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레 미제라블 - 230 삽화와 해설
가시마 시게루 지음, 박노인 옮김 / 신한미디어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혹은 그 곳에 갔기 때문에, 그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태피스트리의 그림은 어딘가 모르게 혹은 알게 더 빛나게도 되었을까.
영국에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았다.
물론 어렸을 때 <장 발장>이란 제목으로이긴 하지만 이미 레 미제라블을 읽었다. 내가 그 책에서 받은 충격은 가난했던 장 발장이 단지 빵 반 쪽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는 것, 인생이란 게 그렇게 허무맹랑할 수는 없다는 생각. 그렇다면 오로지 노력으로도 자신의 인생은 물론 세계도 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진 어린 도덕주의자에게 이 소설이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는 오해와 혐오를 심어주었다.
그러니까 그 때 나는 신(神)이라거니 자애(慈愛), 양심이라거니, 혹은 사회의 모순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저항하는 이 소설의 다른 주제가 다가오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그 때 읽었던 '레 미제라블'도 아닌 '장 발장'을 엮은이의 오역과 작품에 대한 몰이해가 어린이들을 무책임하게 이끈 죄가 클 수도 있지만 나 아닌 많은 사람들도 이 작품의 줄거리를 그저 빵 반쪽 때문에 19년을 복역하고도 오래도록 쫒겨야 했던 한 착한 사나이와 비정한 경찰의 이야기라고만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뮤지컬로 만난 레 미제라블은 책 속에서나 만났던 19세기 프랑스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는 있었다고 해도 장발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베르의 인간적 고뇌를 깊이 이해하게 해주었고 또한 1832년 6월의 바리케이트의 격동을 실감나게 만나게 했다. 역시 어린 날 보았던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뛰쳐나온 듯한 프랑스의 젊은 지식인들이 바리케이드 높이 올라가 총을 들고 외치고 피흘리는 장면을 보면서 20대 때 우리가 많이 불렀을 법한 곡조의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들었다.
어쩌면 내가 보았던 여러 판본의 레 미제라블이나 장발장에서 누군가 교묘히 저 장면을 시시하게 처리해 버리지나 않았을까 의구심이 들만큼. 어쩌면 우리의 광주를, 어쩌면 80년대 봄부터 가을까지 대한민국 대학 캠퍼스 어디선가 있었을 법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비분강개, 공조, 의협심, 배신, 두려움, 갈등, 격정이 거기 있더라. 그리고는 그 다음날 파리에 갔다. 파리는 아름다웠지만 이상하게도 전 날 본 뮤지컬의 무대처럼 어두운 구석이 느껴졌다. 그것이 파리의 아름다움이기도 했을까.
돌아와 다시 레 미제라블을 읽기로 했지만 완역판을 찾아 쪽수가 많은 책들을 살피다가 그만 유그판 삽화가 들어 있는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그야말로 이 책이 헌책방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 워낙 그림을, 특히 에스키스 류를 좋아하는 나를 사로잡는 그림들이 자그마치 180매나 된다는 것, 또 삽화에 들어있는 어린 코제트의 그림은 음산해서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강렬했던 바로 그 뮤지컬의 포스터였던 것 등등이 이유였다.
이 책의 미덕은 삽화들이 고스란히 내가 본 뮤지컬 무대의 톤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는 것 말고도 글쓴이 가시마 시게루가 박학과 다식을 자랑하며 이 책과 빅토르 위고와 19세기 파리에 대해 아는 대로 입체적인 설명을 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도대체 위고는 어떤 인간이기에 이런 소설을 썼는가를 알고 싶은 독자에게 마리우스는 바로 위고의 젊은 날의 모습임을 조목조목 알려주는 친절, 마리우스를 업고 장 발장이 도망친 파리 하수구가 왜 미로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건축학적인 지식을 발휘하는 이 책을 보고 나면 이로써 레 미제라블에 대한 갈증이 풀렸다는 느낌보다는 다시 한 번, 완역판을 꼭 읽어보리라는 마음이 들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