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결속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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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비한 소설을 뭐라 말할까. 지난 번 <세상의 모든 아침>을 읽은 이후 세상에 이런 소설이 있었나, 싶었다. 아니, 어린 시절에 더러더러 읽었던 문학작품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났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파스칼 키냐르야 이 세상 하나뿐인 작가이겠지만 적어도 예전에 읽었던 문학작품에서는 이런 아우라를 느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을 뭐라고 말할까. 굳이 줄거리를 정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주인공인 클레르가 추구한 삶은 그리 서사적이지가 않다. 물론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시몽과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면 그 역시 일상적인 인간의 삶을 서사적으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자연의 일부분으로 마치 식물처럼 살았던 이유가 사랑하는 이를 가지지 못한 상실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본성에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번역이라는, 언어의 조각이라는 예술의 영역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지독한 사랑을 삶의 자양분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보통의 사람처럼 먹고 자고 붙박여 사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럽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줄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감성이 중요하다. 심지어는 메시지가 없어도 그만이다. 분위기와 아우라만으로도 문학이 된다. 물론 메시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계몽적이지 않다는 의미이다. 묘사가 많지 않아도 나는 클레르의 농막과 그가 헤매 다닌 숲과 바다의 풍경과 냄새가 맡아질 것 같았다. 간결하고 아름답다.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과 결속이 되어 있다는 것일까? 클레르와 시몽의 사랑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바다로 걸어 들어갔던, 이 생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클레르가 만난 자연과 우주의 또 다른 기운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일상을 살 수밖에 없지만 어떤 형태로는 일상이 아닌, 알지 못할 세계에 대한 연결고리를 느낀다’. 어떤 사람은 종교로, 어떤 사람은 문학으로, 어떤 사람은 그저 세속적인 사랑에서라도 신비하고 영적인 연결의 느낌으로 일상의 남루함을 견뎌낼 수 있다. 그런 게 없다면 어찌 삶을 살아갈까. 그것이 좀 더 드높고 고결한 것이어서 우주의 기운 같은 것이면 더욱 좋긴 할 것이지만 그저 곁에 같이 사는 사람과의 결속감만이더라도 이 생은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문학과 예술이 그런 신비한 결속의 한 요소이기도 하다. 클레르의 삶은 나와 아주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밤중에 온 숲을 헤매면서 느끼는 충만, 혹은 결핍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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