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퍼 - 제14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탁경은 지음 / 사계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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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책을 한 권 냈다. 공식 출판은 아니지만.

작년에 사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왜 남자중학생을 위한, 상황에 맞는 추천도서 책은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독서상담, 독서지도에 관한 연수도 많이 들었지만 남중딩을 위한 책에 관한 길잡이 책은 못 본 것 같다. 그래서 우리 학교 선생님 열 분이 모여 전교사에게 추천도서와 경험담을 모아 책을 썼다. 140여 권의 남중딩에게 권할 만한 책 이야기 책이다. <싸이퍼>는 그 중 하나다.

 

솔직히 나는 책의 제목조차 낯이 설었다. ‘싸이퍼는 래퍼들이 대화하듯 랩을 주고받는 배틀을 말한단다.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이 시합인 듯 화해인 듯 화합인 듯, 그렇게 싸이퍼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목이 눈에 들겠어? 했는데 웬걸, 아마도 나같은 사람이나 몰랐겠지, 아이들은 다 아는 듯. 나에게는 힙합에 대한 편견도 좀 있었던 것 같다. 딸애는 랩을 좋아하고 자주 듣는다. 그 덕분에 나도 가끔 듣긴 하지만 솔직히 좋아하진 않는다. ‘디스라는 이름으로 말 그대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방식이나 가사 속에 속속 등장하는 비속어가 거슬린다. 안 드래도 욕설로 하루 온 종일을 도배하는 우리 남중딩들에게 힙합이 결코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진 않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심리학적으로 그들의 억눌린 감성을 배출하게 하는 순기능이 있을 순 있다. 게임도 랩도 그런 무의식의 발현’, ‘그림자 작업이라고 본다면 이들에게 아름답고 고상한 세계를 경험하는 일은 도대체 언제 가능하다는 걸까 싶었던 거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또 다른 힙합의 세계가 가능함을, 아니, 내가 모르는 그런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도건정혁이라는 두 중딩, 고딩(?) 래퍼들 이야기다. 물론 현장에서 그들은 다른 닉네임들을 갖고 활동한다. 내가 가졌던 편견처럼 저속한 표현으로 일관하지만은 않는다(욕설은 세상에 저항하려는 수단일 뿐). 오히려 그들은 시와 철학과 문학, 그리고 삶에 대한 고민으로 진지하기 짝이 없는 힙합의 세계를 구현한다. 사회 시간에 세계사를 배우면서 그들에게 랩이 있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외치는 도건의 주장은 근거 없지 않다. 랩의 거친 모습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순화된(?) 저항의 또 다른 양상이다. 솔직히 한국 랩에서 거시적인 저항을 많이 보진 못했다(내가 아는 거라고 MC스나이퍼 정도가 다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중고딩들은 자그마치 슬라예보 지젝을 들먹이면서 자본주의를 . 피츠 제럴드를 언급하면서 삶을 노래한다. 그러면서도 이 소설은 청소년들을 고무할 것 같다.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되 그들이 즐겨듣는 랩으로 들려주니까. 소설은 내내(특히 도건이 말할 때마다) 랩 하듯 흘러간다.

수업에 필요해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너네 요즘 즐겨듣는 노래 제목 하나만 말해봐.’ 하니 난리가 난 적이 있다. 갑자기 아이들과 친해졌다. 그들이 들려주는 노래며 가수를 공부하고 대화를 나누느라. 또 작년에는 소설 읽고 대중가요 가사로 재구성하기라는 수행평가를 하면서 또 그들의 정신세계를 살짝 엿본 적이 있다.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먼저 조사해 오게 했는데 그걸 걷고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가 그 노래를 왜, 얼마나 좋아하는지 들려주었고 그 가사 안에 다른 작품을 담아내면서 가사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경험을 했다. 개사이기는 하지만 작사도 해보았다. 사춘기에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로부터 멀어지지 말아야 좋은 어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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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 질문하고 토론하고 연대하는 ‘프랑스 아이’의 성장비결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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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의 성장과정을 책으로 지켜보는 기분이 든다. <뼛속까지 진보적이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에서 시작하여 젊고 아름다운 진보주의자가 세상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덧 그녀가 사춘기 소녀의 엄마가 되어 돌아왔다. 늘 그렇듯이 가 어떻게 느끼고 살아왔나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세상 이야기를 한다. 일관되게 진보적이고 일관되게 발랄하다.

