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뜰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4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 나의 리뷰를 읽고 또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국어선생이 여태 오정희를 안 읽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나에게 오정희는 최승자의 시에 나타나는 이름이었다. 시에게는 마음을 열어도 소설에게는 냉담했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최승자에게 '귀신같은 눈빛'만 남기는 이 소설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강은교는 얼굴도 시도 예뻤지만 처절했었는데, 오정희에게 그에게 있는 처연함과 비슷한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오정희를 읽지 않았다. 어쩌면, 읽다가 너무 아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멋모르고 최승자에 빠져 그녀의 시집과 번역집을 다 찾아 읽으며, 아픈데,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사랑에 빠진 것처럼 고통스러웠듯이 오정희도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어.

그래서 번번히 들었던 책을 놓곤 했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이 책을 들어 읽을 수 있는 건, 이제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서, 혹은 뻔뻔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첫 기억이라는 건 너무 강렬한 것이어서 오정희에게 계속 최승자가 오버랩 되는 게 묘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역시 최승자는 정확한 느낌으로 이 사람을 읽었다 싶다.

신경숙이나 은희경이나 공지영에서 그랬을 것 같다. 그 작가들에게(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끊임없이 몸을 제기면서도 밑줄 긋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문구들을 발견하고 했던 것. 그런데 왜 안 그러는 걸까, 책을 거의 덮을 무렵 발견했다. 밑줄 긋고 싶을 만큼 베껴놓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문구는 없다. 그럼 뭔가. 남는 것은, 그녀의 낡고 오래된 집, 그것이 과거의 얼굴이든 미래의 얼굴이든 홀로 남은 집에서 문든문득 스치는 귀기같은, 그 분위기일까 오정희는....

나는 최승자를 읽을 때, 내가 살던 바닷가의  새벽에 홀로 흰옷을 흩날리며 춤을 추며 바다 속으로 스미는 여인을 자주 꿈으로 보았다. 분명 그건 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은 시 속의 그 여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시인이었거나 소설가였을지도 모른다. 바닷가에 살던 때로부터 거의 13년이 넘어가건만 별 재미도 없었건만 이 소설은 내게 그때 나를 보게 하는 묘한 힘을 지녔다. 추억이나 감상보다 더 원초적인 어떤 공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