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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ㅣ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평점 :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들었다 해서 의아하게 생각했던 일이 있다. 대중적으로 쉬운 책도 아니요, 한국 사회의 정서에 잘 맞는 책도 하니요, 체 게바라가 우리 나라 역사나 사회 현상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 베스트 셀러라니..
그럼 당신은 이 책을 왜 읽었는가, 라는 질문에는 너무 많은 답변, 다 할 수 없는 답변들이 있다. 그래도 표면적으로는 나의 잡식성 독서취향과 국어선생으로서 세상사에 고루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매우 합리적이고 누구에게도 걸릴 것 없는 대답을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게바라를 다룬 다큐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러 갔다. 어느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다. 하이퍼텍 나다에 혼자 앉아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집중해서 보았다. 책은 오히려 산만했다면(그것이 번역의 문제인지 필자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으나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는데) 영화는 활동가 게바라보다는 청년 에르네스토에 초점을 맞춰서 그런지 보다 감성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진정한 혁명은 뜨거운 가슴에서 비롯된다. 가끔 수많은 혁명가들이 그들이 매듭지어놓은 결과물에 의해 평가받고 일을 잘 해냈는지 하는 행정력으로 평가를 받기 일쑤지만 그들의 출발을 제대로 인정받는 일은 드물다. 왜, 게바라처럼, 충분히 개인적으로 안락하게 살 수 있었던 사람이 혁명의 길로 나섰는가를 물어야 한다. 많은 불운했던 혁명가들과는 또다른 출발, 거기에 놓여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열정, 인간이 인간으로서 갖춰야 했던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가슴에 품은 청년 에르네스토를 이해해야 한다. 아, 어쩌면 이 대한민국 땅에서 사랑하기 힘든 공산주의자인 그를 읽고 흠모하는 이가 많은 것도 그의 이념보다 가장 바닥에 흐르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 그것을 우리가 그리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구나.
전인교육(全人敎育)이란 말은 한 독재자의 구호였지만 그가 몰락하고도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가끔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한다. 과연 독재자의 사욕과 무관하게 '전인'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혹은 그렇게 교육을 하는 일이 가능할까 하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완벽한 인간을 지향하는 교육이 그럴 가능성을 지닌 1%의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에게 엄청난 질곡이 된다는 것을 오랜 교직생활에서 뼈저리게 느낀다.
그러나 가끔 올바른 삶의 태도, 인간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 문학과 예술을 이해하는 감성에 여러 사람을 잘 다루는 매력, 일을 수행하는 뛰어난 능력, 아름다운 외모까지 두루두루 갖춘 사람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 주변의 그런 사람들은 좋은 어머니를 가졌거나 자연으로부터 배웠거나 친구, 민중, 이웃에게 배우기도 했고 자기자신을 끊임없이 벼리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감사하게도 하늘로부터 그런 천성과 재능과 인격을 받기도 했다.
체 게바라를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의사라는 안락한 직업, 중산층의 편안한 이기심을 버렸던 점을 강조한다. 그가 게릴라전에 능한 뛰어난 혁명가이지만 그런 혁명가들이 흔히 빠질 수도 있는 냉혹함과 잔인함이 아닌 따뜻한 사람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했음을 말한다.무엇보다 생사의 기로에서도 끊임없이 책을 읽었던 사람이며 시를 가까이 했던 사람임을 말한다. 그리고 하나 더, 가장 높은 곳에 있을 수 있을 때 스스로 선택해서 숲으로 걸어들어갔던 사람임을 말한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 그 알량한 권력과 권좌의 맛을 잘 모를테니 게바라의 선택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잘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권력'을 멀리하던 그의 자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 하려는 말인지도 모른다. 유명해지려 하지 말것, 높은 곳에 앉으려 노력하지 말것, 낮아질 것, 더 작아질 것, 아이들 등 뒤로 숨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