세상은 점점 발랄하고 경쾌하며 세련된 진보를 요구한다. 2016년 겨울, 촛불혁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들은 80년대의 대학생들처럼 하나로 똘똘 뭉치지 않았다. 저마다 다 다르다. 드높은 거시적 목표를 올려다보며 비장미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소소하고 발랄하게 이런저런 주장을 펼치며 다같이, 불의한 지도자의 탄핵이라는 거대한 목표로 수렴되었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미투를 벌이고 노조를 모으고 갑질에 대항하고 학교를 바꾸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었다. 아이를 함께 키우고 협동조합을 만들고 동네 텃밭을 가꾸던 사람들, 아마추어들이 모여 오케스트라를 열고 뜨개질을 함께 하고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던 사람들이었다. 약한 것들과도 함께 어깨를 겯고자 하던 이들의 생활진보가 모이자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목수정의 생활터전은 프랑스 파리이지만 그의 젊은 날을 내내 변함없이 참으로 프랑스적이면서도 한국 진보의 나아갈 바, 벋어나가는 직선 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길 위에 함께 서 있다. 우리에게 들려주는 프랑스 이야기는 참으로 도움이 된다. 만약 그냥 거기서 살기만 하는 이였다면 조금은 부럽고 조금은 시기어린 마음에 배척하고 싶어졌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는 프랑스 삶의 우아함과 선진적인 부분을 혼자 누리면서 자기과시용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제비처럼 거기서 겪은 이야기들을 물어다 나른다. 함께 나누자고 한다. 늘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취재한 것들이다. 그냥 겪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들어간 고찰의 흔적이 있어 그의 글은 얕지 않다.

이번에는 프랑스의 교육이다. 다른 모든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프랑스의 민주주의다움을 유지하는 유치원, 초등, 중등의 교육시스템을 이 책에서 엿볼 수 있다. 파멜라 드러커맨의 <프랑스 아이처럼>에서 읽었던 육아의 장면과 유아교육의 장치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탐구와 토론으로 이루어지는 프랑스의 중등교육도. 여기라고 문제가 없겠나마는, 그리고 프랑스 교육이 한국교육이 미래적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마는 그래도 배울 점이 많다.

일단 출산에 있어 프랑스 의료는 산모가 탄탄한 균형과 복근 및 자궁 주변이 출산 전 상태로 회복되게 하는 재활훈련까지 프랑스 사회가 산모에게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레지스탕스를 이끌었던 드골의 임시정부 하에 새 나라를 건설하던 프랑스는 사회보장법을 탄생시켰기에 가능한 일이란다.

프랑스 복지 정책의 원칙은 포괄적 복지이다. 정상성 범위를 그어놓고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게 하는 차별을 근본적으로 없앴다. 외국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단다. 부모가 불법체류자일지라도 산부인과 병원에서 무료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다.

 

그렇게 낳은 아기는 좀 엄격하게 키운다. 프랑스 사람들은 아기가 잘 시간에 울어도 받아주지 않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들에 대한 엄격한 교육과 부모의 시간도 존중하도록 키우는 (특히 식사예절)은 우리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아이가 고집을 부리면 프랑스 부모들은 설명하고 설득한다. 그리고 선택의 범위를 제시한다. 아이라서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이니 맘대로 해도 된다고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면서 인내심을 갖게 한다.

프랑스 유치원은 교육부 소속이다. 유치원 교사는 초등교사 등과 마찬가지의 교육부 소속 공무원이고 유치원은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입학을 원하는 아이들을 모두 무료로 받아주어야 할 의무가 국가에 있단다.

 

초등 저학년 시민윤리 시간에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 중 하나가 인간의 존엄이고 교과목 중에는 깨어 있는 이성을 가진 시민 양성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프랑스 모든 공립학교의 교훈은 자유 평등 박애이다.

프랑스 학교에서는 중학교 4학년 때 노조 문건 작성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세계인권선언(특히 제 23)과 프랑스 헌법 속 노동자들의 권리, 그 역사적 법적 근거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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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5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속 터지는 충청말 -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상작가 작품집 속 터지는 충청말 1
이명재 지음 / 작은숲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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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하고 아름답다. 국어수업용으로 쓸 자료가 많다. 그런데... 이제 젊은이들은 이런 말들을 모른다. 관심도 없다. 그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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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지음, 류승경 옮김 / 수오서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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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신념이라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나 역시 그럴 것이다. 왜곡된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저러지 않는지 돌아보지만 스스로의 편견을 극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떤 나라나 문화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대학시절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판단은 역사적인 사실과 공부에 근거한 것이지만 정치적으로 그러하다고 해서 미국 문화와 미국 사람들에 대해 섬세하고 복합적으로 잘 알고 판단하지는 못한 것 같다. 미국, 일본 = 악 이런 식의 도식은 얼마나 단순하고 저렴한 판단인가 말이다. 미국에 대한 나의 지식은 매우 일천하다. 하워드 진을 통해 접한 몇몇 역사적 판단이 다이다. 그러다가 영어공부를 하려니 어쩔 수 없이 미국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프렌즈>도 보고 <모던 패밀리>도 본다. 역시나 하는 부분도 있고 의외인 부분도 있다. 인종차별, 이국인이나 동성애 차별이 있고 생각보다 점잖은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다가 모지스 할머니의 글을 읽게 되었다.

