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베스트셀러에 대한 이해와 오해

세상에 좋은 책은 많지만 팔리거나 알려진 것만큼이 꼭 그 책의 가치라고 볼 수는 없다. 묻혀있는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가. 반면 갑빠허세로 포장된 책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진정한 독서가는 베스트셀러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나도 가능하면 거기 현혹되지 않으려고 많이 애쓴다.

대형서점 가판에 예쁘게 누워 있는 이 책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 일단 나는 한강의 <라틴어 수업>을 떠올렸다. 한강의 소설의 리메이크판인가? 하지만 안의 내용을 한두 장 읽어보면서 이 책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라틴어 수업, 이라는 말이 주는 신비로운 울림과 너무 어렵지 않은 내용(아마도 수업 내용 중 인문학적 교양의 선을 넘지 않는 부분만 책에 담았을 것이다), 특히 생활 속에서 자주 들어보던 말들이 라틴어이거나 라틴어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들은 꼭 라틴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책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

 

질문으로 끝나는 수업

교사인 나는 늘 좋은 수업이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유창한 달변, 수업 내용의 간결하고 정확한 전달, 학생의 흥미를 끌고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매력적인 구성 등등 좋은 수업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참으로 많다. 그 모든 것들이 잘 어우러져 한 시간 수업을 완벽하게 마쳤을 때의 보람은 수업을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좋은 수업은 그 한 시간의 강의에 폭 빠져 듣게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더 공부해 보고 싶게 만드는 수업,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존감이 돋아나는 수업, 생각을 깊게 만드는 수업, 긴긴 세월이 가도 나에게 영향을 주는 수업, 그런 수업이 아니라면 그냥 재미있는 수업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물론 재미있는 수업도 쉽지는 않다).

 

나는 국어선생이다. 많은 어학적, 문학적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잘 요약된 표로 외우게 한다든지 시를 분석함으로써 단기간에 시험을 잘 보는 지식을 입력해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 수업은 지식을 얻는 과정에서도 더 좋은 작품으로 인생을 생각하게 하고 세상을 알게 하고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그런 수업이고 싶다.

수업의 텍스트는 그래서 중요하다, 똑같은 문법을 배워도 더 좋은 글과 문장으로 배울 수 있다. 한동일 신부도 우리나라 수능 영어 문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기왕이면 좋은 철학, 문학, 역사, 인문학의 글을 읽게 하는 방향으로 영어교육이 바뀌어야 함을 지적한다. 다시, 좋은 수업은 지식 전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기본이고) 생각하게 하고 인생을 깊이 있게 만드는 수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동일 교수의 수업은 모두 질문으로 끝난다. 오늘의 수업으로 라틴어 문법을 2시간, 3시간 분량 배웠을 터이지만 그보다 더 많은 생각거리들을 안고 가라고.

 

수업을 시작할 때 꺼내는 말을 발문이라 한다. 학교 교수법에서는 발문을 중요시한다. 수업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발문보다 중요한 질문으로 끝나는 수업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물론 대학생들의 수업과 나처럼 중학생, 그것도 쉬는 시간 종이 치면 매점이나 운동장으로 달려가고 싶어 하는 남자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남겨진 질문이 꼭 바로 그 시간으로 끝나지만은 않는다는 것은 대학의 수업이나 남중의 수업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 경험으로는 엎드려 잠만 자는 것 같은 소년들도 오후의 아지랑이 같은 수업에서조차 무언가를 배워가는 것을 많이 보았다. 수업의 한 장면, 하나의 질문, 한 구절, 작은 눈빛으로도 소년들은 격려 받고 의아해 하고 생각하게 되고 감동받고, 그런다는 것을. 그래서 수업말미에 교수가 던져주는 저 질문들이 얼마나 많은 인생의 파장을 그릴지 짐작이 되는 것이다. 나도 그런, 질문으로 끝나는 수업을 해보고 싶다.

 

데 메아 비타 (De mea vita) 나의 인생에 대하여

한동일 선생은 수업 관제로 데 메아 비타 (De mea vita) 나의 인생에 대하여 라는 글을 쓰게 한단다. 제목 <나의 인생에 대하여>. 그리하여 맘껏, 떠오르는 대로 써보라고 내 수업에서도 해보고 싶다. 어떤 주제를 주고 글을 쓰라 하면 어린 아이들은 자꾸 질문을 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 것도 묻지 말고 주어진 주제를 보고 떠오르는 대로 써보라고 말이다. 이번 학기말에 꼭 해보리라.

 

이 라틴어 수업은 서강대, 연세대 같은 공부깨나 한 학생들이 갈 수 있는 대학의 교양강좌였단다. 게다가 교양이라고 하기엔 꽤나 어려운 수업이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한테 자부심깨나 있을 학생들이 특히 이 수업을 많이 듣지 않았을까? 그런데 권말에 놓인 학생들의 글을 읽어보면 생각보다 자존감들이 높은 편은 아닌 듯이 보인다.

