 줄 아는 속물이야말로 '고급속물'이기에. 자, 들어나 봅시다. 속물지배의 대한민국에서 '속물'에 대한 (자기)성찰은 일단 매우 드무니까.
2. <자기만의 방 - 고시원으로 보는 청년 세대와 주거의 사회학>(정민우, 이매진)
"석사 학위 논문이라는 종(種)의 지위에 관한 의문 또는 의구심"에 답하거나,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란다. '고시원', 과연 석사학위논문다운 주제다 (양자는 고학력,고성취를 위해 마련된 시공간이면서 동시에 과도기, 결여 ... 등의 용어와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자기만의 집"이 아니라는 것에 주의할 것. 이 책은 부제가 잘 말하고 있는 것처럼, '고시원'을 통해 본 청년 세대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책이다. 마침, 저작의도를 아주 잘 말해주는 구절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지적 자유를 얻으려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달리 말하면 독립의 조건이다. (...) 이 시대의 ‘자기만의 방’이라 할 만한 고시원은 독립의 조건을 준비하는 자리인 동시에 그 조건의 불가능성을 폭로하는 자리다." 이 '집 아닌 집'에 사는 이들이 형성하는 '정서적 (비)공동체'의 사연을 담은 몇몇 이야기가 떠오른다. 김애란의 <노크하지 않는 집>, 일드 <라스트 프렌즈> 등등. 부동산 투기가 들끓는 한국에서 청년들의 '집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슬프게도 흥미롭다.
3. <분노하라>(스테판 에셀, 임희근 역, 돌베개)
'분노하라'. 미쳐라, 목숨 걸어라, 뭐해라... 등등 예전에 나온 그 어느 명령어보다도 따르고 싶어진다. 아니, 사실 그런 명령어투를 쓰지 않아도 절로 분노하게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한진중공업, 홍대, 강정 해군기지... 그 얼마나 많은가, 분노할 일들. 불과 30여 페이지 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정치 팜플렛이 가져온 나라 안팎의 '사회적 분노'의 결과들을 볼 때, 우리는 놀란다. 그리고 곧 알게 된다. 그 분노 신드롬이 실은 이 책 한 권이 야기한 결과가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냉소와 무관심으로 가장한 채 억압해왔던 '변혁'에 대한 열망들의 집합임을. 이 책에서 저자는 레지스탕스 정신의 핵심을 이루었던 '불의에 대한 불복종'을 호소한다. 93세 노장의 '분노론'은 이런 것이다. '분노'는 '격분'과 다르다는 것. 진정한 분노는 '비폭력', 즉 '자기 자신을 정복한 후, 타인의 폭력 성향을 정복하는 일'이라는 것. 그리하여 오직 '희망의 폭력'만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실현태는 '투표'와 '참여'라는 것. 어떤가, 마음에 드시는지. 21세기 한국의 '다중'이 내린 결론과 견주어보고 싶어 진다.
4. <소금꽃나무>(김진숙, 후마니타스)
183일째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지 말이다. 비도 엄청 오는데 그 검은 구름 아래서 끝내 버틴다. 폭력과 배신과 거짓말의 드라마, 직무유기를 밥먹듯 하는 한국 언론을 정면으로 내려다보며, 오직 심장처럼 깜박이는 트위터만을 등대 삼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07년에 출간됐던 <소금꽃나무>의 한정판이 올해 6월에 다시 나온 건, 바로 그녀를 지지하고, 그녀와 연대하기 위해서다. 같은 책을 두 권 갖게 된 것, 처절한 불행이다. ... ... 그러나, 같은 책이지만 같지 않다! 희망버스는 연이어 내려간다. 그녀는 "강제로 끌려내려가지 않는다." 김진숙의 인생,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 어떻게 봐도 '소금꽃'투성이인 그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 다른 어떤 저명 인사의 추천사도 필요 없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온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할 거다. 영웅도, 작가도 아닌 그녀는 내가 아는 그 어느 작가보다 글을 잘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