 

모지스 할머니가 살았던 시대는 우리로 치면 구한말이다. 모지스 할머니는 성실하고 바지런하게 살았다. 그리고 아주 긍정적이다. 지금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제국주의적 우월감이나 자유분방함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청교도적인 소박함, 근면함, 낙천성이 고스란히 그의 삶과 그림에 묻어 있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젊은 시절 이야기들을 들려주는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는 좋았지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 게다가 농촌의 삶이라 대공황이라든가 도시노동자들의 애환 같은 그림자도 없다. 미국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면모를 본 것 같아서 신선했다.

 

놀라운 건 할머니가 70세가 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의 두 어머니(엄마와 시엄마)들게 70대가 된 걸 슬퍼하지 마시라는 뜻에서 이 책을 선물했다. 나중엔 그림을 따라 그려보고 싶어서 나 자신을 위한 책을 샀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 딸은 백화점에 가서 모지스 할머니 그림으로 만든 도자기 접시를 내 생일 선물로 사왔다. 묘하게 할머니는 모녀 3대를 이어주고 있다. 돌아가셔서도 그 존재로써 사람들을 연대하게 하고 위로해 주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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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행복사회 시리즈
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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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덴마크) 오연호

 

남의 떡은 다 커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소련의 노동자들이 공장 일을 끝내고 서점에서 철학책을 아주 싼 값에 사서 읽는다더라, 하는 말이 부러웠던 적 있었다. 한 때는 프랑스의 복지제도가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못 살 곳은 아닐 텐데도 가끔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교사로서 엄마로서 나는 적어도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는 세상,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 아이들이 서로를 헐뜯지는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깨끗한 대중교통, 깨끗한 물과 부족하지 않은 먹거리,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최소한의 교육의 기회, 대체로 괜찮은 주거환경, 나쁘지 않은 치안... 어디까지나 세계 보편의 기준으로 볼 때 이 정도라면 아이를 키우면서 그럭저럭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불안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불안하고 불편해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을 정도다. 바깥세상에서는 한국이 전쟁 때문에 불안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우리는 전쟁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아이들을 행복하게 낳아 기를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떤 고민과 모색이라면 우리를 이런 불안에서 탈출하게 해줄까? 적어도 그런 탈출에 기성세대로서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겠다는 초조감이 자꾸 든다. 나이든 교사가 되고 내 아이들이 다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그런 시간이 다가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북유럽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북유럽을 공부하는 일이 과연 우리 세상을 바꿀까? 답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공부라도 하면 조금 덜 불안하다. 그래서 찾아 읽어본 북유럽 교육 이야기들. 저자가 과연 객관적 기준으로 취재하고 썼다고 100프로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만큼 오연호는 확신에 가득차서 덴마크를 지상의 낙원처럼 묘사한다. 그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며, 그러나 냉철하게 글을 읽는 것은 내 몫임을 밝혀둔다.

 

덴마크 학교에서는 9년 간 담임이 똑같단다. 교사에 대한 신뢰가 높다고 한다. 교직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교사에 대한 신뢰가 낮은 것에는 교사들 자신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 바이다. 과거 교사들의 잘못으로 지금 젊은 교사들이 고초를 겪는 것에 미안함을 느낀다. 이제는 대안을 논해야 할 때다.

 

덴마크 교실에서 같은 학생이 9년을 공부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은 성적과 등수를 최우선으로 삼는 문화 없기 때문이란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어떤 환경에서라도 경쟁이 중심인 교실에서는 미움과 질시가 중심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겠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청소년의 스트레스, 거기에서 비롯되는 거친 언행, 교사에 대한 불신 등 모든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덴마크 교실에서 뛰어난 학생이 있으면 교사는 네가 최고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다른 친구를 좀 도와주렴.’ 이라고 말한단다. 이 역시 성적이 삶의 지표가 되지 않기에 가능한 문화일 것이다. 대한민국 교사와 부모들이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모는 주범이라고 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렇게 아이들을 추동하지 않으면 행복하게 살기 어려운 것을 잘 알기에 빠지는 딜레마이기도 하기에 말이다.

 

덴마크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사회에서 통한다.

이 말도 뼈아프다. 우리는 학교에서 종종 그거 배워서 어디에 써먹어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교육과정을 짜는 이들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7차교육과정은 과감한 재구성을 허용하는데도 그러지 못하는 교사들도 문제다(물론 고등학교는 입시라는 장벽이 가장 문제다. 나는 중학교 교사라 교과서나 입시나 성적의 질곡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삶에 밀접한 문학과 문법과 글쓰기를 가르치려 애쓴다.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실생활에서 유용한 걸 많이 가르쳐주신다는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좋다. 우리 학교 기술 선생님들은 늘 실습을 하게 하고 아이들 스스로 전기를 다루게 하고 공구 사용법을 가르친다. 그래도 아직 노동법이나 계약서 쓰는 법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못 봤다. 학교에 담론만 넘치고 실습은 모자라다. 담론조차 올바른 의식을 형성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 도대체 대한민국 학교에서는 무얼 공부하는 걸까? 회화가 되지 않는 영어와 시험 변별력을 위해 고난도 문제가 범람하는 수학, 그리고 너무나 분석적으로 읽어야 하는 문학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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