젊음이란 게 원래 자존이든 전망이든 불안정하기 짝이 없을 때이기도 하지만 공부 잘했을 학생들이 쉽게 흔들리는 모습이 특이하게 느껴진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공부, 성적으로 자신의 자존을 확인한다. 그러나 성적이란 것은 올라갈 곳이 한계가 있는 것이다. 경쟁이 아니면 이를 수 없는 곳.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의 멘탈은 참으로 약하기 짝이 없다. 한편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좋은 대학도 못가고 학업을 계속하지도 못하고 학벌 열등감에 상처받고 알바 등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제자들을 많이 알고 있는 나로서는, 공부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쉽게 자존감을 낮추는 명문대 학생들의 유약한 정신에 안타까움도 좀 느꼈다. 세상 어떤 일도 쉽지 않다. 공부도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꼰대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으나 그보다 더 힘든 일도 많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를 너무 예민하게 다그치고 절망에 빠트리지 말라, 젊음아.

 

공부하는 노동자, 겸손하게 공부하기

이 수업의 미덕은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 했다. 로마의 역사와 철학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바른 태도와 인성과 의식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유도하는 수업의 방향성이 보인다.

지금은 철학자라는 말의 느낌이 좀 달라졌지만 원래는 피타고라스가 스스로를 겸손하게 일컫고자 한 말이었다고 한다. 지혜를 궁구하는 사람이라... 때로는 삶에 그러한 자세가 필요하다. 한동일 선생은 모든 것을 조금씩 아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과 같다 라는 말로써 학문의 자세를 일깨운다. 라틴어수업 자체가 어렵기도 했겠지만 기말고사를 어렵게 내고 이렇게 말한다.

 

문제지를 보면 풀기가 쉽지 않을 거다. 시험을 통해 학문 앞에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느꼈으면 한다. 내가 아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미천한지, 학문 앞에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는 겸손밖에 없다는 것을 시험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껴보라. 이게 내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마지막 수업이다.”

 

그 자신이 공부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대학을 단지 취업이나 윤택한 삶을 위해 관통해야 할 도구로 여기는 대다수의 학생에게도 공부에 대한 자세를 일깨워주는 말씀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남들보다 공부를 잘했거나 좀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오만은 더 강해진다. 하지만 공부란 게 하면 할수록 자신의 부족함이 보이는 게 맞다. 남들보다 더 어려운 공부를 많이 한 한동일 교수가 어린 학생들에게 자신을 일컬으며 이렇게 말한다.

에고 숨 오페라리우스 스투덴스(Ego sum operarius studens)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공부를 잘한다. 겸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그는 앎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잃지 말기를 당부한다. 소크라테스도, 공자도, 이 세상에 완벽한 앎은 없음을, 그 누구도 자신이 많이 안다고 자만해서는 안 됨을 말했다. 그걸 글자로는 많이 만나 알고 있으면서도 아, 내가 이 큰 세상 앞에서 참 작은 사람이구나, 내가 아는 것은 모래 한 알갱이에도 못 미치는구나, 라고 깨닫고 겸손해지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가 말이다. 그걸 아마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 말,

 

탄툼 베데무스 콴툼 쉬무스 - 우리가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

 

공부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지식이 삶의 전부일 수도 없고 지식이 많다고 인생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넓은 안목을 갖기 위해 충실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 인생을 잘 살기 위해 공부하는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오늘날 한국 교육에 대한 에두른 비판도 눈에 띈다. 특히 영어교육 열풍을 언급한 듯 모국어로 안 되는 것은 외국어로도 안된다는 말은 모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매우 공감이 되는 바이다. 내가 국어교사이지만 지금도 꾸준히 외국어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 또 현장에서 영어 공부에 목매는 많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국어공부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야 하는 입장에서 말이다. 이것은 많은 현장의 영어교사들도 공감하는 바이다.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영어력 신장의 한계는 명백하다. 모국어의 능력은 사고 능력과 직결돼 있다. 충분히 옳게 깊게 생각할 수 있어야 남의 말과 글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에게서도 좋은 말, 글이 나온다. 당연하지 않은가? 모국어로 충분히 사고할 능력, 즉 모국어 구사 능력과 사고력을 갖추지 않고 외국어를 먼저 배우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영어조기교육에 목매는 학부모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더 힘든 것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의 철학이 빈곤하기 때문. 공부한 것을 나눌 줄 모르기 때문이라며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전보다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공부, 공부 하면서 아이들을 벽으로 몰아붙이는 오늘날의 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시 발레스 베네, 발레오(Si vales bene, valeo). -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그의 수업 중 들려준 이 따뜻한 라틴어 인사말은 한동일의 강의가 지향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어려운 공부지만 겸손하게 할 것, 열심히 해서 남 주는 공부를 할 것,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 그러기 위해 당신 자신의 자존을 잘 지킬 것, 그런 정신을 가르치고 싶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 시대의 진짜 어른이라면 고통스러워하는 젊은이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라면서 그들의 고통을 낭만적 언사로 호도하지도 않을 것이고 진정 바닥까지 아파본 적도 없으면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중동도 가고 알바도 해봐라라고 다그치지도 않을 것이다.

저자는 북유럽에서 배울 것은 보이는 복지가 아니라 미래 세대에 투자하는 제도적 사회적 노력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용한 이런 비유가 나는 참 좋았다. 봄날 산의 나무는 모든 에너지와 역량을 나무의 가장 끝인 꽃과 이파리에 몰아준다. 청춘이 힘내서 열심히 살도록 온 사회의 역량을 몰아 지원해줘야 함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야말로 진정한 어른의 목소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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